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입장문 통해 원칙 제시 /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난 두려워.. 이번 기회 관행·위법 기준 정해야" / 文 '반개혁 세력의 저항' 인식 피력 / '金 사수' 무게.. 퇴로 수순 시각도 / 민주, 침묵 속 檢·선관위 판단 주시 / 金원장 공식 일정 소화..논란엔 ".."
문재인 대통령이 ‘외유성 출장’ 의혹 등을 받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정공법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13일 서면 입장문을 통해 김 원장의 ‘위법성’ 또는 ‘평균 이하의 도덕성’이 입증될 경우에만 사임하도록 하겠다는 ‘조건부 사임’ 원칙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전격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도 홍 대표가 김 원장 임명 철회를 요청했으나 그냥 듣기만 했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김 원장 사임의 기준을 제시한 것을 놓고서는 ‘김기식 사수’ 표명에 가깝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김 원장 논란이 확산하는 것을 두고 ‘반개혁 세력의 저항’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대목에서 그런 의지가 읽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기회에 인사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만 과감한 선택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는 것이다. ‘금융권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김 원장에 대한 보수 기득권 세력의 거부감 때문에 논란이 과도하게 커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전날 피감기관 16곳을 들여다보니 19·20대 국회의원 중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간 사례가 167건 있었다는 여당 조사결과를 인용하며 “김 원장이 평균적인 도덕 감각을 밑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원장을 둘러싼 정치권 반응과 언론 보도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서 “김 원장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경우 앞으로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상적인 의정활동의 틀 안에서 이뤄진 일이 낙마 사유가 된다면 앞으로 의원 출신들이 입각할 때마다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기준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서면 메시지를 통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며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트위터
청와대는 전날 김 원장의 후원금 사용 문제 등에 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구했는데, 이 같은 외부 기관의 객관적 판단을 통해 ‘관행’과 ‘위법’의 경계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미다. 검찰이 야당의 고발장을 접수한 지 사흘 만인 이날 김 원장의 해외 출장을 지원한 우리은행 등에 대해 신속하게 압수수색에 나선 것 역시 불법성에 관한 판단을 가능한 한 빨리 내놓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일각에서는 ‘출구전략’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원장 문제로 정국이 경색되면서 개헌, 국민투표법 개정, 추경예산 편성 등 주요 사안이 걸린 4월 임시국회가 공전을 거듭하자 ‘명분 있는 퇴진’의 길을 터놓은 것이라는 시각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비공개 면담을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문 대통령 입장과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수사하고 있고, 선관위도 보고 있으니 위법한 점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말씀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원장 거취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는데, 검찰과 선관위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입장을 유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 원장은 공식일정을 부지런히 소화하며 ‘마이 웨이’를 유지하고 있으나 표정과 목소리 톤에서는 사퇴 압력에 따른 부담감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