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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약자 편에 섰던 당신…너무 무거운 짐 지게 했다” [기사]

  • 오피니언
  • 조회 1700
  • 2018.07.25 01:16
ㆍ장애인·여성·성소수자들이 기억하는 ‘진보 정치인’
ㆍ“표 걱정보다 소수자 인권 먼저 생각…차별 금지 앞장”
ㆍ‘호주제 폐지’ 당론으로 정하는 등 여성 인권에도 기여

시민 추모행렬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장례 이틀째인 24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시민들이 줄지어 조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치인은 표를 걱정하기 마련인데 노회찬 의원은 초선 때부터 소수자 인권을 지킨다는 원칙에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앞장서 성소수자 인권에 연대해주신 분이라 마음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성소수자 단체 모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심기용 집행위원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왜 우리가 연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목숨을 잃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노 의원이 ‘스타 정치인’으로서 너무 책임을 많이 느낀 게 아닐까요. 같이 들어줘야 했는데 한 사람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했습니다.”

지난 23일 투신 사망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생전에 ‘이반(성소수자)과 연대하는 비성소수자’라는 의미로 자신을 ‘삼반’이라고 했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호적상 법적으로 지정된 성별을 정정할 수 있도록 2006년 10월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2008년 1월에는 차별 사유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퍼레이드에도 참여했다. 그는 2007년 12월 성소수자 단체 ‘친구사이’로부터 무지개 인권상을 받았다.

장애인·성소수자·여성단체들은 노 원내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소수자 단체 사람들은 한국 사회 소수자와 늘 연대한 ‘진보 정치인’의 노력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오열하는 심상정 의원·조국 수석 정의당 심상정 의원(위 사진 오른쪽)이 24일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KTX 해고승무원과 부둥켜안고 슬퍼하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아래 사진 왼쪽)이 노 원내대표 부인 김지선씨의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120개 법안 중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장애인 차별금지법)은 그가 민주노동당 의원 시절인 2005년 9월 낸 것이다. 지난해 1월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등을 제공해 차별 없는 관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섰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2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만들면서 많이 힘들어할 때 흔쾌히 대표발의를 해 주시고 함께 싸워 주셨다. 자신이 맡은 상임위원회 일이 아닌데도 직접 나서서 발의를 위해 뛰어다니셨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이동권 시위를 하다 붙잡혀 구속됐을 때도 보좌진을 통해 고충을 들어주셨다. 따뜻했던 분이다. 그분의 죽음이 그냥 안타까움으로 끝나선 안된다. 그분의 희망을 이루는 세상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날 추모 논평을 내고 “고인은 사회적 약자들, 차별받는 사람들과 눈물 흘리고 고통을 함께 나누며 항상 그들의 편에 있었다. 그것이 정치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노 원내대표는 남성 의원으로서는 흔치 않게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3월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세계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싸우는 모든 운동에 연대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그는 2004년 9월 “호주에도 없는 호주제는 없애자”며 호주제 폐지를 민주노동당 당론으로 정한 뒤 바로 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듬해 3월 호주제가 폐지되자 여성단체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진보 정치인으로서 정말 훌륭한 분이고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셨던 분인데 참담함과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 너무 곧고 강직해서…”라며 한숨을 거듭 내쉬었다. 고 상임대표는 “노 의원은 한국여성의전화 후원회원이시기도 했다. 후원행사에 오셔서 ‘미투 운동’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운동이고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성운동에 큰 힘이 돼 주셨다”고 했다. 고 상임대표는 전날 오후 활동가 20여명과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허진무·이재덕 기자 imagine @ kyunghyang . 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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