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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의 기업문화, 그리고 사회의식

  • 킷츤
  • 조회 5988
  • 사회빠
  • 2015.03.15 03:39
  • 문서주소 - https://threppa.com/bbs/board.php?bo_table=0101&wr_id=5419
LG 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분의 한국기업 폭로서(?)가 나왔다는 소식으로
쓰레빠닷컴에 처음 글을 올려 봤던 사람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직접경험 간접경험에 질릴대로 질려서 외국으로 눈을 돌렸던 1인이라, 꼬숩은 마음에라도 그 책의 한국어 번역판이 꼭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 비평하는 책은 많지만 저건 좀 적나라할거같아서 ㅋㅋㅋ)

저는 현재 일본에서 일하고 있고, 일본의 노동환경에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일본기업의 장단점 그대로 흡수했던 게 한국기업인데,
왜 일본이 한국보다 일하기 좋다고 느껴지는 것일까요?
(제가 일본에서도 깡촌에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한국기업의 일반적 노동환경이나, 일종의 룰(회식은 빠지면 안된다든가, 접대 가면
술 마시는게 절반이라거나(술 문화의 문제점 포함), 쉬는시간이 여유롭지 않다거나, 야근이 잦다거나 그러한 등등등)을 읊으면 모든 일본인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거 7-80년대 일본 기업이랑 똑같다구요.
지금의 정리된(?)일본 기업문화도 경제부흥기에 저러한 룰에 지배되다가
불황을 겪기 시작하면서 악습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들 얘기합니다.
(회식에서 폭탄주니, 신발주...니 대접주...니 그런거 일본이 먼저했음)
그리고 세대가 바뀌면서 노동환경에 대한 의식도 많이 변화했겠죠.
그러니 한국도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세대(3040) 이후의 세대가
한국 경제의 정점에 서는 그 때가 되면....그리고 그들이 지금을 답습하지 않는다면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소위 '시간 만병통치론' 을 말해주곤 합니다.

정말로, 두 나라에서 느끼는 게 다른 이유는 걸어온 시간의 차이 뿐일까요?
순전히 제 기억을 빌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말해볼까 합니다.

1. 사람의 거리를 재는 일본, 사람의 높이를 재는 한국
일본과 한국의 기업구조는 같습니다. 아니 사실 어느나라나 비슷할겁니다.
조직의 균형있는 운영은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 관계가 훨씬 용이하거든요.
특히 이윤이 모든 존재이유인 기업은 그 어느 조직보다 수직적입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특징인지, 일본도 한국도 군부사회였던 역사가 있어서인지
두 나라 모두 폐쇄적이고 수직적 기업문화로 전 지구에서 ㅋㅋ 악명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부제에 쓴 대로입니다.
일본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아래위가 없습니다. 계약이건 정직원이건.
업무적으로 가깝느냐, 머냐의 차이만이 있습니다.
물론 계장이니 과장이니 부장이니 관리직에 있는 사람은 조직내 높이가 있고
업무상 각자의 결정권이 정해져 있으니 기본적으로는 수직적이지만
같은 팀이나 같은 부서의 소속자들끼리는 그걸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논의를 할 땐,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사무 파트타이머나 인턴, 심지어 저같은 굴러들어온 외국인의 의견도 같이 앉은 자리에서 묻고 듣는 분위기입니다.
결재서류 받을때나 부쟝님~ 하면서 아양떠는 수준이죠 ㅋㅋㅋ
관리직 이하 평사원과 계약사원, 파트타이머 사이에도 절대 높이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같이 일하는 동료이며, 업무처리의 범위와 능숙도가 다를 뿐.
그리고 그 위치에 따른 업무의 한계도 분명히 하며, 그것을 인정합니다.
왜냐면 그만큼 급료와 복리후생이 다르니까요.
덜 받는 자 덜 일하고 많이 받는 자는 책임지는 게 일본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죠.
내 옆자리 사람까지도 선후배인지 일일이 높이를 따져야 합니다.
비정규직 인턴이나 협력사원도 정규직과 높이 따지고....
암만 거리 좁혀봤자 위는 위고 아래는 아래.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이 한정돼버리죠.
....우울해서 생략하겠습니다. 알바 삼개월만 해보신 분도 현실을 아실테니까요



2. '나도 그랬으니까' 마인드의 결과는 극과 극
한국기업 하면 무시무시한 노동환경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칼퇴의 기억이 흐릿한 연일야근에 법규따위 모르쇠의 휴일반납.
사실 일본도 이랬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기업의 경우는 승진을 위해 앞뒤안보고 달리는 친구들이 자진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회사제일주의로 악화된 노동환경으로 인하여
어마어마한 세대간의 전쟁으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부모세대와 정말 ㄱ부터 ㅎ까지 다른 자식, '신인류 세대'가 그거였죠.
가족과 보내는 시간 부족에 따른 소통단절로 인해
길가다 부딪치는 사람보다 어색한 관계가 된 부모세대,
그 세대가 바보같이 회사에 처박혀 일만 하는 걸 본 그들의 자식들이
'난 저 회사벌레들과는 다르다! 저렇게는 안 살란다!!'하고 분기탱천 일어난겁니다.
그들이 바꾼 일본의 모습은 바로 소비지향의 삶과, 목적있는 노동.
이제까지 '회사를 위해' 하던 노동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변한거죠.
그리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회사에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나의 노동을 도와 줄 법규들을 꼼꼼이 골라 잘 막아서기 시작합니다.
야근? 주말출근/접대골프? 일 넘치면 해야죠. 대신 돈은 챙겨주쇼.
법정휴가? 돈으로 땡치지 마세요. 그날은 '돈 받고 쉬어야 하는'날이니까.
최저임금? 안 주면 일 안해요. 나를 위해 하는 일인데 덜 받을 수 있나요.
지금 저 세대가, 현재 일본의 기성세대입니다. (액티브시니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구어 낸 노동환경에서 뒤따라온 지금의 세대는
저런 것들이 이젠 당연해지게 되었습니다.
아프면 어서 조퇴/결근하고 빨리 나으라고 합니다. 나도 아파 봤으니까.
유급휴가 소멸기간 가까워지면 좀 쉬다 오라고 합니다. 나도 쉬었으니까.
일이 많아 힘들어하면 걱정하고 도와줍니다. 나도 야근 싫었거든.

그런데 왜 한국은, 나 당한 만큼 너도 당해라일까요.
나도 아플 때 나왔는데 너는 왜 쉬어?
나는 최저임금 이하로도 일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나는 휴가 반납하고 나왔는데 너는 놀러가냐?
조금만 비틀면 함께 긍정적인 노동문화를 만들 수 있을텐데.
어쩌면 지금 2030세대가 혁신을 부를 새로운 사람들이 될 것 같습니다만,
취업난이 너무 발목을 잡고 있어서 시간을 더 복용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길었지만 2가지로 요약해 본 한국과 일본 기업의 차이였습니다.
사실 제가 책이라도 더 읽고 설명을 하는 게 맞는데,
부족하나마 살아가면서 듣고 느낀점을 있는 그대로 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쓸데없는 승진시험이나 보여주기식 프로젝트 실적만 보는 회의 인사관리 등등
사실 할말 많은데 이부분은 제가 일본에서 겪은게 별로 없어서 ㅎㅎ)
일본도 소위 블랙기업이나 청년실업자를 노리고 노동법을 위반하는 회사들에
최근에 몸살을 꽤 앓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좋은 일자리는 아니에요.
한국의 모든 일자리가 나쁘지만은 않은 것처럼.
아무튼, 진실은 하나, 억울하지만 한국이 일본을 많이 답습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최대한 그 상황을 이용해야죠.
우리보다 시간적으로 앞서있는 나라들의 선택지가 보여주는 답안을 눈치껏 보고, 되도록이면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환경도, 기업문화도, 모두요.

마지막으로.....일본의 직업의식에 대해서 조금만 써 보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알고 있는 일본 커피회사,
조지아 캔커피의 작년 연초 카피입니다.
[그 누군가의 직업이 세상을 만든다 世界は誰かの仕事で出来ている]
일본사람도 자신이 하기 싫은 일도 있고, 멋져보이는 일 물론 있습니다.
(이건 어느나라나 같을 겁니다. 직업의 귀천은 후천적 가치관으로 생김...)
하지만 절대 내가 기피하는 일을 누군가가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기피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도 세상의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니까요.
저는 우리회사 건물 청소 용역업체 분과 그 건물의 회사 직원이 엘리베이터에서 수다 떠는걸,
사내식당 아주머니와 회사직원이 서로 이름을 알고 부르는 걸,
경비직원이 회사 부장님이랑 서로 동갑이라고 평사원(나;;)앞에서 농담하며 낄낄대는 걸
정말 머리털 나고 처음 봤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그런 장면을 못 마주친 케이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갑질논란이나 사람위에 사람 있는 사건들로 골치 아픈 한국에겐
이런 사회의식의 성장도 무엇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로 보입니다.

우리부터 점차 깨닫고 바꾸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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