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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말하는 서양인들이 본 한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작성자: 트랜스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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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42746
  • 2017.04.23

 

 

 

1. 마크 트롤로프는 그의 책 [The Church in Corea](1915)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말하면서 일본사람들보다는 어깨 위로 머리 하나 만큼은 크며 건강하고 잘 생겼다고 했다.


 

특히 천주교인들이 신앙을 위하여 순교하는 충실함을 찬양하고 있다. 또한


 

조국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는 등 용기있는 백성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2. 정확하고 빠른 운동에서는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강한 자립심과 자유로운 동작을 보이고 있고, 크기와 강한 점에서


 

중국인과 비슷하고 일본인보다는 우월하다.


 

국민의 좋은 특징과 질적 우월성을 비교하면 조선이 중국에 비해 단연 우위이다. 
(독일인 Ernst Oppert 의 <조선기행 Reisen nach Korea> 중)


원본 크기로 보시려면 그림을 클릭하세요. 

 

저도 이걸로 올리고 싶진않았습니다만......이미지가 별다른게 없어서..


 

말년님께 심심한 사과의 위로를..


 

 


 

  


 

3. 한국인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한국인은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하다.


 

한국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를 상당히 타고 났다.


 

외국인 교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한국인의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 나아가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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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ㄷㄷㄷ 맵시포스 평민..


 

 


 

 


 

 


 

 


 

 


 

4.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인은 잘 생긴 민족이다. 한국인의 얼굴은 타원형이고 정면에서 볼 때는 대체로 길지만,


 

옆 모습은 약간 오목하다. 코가 양미간에서 약간 평평하고 콧구멍이 넓기 때문이다. 

<참고1> 송나라 사신이 본 고려인의 특징 
".... 인물과 의복은 비록 대략은 중국과 같지마는 고려인은 대개 머리에 침골(枕骨)이 없으나 중이 되어 머리를 깎아 버리면 침골없는 것이 보이는데 퍽 놀랍고 이상하다. 옛날 [진사(晉史)]에는, 삼한(三韓) 사람들은 갓난 아이를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만든다고 하였으나 옳지 않다. 대체로 종류와 타고난 기품에 따라 그렇게 (납작하게) 되는 것이지 반드시 돌 때문에 넙적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 ( [고려도경] 중에서 )


 

 


 

5. 한국인들의 일상적 표현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활기차다.


 

얼굴 생김새는 가장 잘 생긴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아 힘이나 의지의 강인함보다는 날카로운 지성을 나타낸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잘 생긴 종족이다. 체격도 좋은 편이다.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3.4센티미터이다.


 

여자의 평균 신장은 확인할 수 없는데, 세상에서 제일 보기 흉한 옷 때문에 그 결점이 과장되는 여자들의 모습은 땅딸만하고 펑퍼짐하다. 남자들은 힘이 매우 세어서 짐꾼들에게 45킬로그램의 짐은 보통이다.


 

가족 생활은 대가족제이며 도덕적으로 지극히 건강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위의 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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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선인은 대단한 지적 능력이 있으며 예리하고 탐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단력을 갖춘 자랑할만한 민족. 조선은 위대한 가능성의 나라.
(영국 선교사 알렉산더 윌리엄슨의 글 (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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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목이 마지막선비 라고하더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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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림을 보니 

음? 엽혹진 할때가 아닌데 라고생각하게되네염-_-..


 

 


 

10.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도적질이 일어나기 힘든 훌륭한 교육.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없다.


 

 협잡을 업으로 하는 관아의 심부름꾼과 그들의 횡포, 그들의 악행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줄어들고 소작료가 적정히 책정되고 수납된다면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여행자들은 한국인의 게으름에 많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러시아령 만주에서의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근면함 그리고 그들의 검소하고 유족하고


 

안락한 집의 가구들을 보고 난 후에 나는 그것이 기질의 문제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의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관리들의 수탈이 아주 견딜 수 없게 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마저도 빼앗겼을 때에만 한국의 농민들은 폭력을 통한 절망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된다.... ...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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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을마다 북과 나팔, 피리, 몇 개의 솥 뚜껑이 있어서, 흔히 여름철의 고달픈 노동 시간 중에


 

한참 동안 일손을 멈추고 힘껏 합주하여 피로를 푼다.....


 

조선 사람의 커다란 미덕은 인류애 법칙을 선천적으로 존중하고 나날이 실행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동업 조합이나 특히 친척이 서로 보호하고 서로 원조하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부조하기 위해 긴밀히 결합된 단체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동포 감정은 혈족 관계와 조합의 한계를 넘어 확대되어 간다.


 

상호부조와 모든 사람에 대한 혼현한 대접은 이 나라 국민성의 특징인데, 속직히 말하여 그런 특징은 조선 사람을 우리 현대 문명의 이기주의에 물든 여러 국민들보다 훨씬 우위에 서게 하는 것이다. 
( 프랑스 신부 달레(C.C. Dallet)의 <조선교회사 서설> 중 )


 

 


 

12.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모나지 않고 상냥하며 남에게 순종을 잘하는 성품을 갖고 있다.


 

그들은 중국어를 이해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음악과 춤에 천품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고운 마음씨는 예나 다름이 없어 다른 민족의 모범이 되기에 넉넉하다. 
(프랑스 선교사이며 지리학자인 뒤 알드(Du Halde)의 글)


 


 


 


 


 


 


 

 


 


13. 아시아 민족 중에서 조선인보다 더 음악에 대하여 열렬한 애호심을 가진 민족은 없을 것이다.


군부의 어느 대신이 손풍금의 연주에 감동하여 평소의 엄숙한 태도를 던져버리고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오페르트)


*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어느 민족보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를 전문가들은 우리 전통사회가 드물게 보는 억압적인 사회였기에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을


정서적으로 발산시키는 수법으로 노래가 이용됐다는 이론을 든다.


한이나 원을 스스로 풀어야 하는 성격 때문에 우리 민족은 노래 중에서도


독창이 발달했고 그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미친듯이 악을 쓸 수 있는 노래방이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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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2> ". .... 한국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에 있게 된 것이 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은 내가 가본 나라 중에서 가장 노래를 많이 부르는 나라'라는 것이다. 나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 뉴질랜드 일본 태국 베트남 영국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았고 여행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노래를 잘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노래를 부를 자세가 되어있다. 혼자서도 부르고 여럿이 같이 부르기도 한다.


 

 라디오를 따라 흥얼거릴 때도 있고 텔레비젼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같이 부를 때도 있고, 길을 걷거나 차를 운전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5년 동안 근무한 일본에서도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자주 가라오케에 가곤 했다. 몇몇 대회에 나가 상을 탄 적도 있고 텔레비젼에 출연한 일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뭔가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과 같은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노래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은데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는 않다....... 정말 한국인은 어디서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박찬호 선수가 공을 던질 때도 노래를 할까? 잠실 야구장에 가서도 관중들이 응원하는 광경에 감동받았다. 야구장에서 관중들이 얼마나 노래를 많이 부르는지, 도대체 이 사람들이 노래하러온 것인지 야구를 보러온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은 노래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일요일 명동성당 미사에 갔을 때 들은 합창이다. 미국의 성당에서 다 같이 노래하는 것은 대개 억지로 하는 일 같은 것으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같지만한국 카톨릭 신자들이 노래하는 것은 진짜로 노래하는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느낀 것은 그들이 정말로 그곳에 있고 싶어 하고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일까. 한국인들은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 이 의문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주한 美 공보원 공보관 패트릭 리네핸. 주간조선 97.8.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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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선 사람들은 양반이나 서민이나 활쏘기를 좋아한다. 정부는 이 운동이 훌륭한 사수를 길러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장려하고 있다. ..... 조선인들은 유약하다거나 비겁하지 않다. 신체의 단련이며, 활쏘기, 사냥에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피로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위 달레 신부의 글 중 )


 

 


 

15. 남자들은 석전(石戰)을 매우 진지하게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른 봄이 되면 서로 적수인 두 마을 사람들은 얼어붙은 들판에 모여 어느 편이 힘이 센지를 겨루는 시합을 한다. 머리에 새.끼줄로 만든 헬멧을 쓰고 곤봉으로 무장한 선발대가 중립 지대를 가로 질러 상대편에게 덤벼들면 후방에서 방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언덕을 달려 내려가 상대편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이들은 돌팔매질을 능숙하게 하기 때문에 돌팔매질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일반적으로 이러한 실감나는 싸움 끝에는 몇몇의 사망자와 심한 부상자들이 많이 생긴다. 내가 조선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이러한 싸움이 벌어진 후, 전두골의 두개골판이 부숴져 뇌가 들여다 보이도록 심하게 다친 한 남자가 나를 찾아 왔다. (헐랭-_-;;;;;다이나믹)
( 의사, 외교관이었던 H. A. 알렌의 <조선견문기 Things Korean > 중)


 

 


 

 


 

16. 조선에서 내가 처음으로 한 절단 수술은 호랑이의 공격을 받은 어느 조선인의 팔을 절단하는 일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행한 절단 수술이었다. 그 환자는 팔꿈치 위쪽의 팔뼈가 물려 살이 썩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건강하게 회복되어 그 환자의 친구들은 무척 놀라워했다. 그는 호랑이와 외국인 의사로부터 살아서 돌아갔지만, 이제는 팔 없이 조상에게 가야 할 형편이었다. (알렌의 글 중 )


 

 


 

 


 

17. 한국에서 호환이나 금에 관한 이야기만큼 많은 화제거리가 있을까 싶다. 한국은 금생산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며 금부스러기들을 마치 금의 사태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 호랑이와 귀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밤에는 거의 여행하지 않는다. 관리의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이 부득이 밤에 여행해야 할 경우에는 마을에 들러 횃불가진 사람들의 호위를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행할 경우 길손들은 보통 몇몇이 서로를 끈으로 묶고 등불을 밝히고 횃불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꽹과리를 치며 길을 간다. 한국 사람의 호랑이에 대한 공포는 너무나 유명해서 '한국 사람은 일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일년의 나머지 반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중국 속담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비숍 여사의 글 중 )


 

 


 

 


 

 


 

18. 사람이 수백 명이나 살고 있는 꽤 큰 마을에서 나는 벌써 여러 번이나 키가 서로 틀리지만 나무로 만든 막대기가 여러 개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과연 이것은 특별한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자세히 보았을 때 나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가! 자세히 알고 보니 이것은 바로 동리의 우상신이었으며, 사원 혹은 기도소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것을 보호할 생각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행길 가의 땅바닥에 그냥 박아 놓았을 뿐이지 그 이상은 아무 의식도 갖추지 않고 있었다. 키가 대강 두 자에서 네 자 가량 되는 통나무 토막에 하느라고 하였다는 장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이 그 나무 껍질을 벗기고 그 위쪽 끝에다가 가장 원시적인 기술로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을 새긴 것이 곧 모든 장식이다. ( 오페르트)


 

 


 

 


 

19. 한국은 유교로부터 윤리를, 불교를 통해 미래의 소원을,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병이나 초상 등 민감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무속 신앙에 의존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종교를 무리 없이 포용하는 그들의 삶은 인상적이다.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학자)


 

 


 

 


 

20. 한국 사람들은 과음하는 관습이 유난스러워서 주정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예리한 비숍여사인데?). ... 내가 한강을 여행하며


 

관찰한 결과로는 취해버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품위를 떨어 뜨리는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인이 술을 좋아하는 첫번째 원인은 아마 도시에서조차도 차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과 사치스러운 청량음료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듯하다. 아마도 식수로 쓰는 물이 훌륭해서 대부분 그냥 먹을 수 있는 탓일 것이다. 농부들은 식사 후에 뜨거운 숭늉을 마시며, 꿀물은 사치품으로 생각하고, 잔치 같은 경우에는 귤 껍질이나 생강에서 우려낸 액체를 마신다. 귤껍질을 말리는 것은 한국 주부들의 큰 일 중의 하나이다.


 

모든 초가집 지붕에는 말린 귤 껍질들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비숍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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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4> 고려시대 음주 문화 
" 고려인들은 술을 좋아하되 좋은 술은 얻기가 어렵고, 서민들이 마시는 것은 맛도 싱겁고 빛깔도 탁한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맛있게 마신다." ( 宋의 사신 서긍의 [고려 도경] 중에서 )


 

 


 

<참고 5> 현재의 한국 
세계 4위의 양주 수입국, 세계 1위의 1인당 술 소비량, 음주운전 적발과 그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은 나라. 1년에 소비되는 술 값 = 4조 6백억원, 음주에 따른 사회적 손실 = 9조 8천억원


 

-_-... 


 

 


 

21. 동북 아시아 지방에 있는 주택에는 고래가 있다. 고래는 관(管)으로 된 일종의 화덕으로서 감자를 굽듯 사람을 굽는다. 서양 사람들이 벽돌로 침대를 만들고 그 밑에 발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를 설치한 것과 똑 같다. 집의 한쪽 끝에 있는 아궁이로부터 다른쪽 끝의 굴뚝에 이르기까지 연관(煙管) 위를 벽돌이나 구들로 덮는다. 그래서 부엌에서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고기를 굽는 불은 저쪽 방 안에서 앉아 있거나 자고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데 사용된다. 다만 불을 때지 않으면 방이 차갑게 식고 밑불을 죽이면 열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애로가 있다. 
(W.E. Griffis의 <은자의 나라 한국 Corea, The Hermit Nation>중)   

 


 

 


 

 


 

 


 


22. 농부나 일꾼들이 사는 집이 아무리 누추하다 하더라도 항상 깔끔한 작은 침실이 딸려 있는데, 진한 갈색의 유지가 발라져 있는 구들과 시멘트로 된 방바닥은 하루에 두 번씩 밥을 하느라고 때는 불 때문에 항상 따뜻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들은 이웃 나라 사람들보다 더 편하게 산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일본의 집들은 춥기로 유명하고, 유일한 난방 시스템은 손가락을 따뜻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화로가 전부이며, 또 중국의 집들은 아주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가지 난방 시스템은 북쪽 지방에서 사용되는 식으로 불에 달군 돌 이외에는 집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중부의 가옥들은 매우 추울 경우에도 집이 전혀 따뜻하지 않아 사람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그저 옷을 더 껴입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국인 여행가인 헨리 노먼은 조선을 여행하는 동안 놀랍고 아름다운 이 나라를 매우 칭찬하였으며, 베이징을 방문한 후에 조선의 수도인 서울은 베이징과 비교하면 천국이라고 쓰곤 했다.  (알렌의 견문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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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조선인들이 등으로 크고 무거운 짐들을 쉽사리 운반할 수 있다는 것에는 벌써 주목을 하였지만, 이곳 공주(公州)에서는 운반하는 짐의 무게가 차원이 달라 두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짐을 운반하는 기술에는 수천년의 경험이 어려 있다. 최소한의 힘을 들여 최대한의 무게를 운반하는 비결은 그들에게는 더 이상 비결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지게는 아주 이상적으로 고안이 되어 있어서, 엉덩이와 등, 어깨에 무게를 고르게 전달한다.


 

이런 이유로 다리만 지탱할 수 있는한 엄청난 짐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을 빼놓고는 이 방법을 착안한 민족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운반력이 강한 중국인과 폴리네시아인들의 경우, 어깨 위에 걸친 막대의 양쪽에 짐을 걸고 무게 중심을 맞추는데, 만약에 짐이 분할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일 때에는 막대의 다른 한편에 무게가 같은 물건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또한 운반하는 데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 이렇게 운반하는 사람을 지나칠 경우, 이 사람이 갑자기 방향을 틀 때는 운반대에 죄없이 한 대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지게의 경우는 훨씬 간단하다........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대량의 짐을 장거리 운반하는 능력과 엉망인 도로 사정은 코레아가 수백 년 동안 대부대의 행상을 갖게 된 원인이


 

되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의 <코레아 코레아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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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냄새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 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어떤 빨래감은 실을 뽑아 다시 꿰매야 하며, 또 어떤 빨래감은 부뚜막에서 적어도 세 번은 삶아야한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나무판에 억척스럽게 문지르거나, 판판한 돌 위에 놓고 무거운 방망이로 힘겹게 두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것들을 들고가 빨랫줄에 널어 말린다. 빨래가 다 마르고 난 뒤에는 다시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둥근 나무 방망이로 두꺼운 공단처럼 광택이 날 때까지 한없이 두드린다.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 서울의 깊은 밤, 그 괴괴한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가 있다면 한밤내 잠 못 자고 다닥 빨래감을 두드리고 있는 다듬이 방망이의 그 쓸쓸한 소리이다. (비숍 여사의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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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여자분 너무이쁘시네요ㅋㅋㅋ딱 나닮았어^▽^


 

빨래하는게.................


 

 


 

27. 옷은 특히 모시 옷일 경우에는 다림질하는 대신에 비단과 같은 광택이 나도록 하기 위해 다듬이질을 한다. .... 네개의 방망이가 내는 율동적인 소리는 매우 기이하여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은둔 생활을 하는 조선의 여인들은 인내성이 강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일변하여 매우 광포해지기 때문에 생각하기조차 무시무시하다. 그때 다듬이 방망이는 무시하지 못할 믿음직한 무기가 되며, 남자들도 그 방망이를 무서워한다.. (알렌의 글 중)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매우 광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6> 한국인과 흰 옷 
① 고대 한국인들도 흰 옷을 즐겨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인들은 흰 옷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소매가 큰 두루마기와 바지를 입었다. 이러한 풍습은 고구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문헌에는 신라인들이 흰색 옷을 숭상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백제에 대해서도 의복이 청결하다는 점을 일부러 밝혀놓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는 것은 밝고 깨끗하고 우아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의복 생활에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②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테]의 국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주)서광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옷 색깔은 하얀색이다. 국내에 내놓은 45개 색상 라코스테 셔츠 중에서 지난해 판매율이 가장 높은 것이 [흰 색]으로 28.7%를 차지했다. 2위는 빨강 7%, 이어 하늘색(6.8%), 검정(6.4%), 밝은 핑크(6%), 짙은 청색(5%), 연두색(4.6%), 베이지색(4.4%), 노랑(2.7%) 순이었다. 이에 비해 유럽인은 짙은 청색(네이비 블루)를 즐겨 입는다. (조선일보 97.5.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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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첨부한 사진보면 정말 거의 다 백색의 옷을 입고계신게 보이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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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모자를 쓰지않은 한국인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다. 모자의 종류도 수천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모자 왕국이다. 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다양한 모자를 지니고 있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공기와 빛이 잘 통하고 여러 용도에 따라 제작된 한국모자의 패션을 파리인들은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프랑스인의 기록 ) 


 

 


 

1877년 영국 화보지 그래픽지 [조선의 모자]라는 특집 다룸.


 

 


 

30. 영국인 여행가는 신변보호를 위해 경호원을 쓰는 대신 한국인들이 가장 호기심을 갖는 서양의 잼, 통조림, 빵 등을 소지하였으며,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이것들을 보이며 어려움을 돌파했다. 특히 조선인들은 성냥에 매료돼 서로 성냥을 켜보려고 몰려들기도 했다. 이 덕분으로 조선의 지방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 영국의 화보잡지 [그래픽] 1888년 12월 22일자)


 

 


 

31. 사당에서 정상을 올려다 보면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구비구비 이어진 숲의 물결, 시냇물의 아스라한 반짝임, 구릉의 완만한 선들, 그 위로 해발 1829미터가 넘는 금강산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 있었다. 아, 나는 그 아름다음, 그 장관을 붓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진정 약속의 땅 ( A fair land of promise ) 인저! 진정코 ! 
(비 숍 여사)


 

 


 

 


 

32.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의 운명을 놓고 서로 대결한 상태에 ,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국의 겨울 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 기선인 상하이행 헨릭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그리고 헨릭호가 강 위로 천천히 증기를 발산하며 움직일 때, 옛스러워 흥취있는 한국의 국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의문들을 자아내었다. (비 숍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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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코리아’ 민족은 양반들뿐만 아니라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 들조차도 귀족의 티가 흐른다.


 

 체격과 외모 면에서도 일본인, 중국인들과 비교해 매우 귀족적이다.


 

특히 여성들은 일본, 중국 여성들보다 훨씬 미모가 뛰어나다.


 

또한 머리 전체를 뒤로 땋아 넘 긴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은 헝가리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여


 

퍽 인상적이었다. (헝가리 민족학자 바라소시 1929년 '코리아..'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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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인구와 경제수준에 대한 논쟁이 나오면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이야기가 나와서

구한말 외국인 기록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다시 읽어봤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은

전체적으로 봤을때 작자의 주관적 의견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객관성이 결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시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소중한 자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제 나름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을법한

내용들을 최대한 찾아 옮겨봤습니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하나하나 읽다보면

100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공감할만한 내용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신복룡 역주에 집문당 판입니다.

 

 

14P

첫번째 여행에서 조선은 내가 여행해 본 나라중에서 가장 흥미 없는 나라라는 인상이 들었지만,

전쟁기간 중과 전쟁 후의 조선의 정치적 불안, 급속한 변화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나로 하여금 조선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반면에 러시아인의 통치하의 시베리아에서 본 것처럼 조선 사람의 품성과 근면성은 장래에 그 민족에게

 훌륭한 가능성이 기대된 다는 점에서 나를 일깨워 주었다.

조선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처음에 틀림없이 느꼈던 불쾌감을 극복할 만큼 또 다른 깊은 인상을 받는다.

 

25P

조선사람들은 분명히 잘생긴 인종이다. 체격도 좋다. 남자의 평균 키는 5피트 4.5인치이며 여성의 키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어울리지 않게 작다.

그들의 모습은 가장 추한 복식으로 과장되어 땅딸막하고 펑퍼짐하다. 남녀 모든 계층 사람들의 손은 

매우 작고 희고 멋있게 생겼다.

 

25P

가족수를 평균해 볼때 인구는 1,200~1,300만 명 정도 될 것이며 여자들의 수가 더 적은 편이다.

정신적으로 조선 사람들은 많은 재능을 타고 났는데 특히 스코틀랜드의 말로 '영리하고 눈치빠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교사들은 그들이 정신적인 치밀성과 빠른 인식 능력, 빠른 외국어 습득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 그들은 의심, 교활함, 비진실성 등의 통속적인 

악덕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간에 신뢰가 없다. 여성들은 격리되어 있으며 매우 열등한 위치에 있다.

 

27P

기후는 분명히 세계에서 가장 좋으며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외국인들도 어떤 풍토병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으며.. 중략

조선의 겨울은 아주 훌륭하다. 겨울의 대기는 맑고 푸르고 구름이 없는 하늘과 매섭지 않은 날씨속에서 매우

 건조하다. 그리고 밤은 쌀쌀하다.

 

28P

서울 근교에 있는 산, 해안선, 무역항 그리고 주요 도로의 황폐함은 강한 인상을 주며 조선에 대한 매우 좋지

 못한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남부와 동부의 산들, 특히 두만강, 압록강, 대동강, 한강의 근원지를 포함한 산에는 상당한 수풀이 

우거졌다.

비록 상당한 양의 재목들이 매년 이 강들을 따라 뗏목 모양으로 운반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벌목꾼들은 눈에

 띌 만한 흔적을 남기지는 않은 곳들도 많이 있다.

 

31P

도로는 매우 열악하며 심지어 도심지의 대로도 승마장의 트랙보다 좋은 것이 없다.

상품은 어디에서나 사람, 황소 그리고 말의 등으로 운반되며

제물포에서 서울까지의 철도는 미국 특허권자에 의해 건설되어 사실상 곧 운행하게 된다.

 

32P

정부, 법률, 교육, 예절, 사회적 관계 그리고 도덕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현저하다.

이러한 모든 점에서 조선은 그의 강력한 이웃에 대해 무기력하게 반응한다.

비록 조선은 전쟁으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조선은 중국을 동경하고 

있으며

고결한 이상과 소중한 전통, 도덕적 교훈을 위해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의 문학, 미신적 관습, 교육 제도, 조상숭배,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은 중국풍이다.

사회는 유교적 형태로 조직되어 있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동생에 관한 형의 권리는 중국에서와 

같이 완전히 승인되어 있다.

낡아빠진 사회적 조건, 말할 수 없는 구습, 고칠 수도 없고 개혁할 수도 없는 동양적 사고,

그리고 중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인종적 강인함도 없이 중국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기만 하는 이 땅에 

서양의 토양에서 쓰던 홀씨가 떨어졌다.

 

36P

조선 사람은 색다른 인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닮지 않았다.

오히려 양자보다 더 멋있어 보이며 일본인보다 체격이 더 좋다.

 

47P

서울의 낮과 밤, 왕궁과 빈민굴, 말할 수 없는 천박함과 사라져가는 화려함,

목적 없이 떠도는 군중, 그리고 중세풍의 행렬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전근대적인 문화의 찬란함은 지구상의 어느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다.

오물은 길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들의 예의와 관습을 붕괴시키려는 많은 세력에 직면하여,

이를 고수하려는 안쓰러운 저항도 보인다.

 

50P

나는 서울의 내부에 관해 서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북경을 보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불결한 도시라고 생각했고

소흥을 가보기 전까지 서울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대도시인 수도가 이토록 불결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50P

비틀어진 소로의 대부분은 짐실은 두 마리 소가 지나갈 수 없을만큼 좁으며

한 사람이 짐을 실은 황소를 겨우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인해서 더욱 좁아진다.

하수도에는 각 가정에서 버린 고체와 액체의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불결함과 악취 나는 하수도는 반나체 어린애들과

피부병이 오른 채 눈이 반쯤은 감긴 큰 개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51P

상점은 도시의 일반적인 모습을 초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물건값을 모두 합쳐 봐야 6달러 가치 정도인 상점들이 많이 있다...중략...

상점은 그냥 상점일 뿐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특징적인 하나는 그들이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51P

가게에서는 소박한 놋제품 식기와 다른 황동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오래된 무늬에 검은 칠로 상감한 약간의 자개도 매매되고 있다.

비단실과 금실로 된 자수품이 있으나 디자인이 조악하고 색감이 흉하다.

영국 공사관 부근에는 시집갈 때 가지고 갈 가구나 옷장을 만드는 거리가 있는데

이곳을 '가구거리'라고 부른다. 이 장롱들이 비록 보기에는

크지 않을지라도 대단히 멋있다.

 

56P

8시경이 되면 거대한 종이 울리는데 이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이며

그제야 여인들은 밖에 나가 즐기며 그들의 친구를 방문한다...중략...

12시에 다시 종이울리면 여인들이 물러가고 남자들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간다.

지체 높은 가정의 부인이 나에게 들려준 바에 의하면, 그는 낮에 서울 거리를 결코 나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70P

조선 사람에게 서울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서울에는 예술품이 없으며 골동품이 드물고 공원도 없다.

왕의 거동 이외에는 볼 만한 것이 없으며 극장도 없다.

다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서울에는 없다.

 

86P

조선 사람들은 대개 생활 필수품 보다는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게으르게 보였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의 결과로 얻은 것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없는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게을러 보일 

뿐이다.

한 사람이 '돈을 벌었다'고 소문이 나거나 또는 심지어 호화스러운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고 하면

바로 근처의 관리나 그의 부하들의 탐욕스러운 주목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인접한 양반으로부터

대부금을 갚으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96P

돌탑 근처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과음하는 습관이 드러나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다.

사공들은 과음으로 저녁 휴식을 즐겼다...중략...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과음은 조선의 독특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것이 불명예가 아니다.

 

106P

조선의 악담 중에는 양반이라는 특권 계층에 대한 것이 많이 있다.

양반이라는 존재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한이 있어도, 심지어는

자기 아내의 삯바느질이나 빨래 삯으로 먹고 사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직접 일해서는 안된다.

 

157P

농작물들은 깨끗하고 논에 있는 도랑들은 물을 잘 유지하기 위한 관개용 통로였다.

현명한 정부라면 일본보다 조선의 백성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토양은 조선과 같지만 조선의 기후 조건은 일본보다 더 훌륭하기 때문이다.

 

161P

조선의 음악이 귀에 거슬리고 부조화한 이유는 조선의 음계가

유럽의 그것과 다르고 화음의 끝에서 전율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악기는 매우 많은데 정제되지 않았다. 북, 꽹가리, 징, 캐스터네츠 종류의 타악기가 있다.

 

174P

관리의 수탈에 격분한 농민들이 한두 지방에서 일어나 때로는 폭력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면서 공격적인 관리들을 몰아냈다.

 

183P

만주의 관습의 대부분은 만주어와 함께 사라졌다.

 

220P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 사람 이주민들은 중국인을 능가했다.

그들은 실제로 중국 만주에서 야윈소를 사들여 살찌게 키워 팔았다.

조선에서 살고 있는 조선사람에게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확실한 관계 당국자의 주장해 의하면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조선사람들은 중국인들과의 야채 시장의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여 이 도시의 상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229P

조선으로 돌아오는 나날들은 나로 하여금 자신의 정부가 아닌 정부 밑에서

살아야 하는 조선 사람들의 상황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중략...

1866년까지 그곳에 100세대가 정착했으나 너무도 가난하여 러시아 정부는 그들에게 경작에 필요한

가축과 씨를 나누어주었다. 1869년 한 해 동안에 조선의 북방에는 심한 기근이 벌어져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4,500명의 조선 사람들이 프리모르스크로 이주했으나 그들 중 3,800여명은

절대 빈곤의 상태에 바져있었다. (초기 조선인들은 절대 빈곤이었으나 이후 30년뒤는 달라짐)

 

229P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남자들의 태도는 미묘하지만

사실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여자들은 비록 명목상으로는 은둔의 습관을 지켜

나가고 있었지만 조선의 가정에서 그들의 특징이었던 비굴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만 자란 조선 사람들은 아내에 대한 의심과 독단, 노예 근성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아시아적이라기보다는 영국적인 남자다움과 독립심으로 바뀌었다.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었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스크에서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을 보고) 나는 나의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238P

조선의 독립을 선물한 일본은 왕에게 중국의 종주권을 공식적이고도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관리의 부패를 청산하며 조선의 과업을 개시하도록 강요했다.

일본은 국왕이 종묘에 나아가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고 선조들의 영령 앞에 개혁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246P

왕비 전하(명성황후)는 그 당시 40세가 넘었으며 매우 멋있어 보이는 마른 체형이었으며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칠흑같이 검었으며, 얼굴빛은 상당히 창백했는데 그 창백함은 진주빛 분을 발라

더욱 희게 보였다. 눈은 냉철하고 예리했으며 반짝이는 지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247P

세자(순종)는 비만하고 의지가 박약해 보였다. 세자는 불행하게도 심한 근시였으나

왕실의 법도에 따라 안경을 쓸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세자는 완전히 병약한 환자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으며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249P

그때마다 나는 왕비의 우아하고 매력적인 예의 범절과 사려 깊은 호의,

명랑함과 예리함 그리고 놀랄 만한 그의 화술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중략...

왕비는 중요한 직책의 거의 대부분을 그의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성공한 재능과 위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적들이 상당히 많았다.

 

252P

동시에 그는(고종) 일반적인 통치력이 미숙했다. 그는 한없이 선량한 사람이며 사상면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일 성격이나 지식면에서 보다 더 확고하고

강인하고 간사스러운 신하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훌륭한 통치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나약한 성격은 그의 운명을 비운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255P

(고종이 말하길) '여왕은 과연 가난한 조선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가요?

여왕은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건강과 행복, 번영을 기원합니다'...중략...

'영국은 우리의 가장 우호적인 친구입니다'

이러한 찬사를 듣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다만 그들의 어조에서 풍기는

국운의 쇠퇴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257P

조선의 봉건체제인 '구체제'가 해체기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근대적인 신체제는 완전하게 들어설 여지가 좁았다.

 

258P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발전상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졌던 조선의 소수관리들,

이른바 개화파를 제외하고 그 당시 대다수의 조선 관리들은 근대적인 신체제에 대해서

아주 비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일본에 의한 모든 개혁적인 변화가 표면상 내정 개혁이지만

이면상 내정지배라는 표리일체로 이루어지고 있는데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259P

서울 중앙 관청이 부정부패의 중심지이긴 했지만, 모든 지방 관청은 보다 작은 규모로

중앙 관청의 부정 부패 행위를 그대로 답습했으며 부정직한 관군과 게으른 관리들의

횡포와 가렴주구는 핵심적인 세도가의 수입을 살찌게 만들었다.

 

259P

일본이 주도했던 조선 관리 체계의 정풍인 조선의 내정개혁은 참으로 힘드는 작업이었다.

조선의 전통 사상에서 명예와 정직의 전통들이 설령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조선에서

그것들은 몇 세기 동안 잊혀진 것임에 틀림업었다.

조선말 관리에게는 청렴결백한 전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정 부패가 극도로 혼탁한 수준이었다.

일본이 조선의 개혁 작업에 착수했을 때 조선에는 크게 두 신분 계급인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이 있었는데

착취계급에는 관직에 임명된 막강한 병권을 가진 무반도 포함되었다.

 

259P

내가 조선을 떠날 때인 1895년 2월 12일까지 갑오경장의 일련의 개혁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 당시 '관보'는 그 짧은 기간의 유례없는 변화를 기묘하게 반영했다.

 

260P

일본의 커다란 과실 중의 하나는 개혁 실행의 전술상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1894년 7월에 일본이 궁궐을 강점하고 국왕을 비록한 왕비, 대원군을 농락한 것은

비록 갑오 개혁이 의심스러운 정치적 필요, 즉 조선지배의 목적하에 반봉건적인 근대화 개혁의 객관적 요구를

반영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도 실제로 주권국 조선에게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감을 느끼도록 만든 과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261P

이처럼 조선의 '구제도'가 일본인 고문들의 압력을 받아

매일 바뀌고 있었으며 대체로 더 좋은 방향으로 과감하게 변화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개혁 조치가 의도적으로 너무 빈발했기 때문에 모든 개혁은 별안간 나타난 백성들을

혼란한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당시 조선은 청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265P

내가 조선을 떠났을 떄쯤 갑오경장의 추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일본은 조선 사람들을 통해 조선 정부를 본격적으로 철저하게 개혁시키려고 했으며,

아주 많은 개혁안이 공포되었거나 계획되어 대부분의 악법과 악습들이 이미 일소되었다.

자국의 절대 주권을 침탈당한 조선의 국왕은 실제상 일본으로부터 봉급을 받고

그들에 의한 개혁 법령에 이름을 대신 써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271P

44세 나이의 왕비는 한 우방국가의 공사에 의한 피비린내 나는 음모에

자극을 받은 자객들의 손에 그렇게 죽어갔다.

그는 영리하고 야망이 있으며 음모적이고 매력 있고 아름다웠던 조선의 왕비였다.

...중략...이노우에 공사의 말에 따르면

'영리하고 빈틈없는 면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그는 적을 달래고 부하들의 신임을 받는 면에서도 

자가 없다'

 

281P

지난 3세기 동안의 유산이 되어 버린 증오심으로 그곳 주민들은 일본군들을 몹시 싫어했다.

 

298P

보부상이나 행상인들의 조직적인 단체도 조선에서 호기심나는 모습 중의 하나로서

가장 중요한 많은 상인 단체의 하나였다.

시골 마을에는 상점을 볼 수 없었으며 혹시 작은 도시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적었다.

사실상 아무도 물건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날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살수 없었다.

평소에는 우울하고 침체되어 보이든 조선의 마을은 장날이면 활기를 띠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중략... 마을의 중심으로 향하는 규치적인 순회에 오른 보부상들은 근면하고 존경을 받을 만 하다.

 

320P

농부들은 조선에서 최종적인 먹이일 뿐 권리나 특혜를 갖지 못하고 있다.

착취하는 방법의 예로 남부지방의 한 마을을 보면, 관찰사는 모든 가구에

100냥을 징발하여 전신주를 세운다.

그러면 수령은 그것을 200냥으로 늘리고 다시 아전은 250냥으로 늘려 백성들은 실제로 250냥을 납부한다.

그래서 아전은 50냥을 갖고 지방관을 100냥을, 관찰사는 100냥을 착복한다. 이런식으로 부과액은 

부풀려진다.

이러한 수탈을 폐지하고 수령의 봉급을 삭감하는 칙령이 최근에 선포되었다.

 

322P

나는 조선이 희망 없고 무기력하고 한심스럽고 애처로운 존재이며 어떤 큰 힘에 의해 퉁겨 다니는 

배드민턴의 공과 같은

사람들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부 시베리아로 이주하여 정열적으로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조선의 농민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 낮은 세금과 생업의 보장을 받지 않는 한 1,200~1,400만의 

조선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327P

훌륭한 기후와 적당한 강우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내란과 강도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조선 사람들은 행복하고 잘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만약' 착취하는 아전과 강제 징수 그리고 관리들의 

악덕한 음모를

철저히 금지시키고 토지세를 공평하게 부과하고 법이 불법의 도구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것이 된다면 

조선의 농부들이

일본의 농부만큼 행복하고 주지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는 '만약'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어떤 곳에서 번 것이든 간에 '자신이 번 것을 안전하게 

지킬수만 있다면'

지치고 무감각한 민족을 바꿀 수 있을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개혁은 일본에 의한 것이며 조선은 그러한 개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계획의 조화로운 일을 만들거나 역할을 담당하는데 너무 경험이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밖에도 그러한 계획을 수행해야 하는 남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통과 인습으로 타락했다.

개혁은 변덕스럽고 단편적 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관습에 간섭하고 작은 일에도 간섭함으로써

조선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다. 내가 도처에서 느낀바에 의하면 일본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조선을

종속국으로 삼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327P

여행자들은 조선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으나 러시아와 만주에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활력과

인내를 보고 보고 그들이 집을 치장하거나 그들의 번영한 모습을 보고 난 후에 나는 조선 사람의 게으름을 

기질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조선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가난이 최고의 보신책이며 가족과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을 필요이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탐욕적이고 타락한 관리에게 노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관리의 강제 징수가 아주 참을 수 없고 그의 생필품을 제공하는 수단마저 잠식될 때면 농부는 권리 

구제의 유일한 방법으로 무력에 호소한다.

관리들은 죽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나쁜 평판을 많이 얻은 수령의 아전들을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태워 죽이는 일이 있었다.

비록 분노가 절정에 이르면 두려운 폭력의 행위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폭발한 

항상 정당한 거싱었고 효과적인 항변이었다.

 

327P

가렴주구의 형태 가운데는 강제노역, 합법적인 세금의 양을 두세배로 늘리거나, 강제로 대부금의 상황을 

요구하거나

소송의 경우에 가혹한 뇌물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가령 어느 사람이 조금만 돈을 모았다고 알려지면 관리들은 그것을 빌려 줄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 요구를 받들여 돈을 빌려주면 빌려준 사람은 원금이나 이자는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만약 거절하면 체포되어 구금되며 당사자는 그의 친척이 그 돈을 낼 때까지 구타한다.

이러한 정도로 가렴주구가 심하기 때문에 겨울이면 추위가 심한 북쪽 지방의 농부들은 수확한 후에

현금이 생기면 땅에 구멍을 파고 돈을 집어 넣어 그 위에 물을 붓고 얼린 다음 그 위에 흙을 뿌린다.

그렇게 해야 관리들과 도적들로부터 벗어나 아주 안전하게 그 돈을 지킬 수 있다.

 

331P

농촌 여성들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고된 일을 며느리에게

전가할 때 까지 꾸준히 일만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른 살에 이미 쉰 살로 보이며 마흔살에 이가 거의 빠진다...중략...

여자는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낯선 남자가 손을 만지면 자살을 했다...중략

어느 누구도 여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법이다. 남편이 아내의 방에 숨어있다 하더라도

그가 반란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를 잡아갈 수 없다.

 

333P

소녀들은 위한 토착적인 학교는 없다. 비록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한글을 배운다고 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1,000명중에 2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대체로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339P

조선 사람의 특성인 둔하고 무감각한 표정

 

344P

조선은 소문이 많은 나라다. 조선 사람들은 알고 들은 것을 가슴에 묻어 두는 법이 없다.

 

349P

내가 알기로는 남자들의 장식으로는 상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그토록 존경받는 것이 없으며,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없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애국심은 없지만 강한 민족적 본능이 있다.

 

351P

어떤 아버지는 두 아들이 머리를 자르자 비탄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머리가 잘린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로부터 폭력을 받을 것이 두려워 감히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

 

357P

지난 날의 조선의 정부체계는 현왕조의 출범에서부터 1894년 후반기에 이르기까지

단지 몇 차례의 교체와 부수적 조치만 있었을 뿐이지 중국 명나라 정부체계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었다.

왕은 이론적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에서도 절대적이다.

 

358P

지방에는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집권 남용이 자행될 뿐만 아니라

모든 중앙 정부 체계는 직권 남용의 핵심부로서 밑도 끝도 없는 부패의 바다여서,

모든 산업에서 그 활력을 빼앗아 가는 착취 기관일 뿐이다.

관직과 재판의 판결은 마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으며 정부는 빠른 속도로 쇠퇴해 있기 때문에

오직 뇌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원리가 되고 있다.

 

359P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치 제도를 일본의 정치 체제와 유사하게 만들려고 했던 견해는

당연하며 비난 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바람직하게 정부를 개편하기 위해서 오토리 게이스케 공사는 국회를 만들어

거기에서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부(Department)를 만들도록 국왕에게 권고했다.

 

370P

(조선의) 교육은 사고력을 발전시키거나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어려운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노력과 그것을 통해서 그에게 가져다 주는 지식은

그 자체가 바람직한 정신적 훈련이었지만 공자와 맹자의 윤리적 가름침으로서는 비록 미흡했지만

가치 있고 진실한 것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이상으로 유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70P

편협, 관례, 자부심, 거드름, 노동을 경멸하는 잘못된 위선, 이기적 개인주의, 너그러운 공공 정신과 

사회적 신뢰의 파괴,

2,000년 관습과 전통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노예 근성, 편협한 지식, 얕은 도덕심, 그리고 조선 교육 

체제의 산물로 나타난

여성을 비하하는 풍조는 조선의 교육제도가 낳은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373P

조선 사람들의 개혁적인 교육 사상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서

초등 교육 제도와 효과적인 사범학교 그리고 중학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373P

77명의 학생들이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일본어 습득에도 훌륭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수학적 적성과 논리력을 부족함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조선에서의 교육 전망에 희망적인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375P

지리적으로 근접한다는 잇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성공한 비결은

조선의 모든 읍-면을 방문했던 노련한 중간 업자가 수집한 정보의 정확성과

조선 시장의 취향과 요구 사항들을 살펴본 제조업자의 사려 깊은에 그 원인이 있다.

...중략...

요컨데 조선은 일본이나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점차로 진보할 것이며

해외 무역은 구매력과 개선된 수송수단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후략

 

377P

토지세는 매우 가볍다. 실제로 거둔 조세의 약 1/3만이 국고로 드러가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그것을 다루는 관료의 부정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지방의 수입과 지출이 지역 관리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제까지 드러난 엄청난 관리의 부정과 1896년까지 탁지부에 만연했던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재정 전망은 희망적이다.

 

377P

조선 사람의 상상력과 재능은 공공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안된 책략과

계획을 짜내는데 탁월하다. 조선 관료의 부정행위는 마치 히드라의 머리와 같아서

아무리 잘라 내도 끝이 없다.

 

378P

조선의 재정은 점차 양호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중략...

1896년 한 해 동안에 사실상의 재정적 균형이 확립되고 유지되었다.

그것은 기대 이상의 소득이었다. 1897년 4월에 일본의 차관 300만 달러 중 100만 달러를 상환했으며

남은 미지불액은 1899년까지는 상환하리라는 전망이 섬으로써 조선은 부채가 없고 지출 전반에 걸쳐

수입이 초과하는 자랑스런 위치의 나라가 될 것이다.

 

378P

조선의 은화와 동전 그리고 백통전은 매우 편리하고 보기에도 잘 유통되고 있으며,

점차로 엽전을 밀어내고 있다. 새로운 통화 제도는 적어도 교역을 저해했던 조건들 제거함으로써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있다. 증가하고 있는 금융시설도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409P

그(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조언은 국왕으로 하여금 악명 높은 인물을 동요하지 못하게 했고,

아무나 체포하는 일이 없도록 했고, 열심히 일하는 관리를 이유 없이 파직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유럽의 왕실에 비용만 드는 사절을 파견하거나 어리석게 군대와 경찰을 증원함으로써 불필요한 낭비가 

없도록 했다.

 

411P

나는 왕(고종)의 이러한 약점을 쓰는 것이 유감스럽다. 개인적으로 나는 왕이

모든 외국인에 그렇듯이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상냥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어느 정도의 애국심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414P

보통의 조선 사람들은 보통 온순하고 악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유럽식 의복과 무기를 휴대한 군인들은 시민적인 동정과 애국심이

없으며 반항적이고, 불복종적이고, 흉폭하고, 권력과 이권에 욕심 많은 사람들로 바뀌었다.

 

419P

중국에서와 같이 조선에서도 약자가 강자에 대한 보호의 수단으로 만든

조합이란 조직이 유용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중략...

조선 사람의 상업(조합)은 우리보다도 더 완벽하게 조직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모든 상인들은 거의 조합에 가입되어 강력한 결속을 이루면서

어려울때면 서로 돕는 일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423P

우리는 조선 사람들의 느긋함, 게으름, 종속성, 빈곤등을 목격했으며,

그들(연해주 조선인들)은 러시아의 통치하에 절약하면서 번영하고 있다.

조선은 홀로 지탱할 수 없지만 현재 인구의 2배까지도 부양할 수 있는

자국에 대한 전망과 두 세력이 탐내고 있는 조선 영토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423P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아니다. 조선의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 상태이다.

성공적 경작을 위한 조선의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기후는 멋지고, 강수량은 풍부하고, 토양은 비옥하다.

언덕과 골짜기는 석탄, 철, 구리, 아연, 금등을 매장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근면하고 호의적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조선 사람들의 힘은 휴지 상태이다. 상위 계층은 사회적 의무의 부조리에

마비되어 있으며 아무런 일도 않으며 일생을 보낸다. 중간 계층에게는 출세의 길이 열려 있지 않다.

중간 계층의 에너지를 전환시킬 수 있는 전문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매우 충분한 이유들로 인해 '늑대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정도'

이상으로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424P

조선은 모든 면에서 미흡하고 열악하고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서울에서조차도 가장 큰 시장의 규모가 상점 정도이다.

계층적 특권, 국가와 양반의 수탈, 불의, 불안정한 수입, 개혁되지 않은 다른 동양 국가들이 기초하고

있는 최악의 전통을 수행해 온 정부, 책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식적 약탈자들,

대권과 대단찮은 후궁에 칩거하며 쇠약해진 군주, 국가 내의 가장 부패한 사람들간의 밀접한 연합

,이해 관계가 얽힌 외국의 상호 질서, 널리 만연되어 두려움을 주는 미신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 인상이었다.

 

424P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바다에, 토양에, 그리고 강건한 민족성 내에

온갖 자원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수천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자신들보다 나은 형편에 있는 친구나 친척에 의존해 살아가는 관습이다....중략...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지겹게 반복했다.

농사꾼들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토지의 생산성과 다소 원시적이지만

토양과 기후에 매우 잘 적응된 그들만의 기술들을 쉽게 배가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수확에 대한 소유권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하는데 만족하고,

더 좋은 집을 짓거나 훌륭한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 한다

 

425P.

여러 가지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는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망 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 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댓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어야 한다.

 

434P

이것이 대체로 1897년 말엽의 조선 정치의 상황이다.

조선과 중국과의 오래고도 폐쇄적인 연계는 단절되었다. 어떻게 쓸지 모르는 독립성이라는

선물을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받았다.

 

435P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조선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처음 조선에 대해 내가 느꼈던 혐오감은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보다도 친밀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중략...

그 다음날, 조그마한 증기선인 하이에닉크 호를 타고 강한 북풍을 가르며 상해를 향해 떠났다.

배가 증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나아갈 때 나부끼는 조선 깃발이 내게 기묘한 흥미와 의문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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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월세전세매매님의 댓글

  • 쓰레빠  월세전세매매
  • SNS 보내기
  • 격이나 외모같은경우엔 조선에 대해서 안좋게 쓴 책에서도 외모나 체격은 주변국가보다 낫다고 쓰여있는 경우가 있음
0

브루노맨님의 댓글

  • 쓰레빠  브루노맨
  • SNS 보내기
  • 국뽕에 취한다~
1

글모대님의 댓글

  • 쓰레빠  글모대
  • SNS 보내기
  • 기분은 좋지만 미화가 꽤???
0

핵주먹님의 댓글

  • 쓰레빠  핵주먹
  • SNS 보내기
  • 다 인정한다. 그런데 여행만 가면 왜 한국인이랑 중국인이랑 도진개진으로 챙피하지?
0

중도님의 댓글

  • 쓰레빠  중도
  • SNS 보내기
  • 과거보단 현재
0

sukyrdick님의 댓글

  • 쓰레빠  sukyrdick
  • SNS 보내기
  • 쓰잘데 업네
0

네가알고싶다님의 댓글

  • 쓰레빠  네가알고싶다
  • SNS 보내기
  • 그러나 하멜표류기에서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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