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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사회] 불쑥 다가오는 불편한 손길…“애(kids)티켓 지켜주세요” [기사]

  • 나도좀살자좀
  • 조회 1748
  • 2018.05.04 06:16


두 살, 네 살 두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면 기분 좋은 시선을 받습니다. 먼저 다가와 “애들이 참 귀엽네”하며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중년의 샐러리맨,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우리도 저런 아기 낳자”고 하는 커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불쑥 다가오는 손길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습니다. ‘늑대의 손’이 갑자기 아이의 볼살을 잡아채기라도 하면 “손은 씻었어요? 누가 당신 볼을 불쑥 만지면 좋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친정엄마에게 하소연하니 오히려 핀잔을 주더라고요. “예쁘다는데, 너도 참 별스럽다.”

하지만 엄마들의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혹여 감기라도 옮지 않을까, 표현은 못해도 불쾌해하지 않을까…. 세상이 험해진 탓인지 주변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부모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달라진 시대, 아이를 예뻐하는 ‘애( kids )티켓’도 바뀌어야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특이한 청원이 올라왔다. 길거리에서 남의 아이를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글쓴이는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였다. 화장실 옆 칸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손도 안 씻고 아이를 불쑥 만진 게 못마땅했다. 그는 “변기레버를 만진 손으로 아이 얼굴을 만지다니…”라며 분노했다.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비슷한 경험담을 토로한다. 주부 최모 씨(32)는 “파운데이션을 바른 아주머니가 갑자기 아이에게 얼굴을 부빌 때, 담배 피우던 행인이 애를 쓰다듬을 때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럴 때 단호하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선의를 알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정현(가명·33) 씨는 지난해 병원에서 난감한 경험을 했다. 친지의 병문안을 갔는데, 같은 병실에 입원한 할머니 네 분이 세 살배기 딸의 손과 얼굴을 연신 쓰다듬었다. 혹시 아이에게 병균이 옮을까 걱정됐지만 “아이가 예쁘다”는 노인들을 밀쳐낼 순 없었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의 아이를 만지는 건 아주 긴밀한 정서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며 “그렇더라도 맨살을 만지거나 강한 압력을 주거나 거칠게 만지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고, 피부가 민감하다. 두 아들을 키우는 김주현(가명·32) 씨는 “아이가 예쁘면 차라리 옷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동은 만 4세부터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자각하게 된다. 주부 박모 씨(34)는 “다른 사람이 예쁜 가방을 들었다고 ‘예쁘네요’라고 하면서 덥석 만지지 않는다. 아이는 말할 것도 없다”며 “어린 생명체라고 허락 없이 만져도 된다는 건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법원도 아동의 권리와 주체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2012년 한 리조트에서 어머니와 춤추던 10세 여아의 손을 잡아 끈 70대 노인은 폭행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아이의 의사에 반해 손을 잡아 끈 것은 타인의 신체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본 것이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어린시절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다고 여긴 아동들은 이후 자존감 형성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며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아동에게도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행위는 죄일까요?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Q1. 초등학교 남자교사(59)가 수업시간에 남자아이(9)의 성기를 바지 위로 잡았다.
A. 2006년, “어린이도 부적절한 성적 자극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미성년자 강제추행죄 인정

Q2. 50대 남자 A 씨가 찜질방에서 만난 3세 여자아이의 얼굴과 입에 뽀뽀했다.
A. 2011년, “성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에게 뽀뽀한 것은 추행에 해당”고 판결

Q3. 휴양지 리조트 공연장에서 어머니와 춤을 추던 10세 여자아이의 손을 70대 노인이 잡아끌었다.
A. 2012년, 아이의 의사에 반해 신체에 힘을 행사하는 폭행으로 인정

Q4.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손등과 뺨 등을 30대 남성이 만졌다.
A. 2015년, “어느 부위를 만졌느냐보다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느냐가 중요하다”며 미성년자 강제추행죄 인정

○ ‘애( kids )티켓’ 7계명

―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맨 살을 직접 만지지 않는다.

― 방금 전 손을 씻었는지 생각해본다. 손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수단이다.

― 영유아라면 부모(보호자)에게 안아 봐도 되는지 묻는다.

― 아기 입 주변에 뽀뽀하지 않는다.

― 만4세가 되면 스스로 신체결정권을 느끼는 나이다. 아이가 불편해하면 멈춰라.

― 간지럼을 태우거나 배를 세게 누르는 행동은 아이에게 고통이다.

― 음식을 먹이고 싶을 땐 부모(보호자)에게 허락을 받는다.

김수연 기자 sykim @ donga . com
노지현 기자 isityou @ donga .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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