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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방, 소하, 한신, 조참, 팽월 같은 잡것들보단 우리가 낫지!"

  • Crocodile
  • 조회 1271
  • 2017.09.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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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의 큰 흐름 중에 하나가 호한(胡漢) 체제입니다. 기존의 중국인을 의미하는 한(漢)과 소위 '오랑캐' 를 의미하는 호(胡)가 계속해서 합쳐진다는 의미입니다. 애당초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의 중원의 조그마한 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확장되고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 시대 기록을 보면 그래서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치면 변방은 커녕 지형상 중국의 가운데 정도나 될 옛 초나라 지역쪽을, 주나라의 소왕(召王)이 흡사 로마 장군이 게르만족 땅 가다가 당한것마냥 순시하다가 죽기도 하고, 초나라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갈때 최초로 제후가 된 웅역(熊繹)은 제후들 회맹에 참가했을때 주나라 천자로부터  "형만(荊蠻) 오랑캐 놈은 밖에 나가서 화로나 지켜 임마."  라는 말 듣기도 하고, 최초로 왕위를 주장한 초무왕(楚武王)은 자기 입으로 대놓고  "나 남쪽 오랑캐인데 요즘 제후들이 보니 버릇없이 까불더라. 그러니 내가 왕이 되어야 겠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등.... 



 그런 초나라나 멀리 진나라도 한나라가 건국된 시점에는 자연스레 한화(漢化) 되었습니다.  그런식으로 과거에는 이민족이었던 존재들이 자연스레 '중국인' 이 되었고, 역사상 이런 사례가 계속해서 반복 됩니다.



 중국 역사상 이런 현상이 가장 격렬하게 작용했던 시기가 바로 남북조시대, 그 중에서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였습니다. 중국 내부에서의 통제력의 상실과 장벽이 사라짐에 따라 북에서부터 온갖 이민족들이 끝도없이 꾸역꾸역 밀고 내려와서 자리를 잡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중국인이 되어가고, 또 그러면 위에서는 또다른 이민족이 꾸역꾸역 내려오고 등등...



 그렇게 저글링 블러드 하듯 내려온 이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유력했던게 바로 '선비족' 이었고, 이런 선비족이 계통에서 가장 유력한 왕조였던 '북위' 가 탄생했으며, 그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갈라지고 난 후 동위가 '북주' 가 되었고, 이 북주가 훗날 수나라가 되어 중국을 통일하였습니다. 때문에 수나라와 (본래 수나라 황족과 인척관계였던) 당나라를 '선비족 왕조'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올라가고 올라가다보면 선비족이 나온다... 는건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다만, 간혹 이런 말 하는 경우에는  '수나라, 당나라는 한족 왕조도 아니고 선비족이 세운 나라고 중국 역사도 아니다'  는 식의 괴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건 정복왕 윌리엄 이후의 영국 역사(그러니까 한  1,000년 가량 )는 '영국인의 역사가 아니다'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인 말입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수나라, 당나라 황족 및 최고위 지배층들에게  "넌 절대 정통 중화인이 아니고, 자랑스럽고 씩씩한 상무정신을 지닌 선비족의 후예다. 유목민의 위대한 자긍심을 가져라!"  라는 따위의 말을 한다면, 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분노하면서 욕을 하거나 말한 사람을 모욕하는거냐며  죽이려고 했을 겁니다 .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삼국지' 를 보신 분들이라면, 당시에 세력을 떨친 여러 호족들을 아실 겁니다. 삼국지의 군주 중 상당수가 그런 호족의 중심이라던가, 아니면 자기가 군주 되고 나서도 이런 호족들을 달래면서 협조를 얻는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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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거...




 이렇게 점차 세력을 키우고, 중앙에서 관직도 얻고, 또 그렇게 관직을 얻고 난 다음에는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에 의해서 자기들끼리 추천해서 계속 관직을 신나게 돌려먹다보니 이들은 점차 확연한 특권계층, 즉  귀족 이 되어갔고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대략 후한 말기와 조위, 서진 시대부터 무려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한번 갈려나가기 전까지 거의 한  700년 가량 . (물론 측천무후-당현종 시기에 관롱집단이 타격을 받는다던가 하지만 귀족정치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봤을때 말입니다.)



 이렇게 수백년을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면서 돌려먹고 특권을 키우고, 새로 황제가 되는 사람들도 당장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그들의 협조를 얻어야 했으니 뭐 손도 쓸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황제나 아예 나라가 갈려나가도 그 사람들은 그대로 있고 , 그대로 있으면서 계속해서 더 특권과 가문은 키우고... 하는 흐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짓을  수백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들의 특권의식 및 가문빨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 되었는데.... 


 무협지에서는 '오대세가' 가 나오지만, 이 귀족집단에서는 소위 칠성십가(七姓十家)로 불리는 가문들이 최고였습니다. 칠성십가는 오직 자기들의 가문들끼리만 통혼하면서 '순수성' '배타성' 을 키워나갔고, 칠성십가에 포함되지 않는 가문들끼리는 통혼도 잘 하지 않았지만 만약 통혼하게 된다면 그쪽에서 어마어마한 재물을 받아야만 겨우 허락해주었습니다. 칠성십가가 그렇게 인정받던 이유는 그렇게 이민족이 들어오는 난리통 와중에 자기들이 가장 깨끗하게 혈통을 지켰다는 건데 글쎄 진짜 그랬을지는 저야 모르고...



 이들의 가문빨이 얼마나 대단했느냐면, 간단하게 말해서  "황제 가문도 가장 높은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가문의 격의 등급을 매기고, 그 가운데서 황실가문도 그 격에서 1등은 고사하고 3등은 하면 다행인 황당한 수준;;







그야말로 천룡인이 된 문벌귀족들





 그런 귀족집단들 중에서도 수, 당나라를 이끌어간 주요 집단은 바로 무천진 관롱집단(武川鎭關隴集團) 입니다. 기존 귀족과 군벌이 결합된 그들은 칠성십가에 비해서  그나마  좀 배타성이 덜한 귀족 가문으로, (그리고 그래서 가문빨이 오히려 딸리는) 이들이 바로 북위-서위 및 동위-북주 및 북제-수나라-당나라로 이어지는 건국세력의 중추가 되었던 집단입니다.




 보통 우리가 중국 역사상 가장 한미한 출신으로 몸을 일으켜 황제가 된 개국군주를 주원장이라고 말합니다. 그 럼 반대로 가장 가문빨이 극강이었던 군주는 누구일까요? 









당나라 고조 이연






당태종 이세민




아마도 그 주인공은 당나라의 개국 군주 이연과, (사실상의 개국군주인)태종 이세민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일단 당태종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태종의 아버지 고조 이연은  팔주국(八柱國) 의 후예입니다. 팔주국이란 서위 시절의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  에서 비록된 것인데, 서위 시절에 이 칭호를 받은 사람이 모두 8명 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문태(宇文泰)  - 팔주국을 만든 사람.
원흔(元欣)  - 황실의 위엄을 떨침. 
이호(李虎)  - 우문태를 도운 사람
이필(李弼)  - 장수로 이름을 날림
우근(于謹)  - 모략가로 이름을 떨침
독고신(獨孤信)  - 덕으로 이름을 떨침
조귀(趙貴)  - 우문태를 도운 사람
후막진숭(侯莫陳崇)  -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침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게임 설정 같은 기분도 드는데... 


아무튼 이 8명 중, 우문태는 팔주국을 창설한 사람으로서 '총령제군' 이라 여러 군대의 병권을 총지휘 했기에 반대로 다른 병력은 없었고, 원흔은 황족이라 병권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6명의  각각 두 명의 대장군 을 거느렸는데, 이 12대장군은 또 다음과 같습니다.



(순서는 그냥 서술하기 편하게 쓴거지 실제로 무슨 순위가 있다거나 한건 아님)




1대장군 원육(元育)
2대장군 원찬(元贊)
3대장군 원곽(元廓)
4대장군 우문도(宇文導)
5대장군 우문귀(宇文貴)
6대장군 이원(李遠)
7대장군 달해무(達奚武)
8대장군 후막진순(侯莫陳順)
9대장군 양충(楊忠)
10대장군 두노녕(豆盧寧)
11대장군 하란상(賀蘭祥)
12대장군 왕웅(王雄) 




 이들이 바로 12대장군으로서, 즉 당시의 상비군 군권은 총령제군 우문태를 중심으로 한 팔주국 중 6명의 관할 아래 있는 12대장군의 손에 있었던 겁니다. 팔주국 십이대장군을 비롯해 이렇게 군벌적 성격과 귀족 성격이 합쳐진 '관롱군사귀족집단' 은 장수, 재상은 물론이거니와 황족까지 다 여기서 배출하며 맹위를 떨쳤습니다.



앞서 당고조 이연이 팔주국의 후예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팔주국 중  '이호'  가 이연의 조부였습니다. 그리고 팔주국  '독고신'  이 이연의 외조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독고신'  은 다름 아닌 수나라 황제  '양견'  의 장인이었고, 양견의 아버지는 십이대장군 '양충' 이었습니다. 고구려를 침공한 것으로 유명한 수양제  '양광'  은 당고조 이연과는  '이종 사촌 ' 이 됩니다. 파고들면 이중삼중으로 연결된 수준인 겁니다.



 그리고 당고조 이연과 결혼한  '두씨'  의 아버지는 신무공(神武公)에 봉해진 두의(竇毅)인데, 두의의 아내는 양양장공주(襄陽長公主)의 딸이었고, 이 양양장공주는  '북주 황제의 딸'  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 당태종 이세민입니다. 



 즉 이세민은 태어나고 보니 아버지는 최고 중의 최고인 팔주국의 일원이자, 수나라 황실과는 친척 사이고, 어머니는 수나라 이전 북주 황실 가문의 일원이었던 셈입니다. 여기로 가도 황실, 저기로 가도 황실이니, 그야말로 금수저 중의 금수저나 진배 없었습니다.



 하여간 이세민의 출생 계보를 한번 알아보는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찰 지경이니,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오히려 더 끗발 높거나  한 주위 사람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세웠고, 그런 사람들이 나라의 지배자가 되어 다스리는 위치가 되었으니, 급기야 이런 말이 나올 지경이 됩니다.






.....

무덕 3년, 고조는 일찍이 상서우복야 배적에게 이르길,
 "우리 이씨는 에전에 농서지방에서 귀갑과 보옥을 상당수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다.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제왕과 인척이 되었고, 내가 의병을 이르키자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수개월 지나지 않아 천자에 올랐다.  이전 시대의 황제로 말하자면 대다수는 미천한 출신들로  군대를 지휘하고 진형을 포진시키느라 고생하면서  결코 안심하고 살지 못했다 공은 대대로 녹을 받는 명가로 회복했고 지위가 매우 높고 중요한 직무를 담당하는 관직을 지냈는데 어찌 고작 문서 담당 관리 출신인 소하, 조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오직 나와 공만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선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당회요 권 36中









"야, 친구야. 내가 예전 황제들 한번 찾아봤는데 대부분은 개족보 패거리더라 ㅎㅎ"







배적

"ㅇㅇ 이거 레알임 반박불가임"


(참고로 배적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스탈린 친구 보로실로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연의 절친이었는데 별 능력은 없어서 농민 반란군에게도 털리고 유무주, 송금강의 세력에 산서 지역을 털려 이세민이 수습하게 만든 사람. 그래도 이연의 베프라 문책 같은거 별로 없이 잘 먹고 잘 살았던 금수저입니다."










"ㅎㅎ 짜식들 뭣도 없는 놈들이 황제 해먹는다고 전전긍긍하느라 애좀 썻겠네 ^^"

"야, 친구야. 옛날 황제들도 그랬고, 그 황제들 도왔다는 그 뭐시기냐, 소하, 조참? ㅎ 걔네들 내가 보니까 그냥 관청에서 글이나 쓰던 놈이더라. 우리가 명가 출신인데 어떻게 그놈들하고 우리가 똑같냐? ㅎㅎ 이야기하기도 쪽팔린다야ㅎㅎ"

"솔까 개국군주랑 개국공신 이야기해도 걔내들은 좀 쪽팔리구ㅎㅎ 시간 지나면 너랑 나 정도가 그래도 끗발 난다고 후세 사람들한테 칭찬 받겠다야 ^^"












"이게 뭔소리야;; she발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짜증나게;;"








...개국군주씩이나 되는 당고조 이연과, 그 절친인 배적이 서로 모여 옛날 황제들은 가문이 구렸던 인간들뿐이고, 그런 사람들 도왔던 소하 같은 사람들은 다들 신분도 천한 잡것에 불과하니 자기들 정도는 되어야 후세에 이름이 남을거라고 자뻑하는 황당한 장면입니다. 황제부터가 이러는 판이니, 다른 신하들이라고 말할것도 없습니다.






"창업한 군주와 신하 모두 귀족으로  하은주 3대 이후 모든 왕조는 우리 당나라에 미치지 못한다 . 고조는 팔주국 당공의 손자이며 북주의 명의와 수나라의 원진 두 황후의 외척으로 북주태사 두의의 딸과 결혼하여 북주 태조의 사위가 되었다. 재상 소우, 진숙달은 양나라와 진나라 제왕의 아들이었고, 배구, 우문사급은 북주태사와 수나라의 부마도위였고, 양공인, 보덕이, 두항은 이전 왕조 사보의 후손이었다. 배적, 당검, 장손순덕, 굴돌통, 유정회, 두궤, 두종, 시소, 은개산, 이정 등은 모두 귀족의 후예였다.  한고조 유방, 소하, 조참, 한신, 팽월의 가문들에 비하면 어찌 가문의 등급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
─ 소면(蘇冕)






거의 전설적 존재인 삼황 오제로부터 정통성이 이어지는 하나라와 상나라, 주나라에 이르는  3대 왕조만이 그나마 자기들 당나라 황실에 비빌만하고 , 그 이하 잡것들은 감히 언급할 필요도 없다며 눈물의 자화자찬 행복쇼를 펼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황실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중책을 맡았던 개국공신들의 가문 역시 대단한 귀족의 가문이었다고 추켜세우면서, 뜬금없이 가만히 있던 유방을 비롯하  소하, 조참, 한신, 팽월 등은 여기에 감히 댈수도 없는 천것들이라고 깝니다.





전한 공신들의 본래 출신
유방 -  외상술 먹는게 특기인 건달
소하, 조참 -  하급 관리
한신 -  아줌마들에게 밥 빌어먹던 백수
주발 -  누에 바구니 엮어서 팔고 먹고 삼
진평 -  가난뱅이 농꾼
팽월 -  물고기 잡으면서 도적 노릇함
경포 -  죄 짓고 노역장에 끌려왔다가 탈주
번쾌 -  개 때려잡고 개고기 팔아먹으면서 삼
관영 -  비단 짜서 먹고 삼
역이기 -  나이 60세에 미친 늙은이 취급 받으면서 문지기 노릇함



(본래 한韓나라 귀족인데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5명의 임금을 재상으로 섬긴 가문인 장량까진 못깠음)












"아! 개나 잡던 한나라 공신들 따위를 어이하여 우리 위대하고 고귀한 대당제국의 공신들에게 비비리! 크 감동 취해서 살살녹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다 말 타고 놀던 놈들이 놀고 자빠졌네;;"







관롱집단들은 당나라가 진행되면 측천무후나 당현종 때 타격을 받아 위세가 위축되고 약해지기도 하나, 귀족정치라는 큰 틀은 당나라가 이어지는동안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막연히 생각하기에 자유롭고 호방하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것같은 자유분방한 느낌이 드는 이미지가 당나라에 있긴 하지만, 실제로 당나라는 중세 귀족정치의 극한에 다다른 나라였습니다. 


가령 당나라의 국자학은 3품관 이상의 자제, 태학은 5품관 이상, 사문학은 7품관 이상의 자제가 배우도록 규정되어, 부모의 신분에 따라 교육의 기회도 달랐습니다. 당나라 중후반기가 되자 귀족 출신과 진사 출신의 관료들이 맞 붙은 우이의 당쟁(牛李黨爭)이 발생했지만 "금수저에 발끈하고 나선 명문이 아닌 집안들" 이라는 것도 사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뭐....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런 당나라의 귀족정치도 당나라가 무너지면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대타격을 가한 사람은 바로 오대 십국 시대, 후량의 태조 주전충이었습니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인 이연과 이세민이 건국한 당나라를 무너뜨린 주전충은 역설적으로  탕산의 빈농 출신 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주전충의 아버지는 본인이 장성하기도 전에 죽고 말았고, 주전충은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지역 유지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매일 두들겨 맞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당나라 말기 천하를 뒤흔든 '황소의 난' 을 틈 타 황소군에 들어갔다가 배신하여 정부군에 붙으며 세력을 확대한 주전충은 여타 세력들을 계략으로 누르고 힘을 키웠습니다. 당나라의 질긴 병폐 중 하나였던 환관들이 최후에 황제를 납치하여 봉상으로 납치하자, 주전충은 장안을 장악하고는 봉상의 실력자 이무정을 군대의 힘으로 눌러 굴복시켰습니다.


 주전충은 봉상에 입성해 72명의 환관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잡듯이 환관을 장안 등에서 잡아내 90여명이나 되는 환관을 추가로 죽였고, 이후 황제를 만나 환관 척살의 허락을 공식적으로 얻어낸뒤 지치지도 않고 그날 밤으로 제오가범(第五可范) 등 수 백 여명의 환관을 내시성(內侍省)에 몰아 넣어 죽였습니다. 환관들은 저마다 밖으로 울려퍼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冤號之聲,徹於內外)


 "억울 합니다! 억울 합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본래 잔악한 주전충은 그런 환관들의 단발마 따위는 아랑 곧 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도륙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바깥으로 나간 환관들도 잡아 들여 아주 씨를 말려버렸으며, 단지 어리거나 쇠약한 환관 30여명만 살려두어 청소를 하게 했습니다. 당나라 최후 100여년간 거의 황제를 꼭두각시 수준까지 만들었던 환관들은 이렇게 어이없이 전부 도륙되어버렸고..


 그 후가 조정에 있던 귀족들이었습니다. 귀족들을 쳐내는 것은 환관들을 쳐내는 일보다도  오히려 간단했습니다


 대략 천하가 혼란해진 무렵부터 세력을 가진 무인들이나, 환관들도 모두 '가자' 라고 불리우는 양아들을 대거 받아들여 자신의 사람으로 삼고 군사 세력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난세에도 문벌귀족들은 이러한 '가자' 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한고조를 비웃었던 그 고귀한 혈통에, 어디에서 온지도 모를 가자 따위를, 그것도 한두명도 아닌 대거 받아들인다면  그 문벌이 흐려지지 않겠습니까?


 주전충을 돕던 참모 중에 이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진사 시험에 여러번 도전했던 그는 끝내 급제하지 못하여 선비들과 문벌들에 대해 원한이 뼈에 깊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진은 주전충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이 무리들은 항상 스스로 청류라고 여기며 뻐기는데, 어디 한번 그들을 황하에 내던져 스스로 탁류가 되어보게 해봅시다!"(此輩常自謂清流,宜投之黃河,使為濁流!)


 그러자 주전충은 "참 재미있겠다." 며 한번 껄껄 웃고는,  그들을 모두 죽여 황하의 물 속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환관도, 귀족들도, 지난 수백여년간을 버틴 이 존재들은 이 파격적인 폭군의 앞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도륙되었습니다. 구체제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주전충에게 있어서는, 한신과 팽월, 소하를 비웃게 했던 귀족들의 족벌 따위는 그저 '재미삼아' 황하에 내던져 볼만한 구경거리를 만드는 정도의 가치에 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전충 : "캬, 끈 없는 번지점프 라이브 시청 꿀잼~~"





중간에 후당 장종 이존욱의 시대처럼 다시 귀족적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기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런 당말 이후의 오대십국 시대를 거치면서 귀족적 분위기는 쇠퇴하였고, 송나라와 원나라 무렵에는  대중문화의 전성기 가 펼쳐진다고 보통 이해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중문화가 발전하건 어쩌건 그야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계속 잘 먹고 잘사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최소한 자기들이 스스로 


"하은주 정도 아니면 옛날 황제들은  '신분이 천해서'  우리나라에 못 비빔" 


"옛날 공신들 개나 때려잡던 놈들이라 우리같은 고귀한 핏줄에 댈것도 아님" 


"솔까 황제 가문도 우리 집안에 비하면야 그냥 벼락출세한 가문인듯"  하고 난리치던 때에 비하면야 뭐 ...



MLB파크 신불해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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