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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당할 각오하고 목숨 구합니다”… 자기 돈 쓰는 소방관들

  • 계란후라이
  • 조회 2084
  • 2017.05.04 11:30


      

실제로 소방관 중에는 영웅에서 피고소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조 현장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 탓에 피해자가 생기면 대부분 소방관 개인이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개인뿐 아니라 기관 평가 때 감점 사유가 되기 때문에 소방관들은 쉬쉬하며 자비를 들여 소송을 진행한다.

2015년 충남에서 소방차와 택시가 충돌하면서 택시 기사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운전자인 소방관 김모 씨(57)는 수년간 민사소송에 드는 돈을 전부 사비로 충당했다. 2014년 인천에서는 술에 취한 40대 여성을 구급차로 이송하던 중 술이 깬 여성이 구급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뒤에서 오는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 A 씨(37)는 최종 판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소송비용은 모두 자신 부담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구조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법적 다툼을 피하기 위해 합의금을 주고 끝내는 경우는 다반사다. 소방관 한모 씨(37)는 화재 출동에 나섰다가 애꿎은 10만 원만 썼다. 소방차가 통과하기 전에 출입구 차단봉이 자동으로 내려와 차체에 부딪쳐 파손됐기 때문이다. 운전자인 한 씨 잘못은 없지만 소방서 예산을 지원 받으려면 자체 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모은 식비로 변상했다. 한 씨는 “합의 못하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쉬지도 못한다”며 “내부에서 주의가 부족해 사고를 냈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면 구조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소방관 법률 지원 강화 절실

언제든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처지이지만 소방관을 위한 법률 지원은 여전히 부실하다. 소방 업무를 둘러싼 법률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조직은 현재 없다. 국민안전처 산하 중앙소방본부가 파악하고 있는 민사·행정소송은 최근 8년(2010년∼현재)간 34건. 이는 중앙소방본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만이다. 전국적인 상황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중앙소방본부에서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중앙에 채용된 변호사는 법률 업무보다 행정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각 시도 소방본부에서 법률문제가 발생해도 중앙에서는 신경을 쓸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시도에서는 정기평가 등을 의식해 소송 해결에 소극적이다. 일부 소방서는 출동 중 교통사고가 났을 때 동료들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개 발표를 요구받는 경우도 있었다. 교통법규를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아 예산담당부서에서 징계성 대기를 한 사례도 있다. 20년 차 소방관 김모 씨는 “지방에서는 소방관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지시가 은연중에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경기도가 지난해 10월 소방 공무원 60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소방조직에 필요한 법률적 지원을 묻는 질문에서 ‘악성 민원 전담 대응팀’(48%)과 ‘소송 전담 법무조직 시스템’(34.9%)이 1, 2위를 차지했다.

최인창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단장은 “평가기준 개선은 물론이고 업무 과다로 인한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소방관 수를 2만 명가량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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