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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36년이 되는 날입니다.

  • 고발
  • 조회 37830
  • 2016.05.18 08:02

 

광주민주화운동의 간단한 개요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군사독재를 연장하려하자, 학생을 중심으로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해산하게 된다. 
이에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하고 학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휴교령 등의 민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5월 18일 전남대생 200여명은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과 투석전을 벌였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보고 합세한 시민들과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5월 19일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5월 20일 20만명의 시민이 군경 저지선을 뚫고 시청건물을 장악하였으며, 계엄군에 의해 모든 시외 전화가 두절되어 광주는 고립되었고, 밤 11시경 계엄군은 시민에게 발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명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을 시작하였다. 

5월 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고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렸다.  

2.계엄군의 만행

 

"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공수대원을 설득하려 하자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어 대검으로 배를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출처: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박남선 氏의 증언

 

"공수부대워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대 할머니 한 분이 만류하자 "이 ㅅㅂ년은 뭐냐?너도 죽고 싶어?"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짓밟았다."


 

  

일요신문 1995년 10월 1일자 발췌

계엄군의 시민들 고문

 

1.군홧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

 

2.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짐

 

3.발가락을 대검날로 찍음

 

4.사람이 가득 찬 트럭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

 

5.며칠째 물을 못 먹어 탈진한 삶에게 자기 오줌 먹이기

 

6.두 사람을 마주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게 하기

 

7.화장실까지 포복해가서 혀끝에 똥묻혀오게 하기

 

8.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

 

9.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

 

10.손톱 및으로 송곳 밀어넣기

 

 

 

 피해자 규모(계엄사령부 발표)

 

민간인 144명 사망 127명 부상

군인 22명 사망 109명 부상

경찰 4명 사망 144명 부상

 

하지만 외신은 최소 800명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남도청에서 고립된 시민군들은 투항아면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항복할 마음을 먹었다. 8명의 시민군이 무장해제 한 뒤 도청 앞 뜰로 걸어나왔으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원 사살하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올해로 벌써 36주년이라고 합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신군부 정권에 맞서서 광주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사건인데요. 민주주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항쟁은 '광주의거' '광주시민항쟁'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명명합니다. 하지만 과거 신군부에서는 '광주사태' '광주폭동'등으로 매도하여 부르기도 했지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참혹한 현대사인 1980년 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12.12 사태를 통해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요구를 불응하면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구축하게 되었죠. 

 

이에 반발하는 전국적인 학생운동, 시위가 점차 확산되고 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1980.5.13~14일에 걸쳐 전국 대학가에서 벌어졌습니다. 신군부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던 이 시위는 5.15 일에는 야간까지 지속되는 열정적인 시위였고 이후 5.17에는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정치가들, 시위 관련자들을 체포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었죠.

 

 

광주민주화운동은 학생운동이자 민중봉기 그리고 무력항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계엄군이 진압 저지했던 전남대학교 앞부터 광주역까지 이동하면서 시위대가 점차 많아짐에 따라 진압 강도도 더욱 거칠어졌다고 합니다. 시위대에 의해서 MBC, 노동청, 세무서 등 공정보도하지 못한 곳이 불타오르자 결국 계엄군은 해서는 안될 집단 발포까지도 감해하게 됩니다. 군용차량과 무기까지 동원되어 무력항쟁으로 발전하여 진행된 이 시위는 27일 새벽 외곽 도로 봉쇄 및 전차 등으로 완전히 무장한 25,000여 명의 계엄군의 대대적인 무력진압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 중 큰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민주운동으로서의 큰 변화를 가져온 항쟁으로서 의미가 있기도 하고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은 항쟁이었기에 무고하게 희생되신 분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이분들의 희생과 열정이 없었다면 민주화가 빨리 앞당겨지는 결과가 아닌 군부의 독재 집권이 더욱 장기화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군부 독재의 칼날에 그 정신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목숨 걸고 싸워주었던 그 당당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아요. 

 

 

 

이 값진 투쟁을 소재로 해서 생생하게 현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영화로는 강풀 웹툰 원작의 영화 '26년' 이 있답니다. 제작과 촬영이 이상하리만큼 미뤄지는 일이 있었지만 2012년 개봉하게 된 영화로, 잔인한 장면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를 했기에 아이들과 함께 당시의 5.18 민주화 항쟁 사건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볼 수 있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5.18광주항쟁을 기념하는 시간으로 영화 한 편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힘없고 약한 민중의 설움이 분출되었던 슬프고도 빛나는 역사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는 것! 그날의 응어리진 절규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그 정신을 기리는 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북한 특수부대 광주 침투설’의 진실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과 관련된 이슈 중 개인적으로 믿지 않는 설 두 개를 든다면 하나는 땅굴이고 하나는 광주 북한 특수부대 침투설이다. 

 

  작년엔 이 블로그에서 땅굴 관련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앞으로 이 블로그엔 땅굴 관련 글을 올리면 삭제하겠다고까지 했던 것 같다.

 

  이 블로그가 음모론을 퍼뜨리는 온상이 되기 싫어서다. 

 

  북한이 평택이나 천안까지 땅굴을 팠다는 이야기, 세계 최고 수준의 채굴 기계를 300대나 보유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조금의 과학적 상식이 있으면 누구나 가려볼 수 있을 것이다.

 

  관리를 어떻게 하며, 물은 어떻게 뽑으며, 환기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 무수한 질문이 뒤따라 나오는데, 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있다 이것이 끝이다.

 

  지난 기간 북한이 땅굴을 팠던 것도 사실이니 한국 사회에 만연한 땅굴 공포감에 대해 모를 바는 아니다.

 

  하지만 땅굴로 서울 지하철까지 연결시켰다는 이야기를 교수라는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다. 

 

  정말로 그런 굴이 있으면 북한이 수고스럽게 잠수함으로 간첩을 싣고 나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많은 간첩들이 땅굴을 통해 서울에 출장을 다니듯이 필요할 때마다 와서 할 일을 하고 돌아가면 끝이다. 실제로 땅굴이 있으면 그래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물론 북한이 전방 수 km 정도 땅굴을 파서 한국 전방 사단 뒤편까지 굴을 팠다고 하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이라도 하겠지만, 서울까지, 심지어 부산까지 팠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긴다.

 

   차라리 북한이 스텔스 헬기를 개발해 침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그럴 듯 해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는 민주주의 사회니 개인의 신념에 따른 행동에 대해 말릴 수도 없다. 그러니 땅굴을 찾는 사람들은 열심히 찾는다고 해서 내가 어쩔 수는 없다…

 

  광주 특수부대 파견설에 대해서도 나는 믿지 않는다. 모두 알다시피 얼마 전 채널A에서 이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언젠가 (아마 작년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분이 자유게시판에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은 적 있다.

 

  그때 했던 답변이 “나는 그런 것을 안 믿는다. 간첩 몇 명이 동태 살피려 왔을 순 있겠지만 특수부대가 남파해 활약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북한군 특수부대 500명이 광주에서 활약했다고 주장하다 못해 자기가 직접 그때 남파돼 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진짜 남파돼 왔다면 한번 내게 와서 납득할 수 있게 증명해줬음 좋겠다. 내가 납득이 되고 맞다고 인정되면 정말 신문 몇 개 면을 펼쳐서 써줄 수 있다. 그런데 그 주장 국정원 조사원 앞에서도 할 수 있을까.

 

  광주가 한국 사회에 얼마나 이념의 논쟁에서 민감한 이슈인데, 그런 주장에 뛰어들어 근거 없이 부채질하는 것은 탈북자 사회 전체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다. 가뜩이나 이미지가 안 좋은데 말이다. 한국에서 좀 더 살다보면 내가 이러는 것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마 입국해서 조사 받을 때 진술서를 보면 그가 무엇을 하다 왔는지 뻔히 다 적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해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국정원은 뻔히 보고만 있는데 나는 이런 것이 참 나쁜 일이라고 본다. 제재를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북한에선 광주에 관련한 각종 소문이 다 떠도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수없이 들었다. 사진 속에서 탱크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북한 특수부대원들이라느니, 머리띠를 멘 사람들은 특수부대가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였다느니 하는 식의 소문 말이다.

 

  심지어 딸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사진 속 광주의 어머니가 남조선 여자 특수군단 군단장이란 소문까지 퍼졌다. 남조선에 여자들만 구성된 비밀 특수군단이 있는데, 광주에 가서 시위대로 위장하고 암암리에 공작했다는 등의 소문이다.

 

  아마 그러루한 이런 소문들은 듣고 온 북한 사람들이 여기 와서 그럴 듯하게 전달했을 것이다.

 

  소문의 특징은 공신력을 안받침하기 위해 소스에 대해 과장한다. “내 친구가 말인데…” 또는 “우리 이모부의 형이 말이지…”하는 식이다. 사실은 전해들은 소리가 친구의 이야기가 되고 친척의 이야기로 둔갑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럴 듯 하니까.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엄친아’ 득 ‘엄마 친구의 아들’과 똑같은 식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광주의 실상은 김일성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해보라고 대남부서에 지시했고, 그걸 파악하는 도중에 시위가 끝났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물론 이는 개인적 생각이다.

 

  얼마 전엔 청진에 있는 인민군 열사묘가 광주에 남파된 특수부대원들을 매장한 묘라는 설까지 퍼졌다. 사진까지 뒷받침해서 말이다.

 

  나는 그 사진을 언론에 나기 전에, 북한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돼 북한에서 찍어 온 바로 그 사진기로 보았다. 아마 이 사진을 본 최초의 사람 중 한명이 아닌가 싶다. 그 사진기를 혹시나 해서 스마트폰으로 찍어두었는데, 아래 사진이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대체 이걸 왜 찍어왔나요?”

 

  물론 찍어온 사람은 돈 주니까 찍어온 것이다..

 

  그런데 몇 달 뒤 이 사진은 북한군이 광주에 남파돼 온 증거라고 인터넷에 퍼졌다. 하도 그럴 듯하게 퍼져서 국정원까지 나서서 아니라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그때 그걸 보면서 참 집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돼서 청진의 북한군 열사묘가 광주 남파 특수부대묘로 둔갑한 것일까. 이것도 어느 탈북자가 그렇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하면 돈이나 받는지 모르겠다.

 

  그게 정말 공신력이 있으면 기자인 내가 제일 먼저 기사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도 가치가 없는 일이라 그냥 넘어갔다.

 

  다음엔 어디서 들었다가 아니라 직접 광주로 특수부대와 함께 온 사람이 있으면, 정말 당당하게 증명할 수 있을 때 TV에 나섰으면 한다.

 

  북한이 탈북자들을 협박하면서 늘 하는 소리가 ‘인간쓰레기’이다. 북한에서 살인, 절도, 패륜 등 온갖 쓰레기짓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쓰레기와 진짜 거리가 멀게, 모범생으로 살았던 나는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열 받는다. 물론 열 받으라고 했겠지만…하지만 북한이 탈북자에 대해 고운 말을 할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북한이 저렇게 맹비난할 때 여기 사람들까지 “맞아, 탈북자들 쓰레기 맞아” 이렇게 공감한다면 그거야 말로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북자 사회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5.18 발언으로 탈북자들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 아마 이런 일이 몇 번만 더 계속된다면 정말 한국 사회가 탈북자들을 “거짓말쟁이에 쓰레기”라고 낙인찍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탈북자 사회 스스로가 자정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 개개인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나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례를 자주 보고 있어 슬프다. 모르고 한 말은 용서라도 할 수 있겠지만 자기 스스로도 거짓말임을 너무나 잘 알면서 하는 거짓말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자기 하나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북한이 탈북자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해 오는 지금, 탈북자들이 북한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분노도 조심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자신들의 활동에 정정당당함을 부여해 남한 국민들의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성하 기자)

 

 


 

 

 

 

 

 

다시한번 적어봅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했던 민주화 운동입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 세력의 집권에 따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파괴,

민주화 역행에 항거하고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됐습니다.

 

발생배경은 박정희대통령의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고 민주적인 헌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움직임 속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했습니다.

이에 민주운동을 일으킨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해 공수부대원들을 투입시켜 시민들을 대상으로 폭력적이고 가혹한 진압을 하게 된것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처음에는 대학생 중심이었던 시위가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광주 일반 시민들과 

고등학생들까지 거리고 뛰쳐나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이때 참가한 시민은 최소 3천여명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5월20일에는 시위대의 규모가 무려 20만명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5월21일 계엄군은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 및 조준사격을 시행했다고 합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는 무려 200여명이나 되고 부상자 등 피해자는 약 4,300여명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민주화가 되어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년 중 하루 5월18일은, 민주화운동을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을 위해 애도해주세요.

 

 

 


 

 

<이 칼럼 및 기사는 커뮤니티 쓰레빠닷컴에서 선정된 회원들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퍼가실 경우에는 동의없는 수정은 삼가시고, 출처 URL (threppa.com/~)을 포함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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