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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참상, 아우슈비츠 수용소 / 히틀러의 나치가 만든 잔혹한 역사

  • 작성자: ro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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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12149
  • 2016.04.23

 

 살인악마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수용소 정문.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 라고 씌여있다


 수용소 내부


 파 묻을 흙구덩이에 버려진 시체들


 산을 이룬 희생자들의 신발


 가스실 내부


 생체실험에 이용된 아이들


 죽어 간 유대인 아이들의 소지품


 죽어 간 유대인 주인의 이름이 씌여진 가방들


 질서정연한 수용소


 살찐 독일군들


 

이 역사의 현장과 전쟁범죄의 전형을 보여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발길로 붐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우슈비츠의 외국 관광객 가운데 피해국 이스라엘과 가해국 독일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는 피해자 나라와 끝없이 과거사를 참회하는 가해자 나라 독일이 모두 정책적으로 이 도시로의 수학여행을 권장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 에 있었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 수용소.

나치 학살의 생생한 현장에 400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스실, 철벽, 군영, 고문실 등이 있다.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 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는 문명을 배반한 야만의 극치이며,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의 흔적이다.

나치 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강제수용소로 잘 알려져 있는 아우슈비츠 는 원래 인구 5만 명의 작은 공업도시로,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 이라고 한다.

 

 

이 도시의 외곽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생지옥을 만나게 된다.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끔찍했던 광기의 역사를 전해 준다.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인 하인리히 힘러 가 주동이 되어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그 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 의 명령으로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었으며, 1942년부터 대학살을 시작하였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

이처럼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다.

 

 

희생자의 유품은 재활용품으로 사용했고, 장신구는 물론 금니까지 뽑아 금괴로 만들었으며, 머리카락을 모아 카펫을 짰다.

뼈는 갈아서 골분비료로까지 썼으니 사람의 몸뚱이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1945년 1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치는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수용소 건물과 막사의 일부가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 의회에서는 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거대한 국제위령비를 비르케나우 에 세웠으며, 수용소 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또한 나치의 잔학 행위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유네스코는 1979년 아우슈비츠 를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하였다.

 

 

인구 5만명 남짓한 수용소 도시 오시비엔침 시가지를 약간 벗어난 수십만 평 들판에 자리 잡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겉으로는 아주 평화롭게 보인다.

고압전류가 흐르던 철조망만 아니라면, 아직 붉은 색이 고운 2층 벽돌 건물들은 전원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키 큰 포플러의 정연한 행렬과, 잘 가꾸어진 잔디와 꽃밭이 연출하는 겉모습이다.

 

 

그러나 줄 지어 늘어선 건물 안으로 한 발자국만 들어서면 관광객들은 고통스러운 정서의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수용소 지하감방 질식의 방 수감자들이 손톱으로 그린 벽화. 

해골같은 모습은 자신들의 얼굴이다. 

첫 건물에서는 끔찍하게 살해당한 유태인 시체를 태운 재그릇이 관광객을 맞아준다.

유럽 각지에서 강제로, 혹은 기만적인 수법으로 연행해 온 유태인 열차가 도착하면, 나치 는 노동력이 없는 어린이와 노약자, 부녀자, 불구자 등을 따로 집합시켜 즉시 가스실로 데려갔다.

총살, 교수형, 강제노동, 질병, 굶주림, 고문, 인체실험 등으로 죽은 사람들을 합쳐 이 수용소에서 목숨을 뺏긴 사람은 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렇게 죽은 시체들은 가스실에 딸린 소각시설로는 다 처리할 수가 없었다.

야외 소각장을 여럿 만들어야 했다.

 

                      

 

죽은 사람의 옷과 신발과 소지품들은 재활용품으로 쓰였고, 잘라낸 머리칼로는 카펫을 짰고 뼈는 갈아서 골분비료로 썼기 때문에 유태인은 죽어도 버릴 것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는 구역질을 참지 못해 밖으로 달려 나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휴먼 카펫 의 원료인 머리털이 전시실을 가득 메운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사람이 있을까.

 

 

갈비뼈가 앙상한 가슴에 말라붙은 젖가슴을 부끄러워하는 여인과, 인체실험 대상인 집시 소녀들의 앙상한 전신 사진은 체중 35kg이 넘는 여성 재소자가 없었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증명해 주었다.

한 여성 재소자가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고 빵 3개로 허기를 채웠다니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를 말해준다.

 

 

가스실 바로 옆에 설치된 소각장.

독일에서 만들어 현지에서 조립한 시체소각로. 

한꺼번에 900명을 살해하였던 가스실은 인간의 야수성을 웅변하는 증거다.

인근 제2, 제3, 제4수용소에는 그보다 더 큰 가스실이 있었다니 살인의 공업화, 살인기술의 과학화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가스실 옆에 있는 시체소각로는 아직도 가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탈주자, 탈주 방조자, 정치범 등을 처벌하던 지하 감방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대의 모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사의 방 이란 곳은 음식공급을 끊어 굶겨 죽이는 곳이고, 질식의 방 은 산소 결핍으로 서서히 죽게 하는 시설이다.

이 방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손톱으로 벽에 새긴 그림과 글씨들이 남아있다.

해골 같은 얼굴들은 아마도, 그 방에서 죽어가던 자신과 동료들 모습일 것이다.

 

 

1982년 교황청이 성인 순교자로 추서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가 순교한 곳이 바로 이 방이다.

폴란드 출신 사제였던 그는 탈주자 발생에 대한 징벌로 10명의 동료가 아사의 방 으로 가게 되자, 아내와 어린 자식 걱정으로 우는 젊은이를 대신해 그 방에 들어가기를 자청한 것이다.

 

 

면적이 54만평이나 되는 제2수용소 구내로 뻗은 철도 인입선.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남자는 강제노역장, 노약자는 가스실로 끌려갔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잔혹행위의 박물관이라 할 이 거대한 시설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입을 굳게 다문다.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야만의 극치가 모두 엄연한 사실이었다고 이 수용소 시설과 유물과 사진들은 웅변하고 있다.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출신이라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유태계 헝가리인인 그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이 죽음의 도시에 끌려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운명> 3부작에서 홀로코스트는 인간세상에서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규정하였다.

 그 예단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현대사에서 여러 차례 적중되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르완다와 코소보의 인종청소, 체첸과 중동지역 종족분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당초 설립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처음부터 유대인 학살을 주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 폴란드 정치범들을 수감하기 위한 수용소 시설의 필요성이 주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초 목적인 폴란드인 학살장소로의 이용 계획을 수정하여 나치는 전 유럽인들, 특히 독일 점령하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소련, 프랑스, 이탈리아, 북유럽, 그리스 등에 거주하는 각국 국적을 지닌 유대인들과 정치범들, 소련군 전쟁포로, 동성연애자, 여호와의 증인, 집시, 장애인, 범법자들을 아우슈비츠로 끌고 왔다.

잡혀온 이들 중 25~30%만이 노동력으로 인정받아 수용소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노약자, 병자, 장애인, 젖먹이 아이, 임산부를 중심으로 한 70~75% 는 곧바로 샤워실 또는 소독실이라 위장된 가스실로 끌려가 "싸이클론 B (Cyclon B)"라는 화학가스에 의해 처형되었다. 

 

 

수용소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연구결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약 150만 명에서 250만 명까지 희생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학자들마다 편차가 심한데 도착과 동시에 바로 가스실로 보내져서 명부에 등록되지도 않고 희생을 당한 사례가 많고, 가스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희생된 사례가 많아 정확한 수치를 알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할 것이다.

 

 

왜 독일인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유대인이 아닌 폴란드 정치범들을 수감하기 위해 이러한 학살장치를 만들었을까?


당시 개전 초기의 상황을 엿볼 필요가 있다.

1939년 히틀러는 스페인 내전(1936년 7월-1939년 3월)을 통한 신무기 테스트와 군사 전략을 최종 점검한 후 유럽 정복 전쟁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4국간의 외교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영국, 프랑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미온적인 외교대응을 하는데 사상적으로 대치상태에 있던 독일과 소련과의 물밑 외교가 본격적으로 수위로 떠올랐다. 처음부터 사면의 적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엔 무리였던 독일, 중앙 유럽의 진출을 모색하던 소련측은 급기야 주변국들의 예상을 깨고 개전 일주일 전인 1939년 8월 23일 독-소 불가침 조약에 조인하였다.

 

 

독-소 불가침 조약은 7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두 나라는 서로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며 모든 분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2)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제 3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 다른 나라는 그 제 3국을 어떠한 형태로도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두 나라는 두 나라 중 한 나라에 대항하는 어떠한 세력 형성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양국의 세력 범위를 확정한 비밀 의정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발트 해 국가들의 영토를 재조정하는 경우 양국의 이해 지역은 리투아니아의 북부 국경을 경계로 한다. 즉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는 소련의, 그리고 리투아니아는 독일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2)  폴란드 영토를 재조정하는 경우 독일과 소련의 경계는 나레프-비스와-산 Narev-Wisla-San 강으로 한다. 그리고 독립국가로서의 폴란드 존재가 앞으로 필요한 경우 이에 관한 문제는 미래의 정치 발전에 따라 해결한다.

 

 

독-소 불가침 조약에 의해 폴란드를 양분하여 서부전선은 극우 나치즘의 독일이, 동부전선은 볼셰비즘의 소련이 양분한다는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 폴란드의 운명은 판가름되었다.

독일은 일주일후인 1939년 9월 1일 단치히(현재 그다인스크: 폴란드 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오래전부터 자유 무역항이었음)의 반환을 요구하며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전쟁 발발 17일째 폴란드 동부 전선엔 소련의 붉은 군대가 모습을 보였다. 갓 독립(1918.11.11 1795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삼국에 의해 분할되었다고 1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해방을 맞이했다)을 되찾은 신생 폴란드는 선택의 여지없이 동부전선의 소련군을 독일로부터 자국을 보호해줄 해방군이요, 아군이요, 동지라는 생각에 그들을 환대했다. 결국 소련은 총성도 없이 폴란드의 절반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독일에 대해서는 폴란드인들이 결사항쟁을 했지만 독일의 군사력에 밀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27일) 폴란드의 서부전선(독-소 불가침 조약에 기인)을 빼앗겼다. 독일이 재 점령한 폴란드, 폴란드 서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은 폴란드 건국 전부터 지난 1차 세계대전 종결까지 수시로 영토를 침입해 부분 또는 전 영토를 점령, 지배했었다. 폴란드인들의 민족성을 말살하고 게르만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지만 가톨릭(블랙 마돈나 black madona, 쳉스토호바에 있는 기적을 행하는 성모마리아 성화)을 중심으로 한 폴란드 농민들의 지칠 줄 모르는 저항에 부딪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었다.

 

 

점령군 독일은 강도 높게 폴란드의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중 민중을 이끌 소지가 있는 엘리트들(귀족, 정치인, 행정관료, 군장교, 성직자, 교사 등)을 정치범이라는 죄목으로 전국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검거된 정치범들은 기존 범법자들을 빼낸 형무소들에 수감됐다. 하지만 턱없이 이러한 시설들이 부족해지자 과잉 폴란드 정치범들을 수감하기 위해 별도의 시설이 필요케 되었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1940년 6월 14일 친위대 대장인 H. 히믈러의 지시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설되었고, 그의 심복인 루돌프 헤스(Rudolf Hoss)가 관리 소장직을 맡았다. 첫 수감자는 폴란드 남서부 지역의 타르누프(Tarnow)시에서 잡혀온 728명의 정치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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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천만년백수님의 댓글

  • 쓰레빠  천만년백수
  • SNS 보내기
  • 얼마전 아우수비치 마지막 교도관(??)을 법정에 세웠다고 하네요. 이런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1

잭피르님의 댓글

  • 쓰레빠  잭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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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 정말 끔찍하네요.
1

파파로딩님의 댓글

  • 쓰레빠  파파로딩
  • SNS 보내기
  • 731부대가 아우슈비츠보다 훨씬 잔인했다고 들었습니다. 독일 나치들보다 일본놈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는데 전범국 대우는 왜 안 받는지
2

사라사님의 댓글

  • 쓰레빠  사라사
  • SNS 보내기
  • 정말 잔인하네요
0

제레미킴님의 댓글

  • 쓰레빠  제레미킴
  • SNS 보내기
  • 아픈역사중에 하나죠. 일본도 나치와 동일하게 대우 받아야되는데.. 그놈의 원자폭탄때문에...
2

coooolguy님의 댓글

  • 쓰레빠  coooolguy
  • SNS 보내기
  • 지금도 하이 히틀러 경례하면 잡혀가죠.
0

차칸마녀님의 댓글

  • 쓰레빠  차칸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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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아니기에...
0

찡럽님의 댓글

  • 쓰레빠  찡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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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도 친일파들을 다 숙청해야됩니다. 나치랑 비슷한 놈들인데...
1

tutu2145님의 댓글

  • 쓰레빠  tutu2145
  • SNS 보내기
  • 잘 봤습니다. 그래도 독일은 아직도 저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심판하고 있죠
1

꼬르도님의 댓글

  • 쓰레빠  꼬르도
  • SNS 보내기
  • 정치사범에서 인종학살로 변모한거였군요.
0

으히이으히이님의 댓글

  • 쓰레빠  으히이으히이
  • SNS 보내기
  • 사실 저 유대인 학살로 인해 유럽 정당들이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죠. 물론 그렇다고 유대인 학살을 옹호하는건 아닙니다.
0

루시페르님의 댓글

  • 쓰레빠  루시페르
  • SNS 보내기
  • 약 400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악마가 따로 없네요
0

ssook님의 댓글

  • 쓰레빠  ssook
  • SNS 보내기
  • 비교가 이상하긴 한데 아우슈비츠는 그냥 학살이지만 731부대는 인간실험이니 731부대가 더 극악무도한거 아닌가요?
0

아놔로그님의 댓글

  • 쓰레빠  아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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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개인적으로는 731부대가 더 인간이 저지를수 없는 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0

댜뷰님의 댓글

  • 쓰레빠  댜뷰
  • SNS 보내기
  • 아우슈비츠나 731부대나 인간이 저지를수 없는 참상이죠. 다른 점은 아우슈비츠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다 처벌을 받았는데 731부대는 그렇지 않았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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