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에 동원돼 강제 노역…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의 증언
[ CBS 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서산개척단 단원들이 간척한 땅. (사진=영화 '서산개척단' 스틸컷)
그들의 악몽은 1961년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판 '군함도' 사건이라 불리는 서산개척단의 진실이 57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른바 부랑자, 폭력단을 교화·선도하겠다는 목적 아래 이들을 납치해 갯벌을 간척하는 서산개척단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은 국가 권력의 비상식적인 폭력 아래, 신음했던 피해자들의 삶을 조명했다.
간척을 하러 나선 서산개척단원들. (사진=영화 '서산개척단' 스틸컷)
피해자 정영철 씨는 당시의 삶이 "인간이 아닌 개와도 같았다"고 증언한다.
관리인들은 '어머니 사랑, 아버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개척단원들에게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했으며, 식량 배급은 턱없이 모자라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작업 도중에 폭력과 사고로 죽어나간 단원들의 숫자는 셀 수 없다. 대다수 연고가 없는 이들이라 시신은 여전히 '무연고'로 매장돼 있다.
남성들 뿐만 아니었다. 국가는 멀쩡히 삶의 터전을 가꾸던 여성들을 납치하거나 속여 서산개척지로 데려와 남성 단원들과 강제 결혼을 시켰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는 자유조차 없었던 셈이다.
서산개척단원들의 합동 결혼식. (사진=영화 '서산개척단' 스틸컷)
미국은 박정희 정부에 간척사업 노동자들을 위한 원조금을 보냈지만, 서산개척단의 단원들은 정부로부터 간척된 토지 1천평을 무상 분배해준다는 기약없는 약속만 받았다.
월급을 받은 일도, 일할 수 있는 만큼의 식량을 배급받은 적도 없었다. 해당 원조금은 박정희 정부의 선거자금으로 이용됐다.
국가 권력에 의해 노예처럼 부림당하면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20년에 걸쳐 땅을 옥토로 만들어 놨더니 이제야 국가는 '땅에 대한 임대료를 지급하라'며 이들의 소유권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국가는 땅을 '가분배'하며 단 한 번도 이들에게 땅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다.
폭력에 의한 '피'와 노역에 시달린 '땀'으로 땅을 옥토로 바꿔놓으니 국가가 이를 갈취해가는 행태였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영화 '서산개척단' 스틸컷)
영화는 '눈부신 성장의 시대', '한강의 기적' 등으로 일컬어지는 박정희 정부가 국가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어떤 식으로 힘없는 국민들을 소모품처럼 다뤄왔는지 폭로한다.
화려한 성장의 역사 뒤에 숨어 있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비극의 역사. 그것은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이룩한 왜곡된 결과물이었으며 이들에게 자신을 살게 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청와대 앞에서 정 씨가 외친 절절한 한 마디는 노예나 다름없이 국가사업에 동원됐던 이들의 비참한 삶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를 발전시켜) 살릴 사람을 살릴 동안, 우리는 죽어갔다고.
영화는 묻는다.
지금이라도 국가는 서산개척단원들의 잃어버린 57년을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가한 무차별적인 폭력은 여전히 망령처럼 남아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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