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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잘 모르는 고층빌딩 '2평' 공간의 진실

  • 담배한보루
  • 조회 926
  • 2022.07.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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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잃은 여성들 ①] 진통제 먹으며 청소하는 엄마들, 여의도 고층빌딩 청소노동자

[오마이뉴스 강연주 기자]

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night shift)'을 납이나 자외선 같은 '2급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한국에는 2급 발암물질에 노출된 야간노동자들이 무척 많습니다. 야간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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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가 본 적 없는 공간

이 건물에서 오래 근무한 직장인도 가본 적 없는 방이 있다. 권씨는 그 방으로 매일 새벽 5시 전에 들어간다. 열댓 평 남짓의 공간에는 이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11명, 경비노동자 2명 등이 함께 있다. 이곳에 짐을 놓고, 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곤 한다.

새벽 4시 50분께. 이곳에 짐을 던져놓은 권씨는 곧장 일을 시작한다. 계약서에 명시된 출근시간은 오전 6시이지만 5시도 안 돼서 근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임금은 서류에 적힌 대로만 받는다. 한 시간은 무료봉사인 셈이다.

"감독이 5시까지 오라고 하니까... 계약서와 다른 건 알지만 절대 말할 수 없어요. 우리 중 누구도 말 못해요. 이런 말 하면 감독은 우리 대신 일하려는 아줌마들 많다고, 그냥 나가라고만 해요. 그 자리에서 잘리는 거예요. 이 건물만 그런 거 아니에요. 다 그래요, 다."

구로구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 첫차에서 만난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도 권씨와 다르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만난 황(63)씨는 "최저임금이 오른 후 계약서에 기재된 근로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서류상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로 기재돼 있지만, 여전히 그는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3시까지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변한 건 부당하게 줄어든 임금뿐이라고. 같은 버스를 타는 박(62)씨, 선정릉역에서 내리는 양(60)씨도 마찬가지다.

"항상 30분 일찍, 그러니까 5시 30분보다 먼저 도착해요. 그러다 한 번은 30분에 딱 맞춰 들어간 적이 있어요. 늦지도 않았는데 감독이 온갖 면박을 다 주더라고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구로 쪽에 사는 사람들 두 번 다시 안 뽑을 거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다시 권순애씨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권씨의 근무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다. 8시 30분과 12시에 1시간씩의 쉬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쉬는 시간 전까지는 휴게공간으로 내려갈 수 없다. CCTV로 감독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이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오후가 되면 꼬리뼈까지 타고 오르는 무릎 통증에 잠시 앉아 있고 싶지만, 권씨에게 허용된 공간은 없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있을 수 없다고 권씨는 토로한다. 감독이 복도 CCTV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권씨가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지 않으면, 바로 전화가 온다.

"지하 휴게공간 외에도 각자가 맡은 청소 층에 일 마치고 들어갈 수 있는 2평 남짓의 공간이 있어요. 사실 휴게공간이라도 하기도 그래요. 원래는 그냥 창고예요. 왼쪽에는 대걸레 빠는 곳이 있고, 발치에 화장실 비품들이 쌓여 있어요. 쉬는 시간에 지하 말고 그곳에 들어가 있기도 해요. 내려가기도 힘들어서. 거기서 밥도 먹고 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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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청소노동자
ⓒ 남소연


월급의 3분의 1이 병원비로

오후 3시 30분, 퇴근 후 그가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정형외과다. 진통제로도 감당할 수 없는 무릎 때문이다. 통증 탓에 쉬이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뒤를 돌아 한 계단씩 조심스레 내디뎌야 한다. 그냥 내려갈 경우, 앞무릎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온다. 매주 신림동 인근 병원에서 연골주사를 맞는 이유다.

"월급이 158만원이에요. 딱 최저임금 받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못해도 50만원이 병원비랑 약값으로 나가요. 평소에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아파서 제대로 일 할 수가 없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건물 청소아줌마 11명이 다 그래요."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는 허리 통증 탓에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대화를 나눈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그는 오른쪽 다리를 테이블 바깥으로 빼 수차례 무릎을 문질렀다. 그날도 그는 인근 정형외과에서 연골주사를 맞고 왔다고 했다.

"몸도 불편하신데 청소까지, 힘들지 않으세요?"

"매번 생각해요. 올해까지만 하자, 올해까지만 하자... 관두고 허리 고치고, 다리 고치고, 그렇게 살자.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년 다가오는 게 무서워요. 우리들 정년이 70세거든요. 이 일을 그만두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앞으로 먹고 살 돈은 또 어떻게 구하고. 그래도 아픈 거, 더러운 거, 무시 받는 거 꾹 참고 할 일만 해내면 생활에 필요한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으니까. 근데 또..."

권씨가 옆에 놓인 휴지를 눈에 가져다댔다.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는 "근데 또 사람대접 못 받는 일만 하다가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라고 덧붙였다. 그는 "슬슬 가족들 밥 하러 가야 한다"며 의자에서 무겁게 일어났다. 옆에 놓인 보라색 가방을 집었다. 축 늘어진 보랏빛 가방. 어깨끈 주변은 끝이 해져 있었다.

http://naver.me/G9RHYY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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