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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로 더 커지는 박근혜 대통령 5촌 살인사건에 대한 의혹

  •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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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18 15:43

 

박근혜 5촌 박용철·박용수 피살사건 정리(주진우 시사IN 기획취재팀장)

 

 

1. 배경

 

① 육영재단 소유권 관련 박근혜와 박지만·박근령 사이에 갈등이 일어남(1990년에 박지만·박근령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냈던 사실을 동아일보가 보도)

② 2007년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폭력배와 불법용역요원들까지 동원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갈등양상이 변화해 박지만이 박근혜 편에 서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령을 쫓아내는 형국으로 발전됨

 

2. 전개

 

① 당시 박지만의 최측근으로 폭력 사태를 주도한 사람이 박용철로서 그는 박정희 총통의 둘째 형 박무희의 손자이며 국제전기기업 대표인 박재석의 아들임

② 2007년 당시 박용철은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대학교 교수와 함께 중국 칭다오에 갔던 일이 있었음. 그런데 첫날 밤에 신동욱은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건물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중국 공안에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 신동욱은 귀국해서 “박지만이 박용철을 시켜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은 박지만이 허수아비 역할이고 배후는 박근혜의 주변 사람들이다”라고 주장, 박근혜·박지만 양자로부터 명예훼손·허위사실유포로 고소당함.

③ 재판과정에서 신동욱이 주장한 청부살인시도에 대한 건은 인정되지만 박지만과의 연관성은 부정됨. 박용철은 박지만이 이 사건과 무관하고 박지만의 측근인 정 씨가 사주했다는 주장을 펼침.

④ 결국 신동욱은 법정구속을 받게 되지만, 이후 재판과정에서 박용철이 자신의 증언을 뒤집는 일이 발생함. 2010년 9월 1일에 육영재단 전 법무실 부장 이 씨가 “박지만이 박용철에게 신동욱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린 육성녹음이 있고 통장으로 돈을 부쳐준 증빙이 있다”는 얘기를 박용철에게 들었다고 증언. 박용철도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비서인 정용희 실장이 나에게 박지만 회장의 뜻이라고 말한 육성을 핸드폰에 녹음해놨다”고 증언.

⑤ 2010년 9월 27일 이후 신동욱 측 변호인이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

⑥ 박용철은 2011년 9월 1일에 재판에 한 번 출석하고 그로부터 5일이 지난 9월 6일에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수유분소 앞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3. 수사결과

 

① 박용철의 시체는 얼굴과 배가 칼날에 수십차례 난자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음. 칼날에 찔리고 복부를 후벼 판 흔적이 전문적인 살인기술에 의해 당한 것으로 추정됨.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뒤에도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장도리에 머리를 세 차례 가격된 상황.

② 박용철 피살현장으로부터 3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에서 박용수가 목을 매달린 채 죽어 있었음. 박용수도 박무희의 손자로서 박재호 동양육운회장의 아들임.

③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후 죄책감에 자살했다고 수사를 결론지음.

 

4. 의혹

 

① 유가족에 의하면 박용철과 박용수는 사이가 좋았고 원한관계도 없었을뿐더러, 박용철이 찜질방을 운영할 때에 박용수가 사업자금도 대준 적이 있었음. 사건 전날 박용철·박용수와 함께 술을 마셨던 황 씨의 증언으로는 당시 분위기도 좋았다고 함.

②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 박용철은 105킬로그램의 거구에 폭력전과 6개가 있었고, 박용수는 167센티미터의 키에 7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체형에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고 함. 폭력경험도 없는 사람이 사촌 형을 칼로 난자해서 살해했다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박용철의 시체에 난 ㄱ자와 V자로 꺾여 있는 상해흔적은 평범한 사람이 하기 어려운 살해수법.

③ 박용수가 노트 한 장을 찢어 간단하게 글귀를 남긴 유서가 매우 이상함. 자신의 시체를 절대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게 유서 내용. 경찰에서는 박용수의 필적을 대조해봤는데 확인이 어렵다고 결론내림. 그런데 주진우 기자가 사설검증원에 의뢰해본 결과 확증할 수 없지만 서로 같은 필체는 아니라고 본다는 대답을 들음. 갑자기 자살하는 사람이 남긴 유서라고 보기에는 모든 걸 묻어버리려는 느낌이 짙음.

④ 박용수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설사약이 나왔음. 몸에 알약이 들어가면 30분이면 녹는데 알약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은 자살하기 20분 전에 먹었다는 의미. 사촌 형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살을 결심했는데, 목을 매달기 20분 전에 설사약을 먹는다?

⑤ 박용철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수면제 성분이 검출. 즉 박용철은 항거불능인 상태에서 칼과 장도리 등으로 가격당해 죽었다는 뜻임. 박용수의 시체에는 목과 팔 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있는데 목을 매달기 전에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였다는 증거임.

⑥ 목을 매달고 숨진 박용수의 시체에는 큰 타월이 덮여 있었음.

⑦ 박용수의 가방에서 발견된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나 박용수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음. 피살사건현장에서 60미터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된 다른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박용수의 지문은 없었음.

⑧ 피살사건현장에서 박용철의 핸드폰이 사라졌음. 살인교사가 녹음됐다는 핸드폰이 없어짐. 그냥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처참하게 살해된 사람의 시체에서 핸드폰만 빼갔을 것이다?

 

이 사건을 기사화한 주진우 기자에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핸드폰 메세지로 추가적인 정황을 알려줌

 

① 피살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청소를 해서 너무 깨끗했다.

② 피살현장이 아니었는데도 경찰은 박용수가 머물던 여관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③ 박용수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왜 대리운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④ 박용철과 박용수는 어느 친척보다도 사이가 좋았다. 박용수가 박용철의 사업자금도 대주었다.

⑤ 박용수가 박용철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경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 

 

 

 

 

박근혜 5 촌 박용철씨 사망

망자 박용철씨의 4 촌 박용수씨가 살해 후 자살 (로 발표)

상기 살인 사망사건 당시 술자리 합석 황모씨 사망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 심리로 열린 17일 공판에서 피고인측 변호인단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사망자 박용철의 측근이자 박용철 사망 당일 박씨와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황 아무개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황씨가 2012년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결국 변호인단은 증인신청이 불가능해 증인 신청을 철회했다.

피고인측 김용민 변호사는 이날 법정에서 “황씨의 경우 육영재단 폭력사건에 개입한 폭력배로 박용철씨가 사망하고 얼마 뒤 사망했다”고 밝힌 뒤 “황씨가 갑자기 사망해서 변호인도 놀랐다. 당시 (술자리에) 있었던 유일한 사람(생존자)이 사망했다. 변호인도 변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2011년 9월 6일 발생한 박용철‧박용수 사망사건 당시 1차 술자리에서 두 사람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인물로 알려졌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065

 

한편 주진우 기자는 이날 최후진술에서 “이번 취재는 정말 무서웠다. 제가 취재할 때 육영재단 사람이 와서 죽는다고 말렸다. 수사기관에서 유력후보의 주변일이라고 해서 아무도 수사하지 않고 외면했다. 증거들이 사라졌다. 제가 그 증거를 확보했다. 그것을 무섭다고 눈감아야 하나. 다른 뜻 없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었다면 보도했을 것이다. 취재현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말했다. 

김어준 총수는 최후진술에서 “저희도 솔직히 이 사건을 다루고 싶지 않았다. 주진우는 이 사건을 취재하며 처음으로 생명보험에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상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말해야 했다. 기자의 존재 이유다.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권리는 보호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재판부는 “재판 부담이 있다”며 선고기일을 2015년 1월 16일로 정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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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건이 직접 관련자는 죄다 죽어감.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 'VIP 5촌간 살인사건'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노컷뉴스)

 

"박근혜 대통령 5촌간 살인 사건에는 배후가, 기획자가 있다"

 

 

◇ 이상한 살인사건, 그들은 억울하다 

 

지난 2011년 9월 6일 새벽 북한산국립공원 주차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5촌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의 5촌 조카인 사망자 고 박용철 씨는 칼에 찔리고 망치에 가격당한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전날 고 박용철 씨와 술자리를 가졌던 사촌 형 박용수 씨를 용의자로 보고 추적했다. 

 

그런데 박용수 씨는 4시간 후 사건 현장으로부터 약 3km 떨어져 있는 북한산 중턱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뒷주머니에 있던 한 장짜리에 유서에는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 달라"는 내용뿐이었다.

 

경찰은 돈 문제로 불만을 품은 용수 씨가 용철 씨를 죽이고 자책감에 빠져 스스로 목을 맸다고 결론을 내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결론을 내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경찰은 둘 사이의 관계가 최근들어 나빠졌다고 했지만, 두 사람을 아는 육영재단 관계자 및 가족들은 "사이가 좋았다"고 반박했다.  

 

또 유도선수 출신으로 100kg가 넘는 거구의 박용철 씨를 70여kg의 박용수 씨가 제압한다는 것도 의심할 만한 점이다.  

 

용철 씨에게는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의 몸에서는 상당한 양의 수면 유도제인 졸피뎀이 검출됐다. 

 

문제는 이 졸피뎀이 살인범으로 지목된 용수 씨의 몸에서도 검출됐다. 용수 씨의 위에서는 설사약도 발견됐는데, 범죄 분석 전문가들은 범행 전에 수면유도제나 약을 먹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두 사람이 술을 먹었다고 알려진 스텝바라는 곳도 강남구청에 문의 결과 존재하지 않는 상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은 용수 씨를 범인으로 가정한다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살을 앞둔 사람이 조금이라도 싼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 알아봤다는 점, 살인 후 자살을 생각한 사람이 근처도 아닌 2시간 이상을 걸어 깊은 산 속에서 자살을 했다는 점, 죽기 직전 설사약을 먹은 점, 자살한 그의 어깨 위에 덮어진 수건 등은 누가 봐도 비전문가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지난 5년간 언론을 피해왔던 고 박용철 씨의 가족은 제작진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그동안 침묵해온 이유를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게 걱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묻어놓은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진실은 밝혀야 한다. 이건 틀림없이 억울한 죽음이다"며 밝혀주기를 당부했다. 

 

◇ 그들의 죽음은 누구에게 이득이 됐을까?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고 육영수 여사가 세운 공익법인 육영재단이다. 

 

가족들과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2006년 홀로 귀국한 용철 씨는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경호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무렵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신동욱 공화당 총재와 약혼을 한다. 

 

이때부터 3남매간의 갈등이 심해진다. 육영재단의 운영권 및 재산 등이 신 총재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육영재단은 표면상 적자이지만, 임대료 수입만 해도 매년 20억이 넘고, 부지만 해도 2조에 가깝다.  

 

제작진이 육영재단 장부를 살폈더니, 재단의 수익금이 어디론가 새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재단을 관리감독하는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옛날에 그랬지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박근령 이사장과 약혼을 한 신 총재가 육영재단 내에 육영수 여사가 심은 나무를 베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빌미로 2007년 11월 28일 한센인들과 폭력배들이 들이닥쳐, 박근령 이사장 등을 몰아낸다.  

 

이때 박용철 씨가 폭력 사태 중심에 있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씨가 육영재단 임시이사장이 됐고, 잠시 감옥에 갔다온 용철 씨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이 됐다.

 

그러던 중 박근혜 대통령의 미니홈피에 박근혜 대통령 묵인 하에 박지만 회장이 육영재단을 강탈했고, 박지만 회장의 측근이 신동욱 총재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글이 올라온다.

 

이 글 때문에 신 총재는 박지만 회장 측에게 고소를 당해 재판을 받게 됐다. 이 재판의 2심 공판에 박지만 회장에게 토사구팽 당한 박용철 씨가 증인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신동욱 총재는 중국 청도에서 살해를 당할 뻔한 일을 겪었는데, 이때 용철 씨가 신 총재를 데리고 중국에 갔었다. 

 

용철 씨는 신동욱 총재를 중국에서 함정에 빠뜨리라는 지시가 담긴 누군가와의 통화를 녹음 파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용철 씨는 이 녹음 파일로 자신에게 지시를 한 누군가와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그가 돈을 주면 신동욱 총재 공판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 협상이 잘 안 됐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에 따르면, 협상을 하러 간다고 한날, "(그날) 통화 음성에서 기분이 안 좋았다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용철 씨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용철 씨가 사망했을 당시 검찰이 핸드폰과 태블릿PC를 가져갔는데, 유족들은 태블릿PC만 돌려받았다.  

 

경찰은 전화는 당시 발견하지 못했다고, 유족에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검찰은 자신들이 조사한 통화 목록에 대해서는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휴대전화에 공개되면 안 될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공개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범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가운데 자신이 고 박용철의 최측근이라고 밝힌 두바이에 머무르고 있는 한 남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그는 2014년 9월 처음 연락을 취했고, '그것이 알고 싶다' PD를 포함해 주진우 기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이 두바이로 향했다.  

 

제보자는 고 박용철이 박근혜 대통령 지인이었던 정윤회로부터 증언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천만 달러를 받는 협상 조건을 제시받았다고 주장했다. 

 

진행자 김상중은 "이제부터 수사기관이 밝혀야한다. 제3자가 개입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영화 같았던 이야기들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반드시 확인할 거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사건의 결말을 말이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고 강조했다.


 

 

 

[충격제보] 박근혜 5촌 간 살인사건 배후에 최순실 사주 의혹

(선데이저널: 전문은 출처)

 

한국시간으로 지난 11월 29일 새벽. 본지 기자에게는 충격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본지가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최순실이 강남의 조폭들이 배후에 있다는 특종보도를 했고, 과거에서부터 꾸준하게 박근혜 대통령 주변을 취재한 사실을 알았던 제보자는 지난 2011년 발생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오촌형제들 간 살인사건과 관련한 전화였다. 제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제보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 박근혜 오촌 살인 사건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다.
▶ 범인은 한국 유명 조폭 두목인 H씨의 부하들이다.
▶ 범인은 필리핀으로 도주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 박지만이 배후가 아니라 청부살인은 최순실 이다.
▶ 범인은 도피자금이 떨어져 폭로회견 준비 중이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제보자의 주장을 당시 상황에 대입해보면 미스터리들이 대부분 풀린다.

의문의 자살사건은 타살사건

이 사건은 201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9월 6일 오전 5시30분쯤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 옆에서 한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얼굴과 배에서 피가 흘렀고, 창자가 도로에 쏟아져 있었다. 후에 밝혀진 이 남성의 정체는 박용철씨라는 이름의 49세 남성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3㎞ 정도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옆. 나뭇가지에 또 다른 사내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사내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숨진 박용철씨의 차 열쇠와 유서 등이 나왔다. 바지와 끼고 있던 장갑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박용철씨의 혈흔이었다. 시체 옆에 놓인 가방에는 약병, 회칼, 손전등, 우편물 등이 담겨 있었다.

▲ 억울함을 호소한 박지만씨

▲ 억울함을 호소한 박지만씨

이 사내의 이름은 박용수(당시 51세). 경찰은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죽인 후 자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수사에 들어갔다. 박용철 씨와 박용수씨는 사촌지간이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 박무희 씨의 손자 즉, 당시 여당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는 오촌 관계였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해 10월 ‘박용수씨의 원한에 의한 계획된 범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박용수씨가 △범행 도구를 사건 한 달 전에 사두고 미리 테이프를 감아놓는 등 범행을 준비한 점 △유서를 미리 작성해둔 점 △범행 당일 자신보다 덩치가 큰 박용철씨를 만취시키고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점(부검 결과 박용철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9%, 박용수씨는 0.05%였다) △평상시 주변 사람들에게 박용철씨를 술 먹고 혼내주겠다는 말을 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사건 당사자가 모두 숨져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박용수씨가 10년 전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아파트를 팔고, 원룸에서 살았다. 죽기 전에는 여관에서 생활했는데, 그 원인이 박용철씨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돈을 빌려가 놓고 안 돌려주고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했다는 주변 사람 증언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근령 남편 신동욱, 박지만 지목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의문을 표시했던 인물이 있었는데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남편인 신동욱 씨였다. 당시 신 씨는 박용철 씨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 남매 간 송사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하며 단순 자살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박용철 씨는 2007년 벌어진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으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신 씨가 주장하는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신 씨에 따르면 박용철 씨는 2010년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했고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박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박지만 회장을 고소했던 신씨는,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신동욱신 씨는 2011년 9월26일 재판에서 자기 쪽 증인으로 박용철씨를 신청해놓았던 터라 그의 사망 시점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한다. 신 씨는 이와 관련 “나에게 증언하기로 하고 바로 죽었다. 용철씨의 죽음은 용철씨나 나 두 사람 모두 걱정하던 바였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신씨측 변호인이었던 법무법인 동래의 조성래 변호사는 “신씨에게 용철씨는 살인 교사 건과 관련해 무고 혐의를 벗겨줄 유일한 증인이었다. 지난 9월 말 열린 재판에서 신씨와 용철씨가 주고받은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녹취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서 용철씨를 증인으로 요청해 증인 신문을 준비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용철씨가 살해된 이번 사건에 대해 신씨측은 계속 강한 의혹을 제기했었다. 용수씨가 용철씨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신씨측의 주장이었다. 오히려 이런 의혹에 대해 강북경찰서 측은 “(그쪽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했을 텐데 그런 적이 없다. 박용수씨는 육영재단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서 사주를 받아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경찰이 나서서 사건을 변호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 씨 피살 사건 이후, 조성래 변호사는 신 교수의 재판 내용에 살인 사건도 포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본 재판과 관련성이 없다”라며 거절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몰라도 박 씨는 공판출석을 앞두고 살해됐고, 결국 신 씨의 주장을 입증해줄만한 인물은 사라졌다. 신 씨는 명예훼손으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았고, 오는 대선 전까지는 출소가 불가능해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타살 흔적 발견됐으나 자살로 결론

경찰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한 둘이 아니었다. 국과수 조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 수거된 한 담배꽁초에서는 박용철ㆍ박용수가 아닌 다른 남성 DNA가 검출되기도 했다. 박용철씨의 휴대전화기도 사라졌다. 사라진 박씨의 휴대전화에 관심이 모이는 까닭은 박씨의 발언 때문이다. 박씨는 2010년 9월1일 재판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런 모든 정황은 타살을 의심케 했고, 그 배후로 박지만 EG회장이 거론됐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일부 기자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당한 기자들은 모두 무죄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박지만 회장이 이를 사주했다는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다.

제보자의 주장을 이런 정황들에 대입해보면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박 회장이 아닌 최순실 씨가 배후였기 때문에 박 회장이 개입된 증거들이 드러날리 없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자살이 아닌 타살을 가리키는 정황들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최근 신동욱 씨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중앙일보와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 박용철과 사촌지간인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죽이고 목을 맨 것으로 결론 난 사건인데 진상은 전혀 다르다. 둘 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내가 돈이 없어 물가가 가장 싼 탑골공원 주변에서 지냈다. 1500원짜리 막걸리로 소일하고 돈암동 아파트 자택까지 걸어 다녔다. 이를 안 박용철씨가 전화해 ‘혼자 술 먹고 다니면 큰일 난다. 언제 작업(살인)이 들어올지 모른다’고 하더라. 최씨가 배후라는 의심이 든다. 박용철씨에게 ‘당신 보기에 최씨들(최태민·순실)은 어떤 이들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용철씨는 ‘무서운 집단’이라고 하더라. 용철씨는 100kg의 거구에 유도선수 출신이라 완력이 엄청나다. 그러나 용수씨는 체중이 60㎏밖에 안 나간다. 힘으로 용철씨를 이길 수 없다. 반드시 재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용철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그의 옆을 지켰던 보디가드 황선웅씨는 용철씨가 살해된 뒤 반년 만에 교통사고로 숨진다. 그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떠들고 다니다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본다. 최씨가 딸(정유라)이 사귀는 남자친구가 밉다고 조폭 두목을 만나 제거해 달라고 졸랐다는 보도도 나왔지 않나.”

 

 

 

 

 



 

박용철의 시체는 얼굴과 배가 칼날에 수십 차례 난자당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칼날로 복부를 찌르고 후벼 판 흔적을 보아, 범인은 살인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며 경험도 풍부한 자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박용철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뒤에도, 범인은 사망을 확실히하고자 장도리로 박용철의 두개골을 세 차례 강력히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 

박용철의 사촌 동생인 박용수는 박용철 살해 현장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에서 목이 매달린 채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박용수도 박무희의 손자로서 동양육운 회장 박재호의 아들이였다.

그리고 박용수가 노트 한 장을 찢어 남긴 유서도 매우 이상했다. 자신의 시체를 절대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살한 사람의 유서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묘하거니와, 경찰에서는 박용수의 필적이 맞는지 조사했는데 확인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기자 주진우가 사설 검증원에 의뢰한 결과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서로 같은 필체는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데도 그 종이를 박용수의 유서로 단정하다니 모든 걸 묻어 버리려는 느낌이 짙었다.

또한 박용수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설사약이 나왔다. 몸에 알약이 들어가면 30분이면 녹는데, 알약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은 자살하기 30분 전에 먹었다는 의미! 사촌 형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자살하기 불과 30분 전에 설사약을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자살을 한 장소도 이상하다. 정말 우발적으로 사촌형을 죽이고 죄책감과 당혹스러움에 자살을 결심했다면, 사촌형을 죽인 그 자리나 근처, 혹은 자기집처럼 평소 익숙한 곳으로 가서 자살하는 게 자연스럽다. 한밤중에 전등 하나 없는 산으로 가서 컴컴한 어둠속에서 몇 시간이나 등산한 후 자살한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박용철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즉 박용철은 수면제로 항거 불능인 상태에서 칼과 장도리 등으로 가격당해 죽었다는 뜻이다. 

박용수의 시체에는 목과 팔 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있는데 목을 매달기 전에 누군가와 몸싸움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목을 매달고 죽은 박용수의 시체는 큰 타월이 덮여 있었다는 점도 이상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가린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박용수의 가방에서 발견된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나 박용수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만일 박용수가 범인이라면, 사촌형을 죽이고 자살까지 결심한 마당에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지문을 깨끗이 지워버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피살 사건 현장에서 60미터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된 다른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박용수의 지문은 없었다.

또한 위의 항목에 나오는 신동욱 관련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인 박용철의 휴대전화기가 피살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다. 박지만의 살인 교사가 녹음됐다는 바로 그 휴대전화기가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을 기사화한 기자 주진우에게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휴대전화 메세지로 추가 정황을 알려주었다.

피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청소를 해놓아서 매우 깨끗했다.
피살 현장이 아니었는데도 경찰은 박용수가 머물던 여관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박용수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왜 대리운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용철과 박용수는 어느 친척보다도 사이가 좋았다. 박용수가 박용철의 사업 자금도 대주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

 

 

 

 

 

그알 내용 포함한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정리

 

1. 신동욱,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근령과 사귐 

2. 신동욱, 박근령 옆에서 떵떵거리면서 육영재단 안에서 제어 못할 정도로 활동 (육영재단 감사실장 맡음) 

3. 박지만, 박근혜. 신동욱 안 좋게 봄 

4. 신동욱, 박용철 따라서 중국으로 간후 마약 사건에 얽힐뻔함 (2007년 7월)
(며칠 전 이 사건이 박지만의 지시다. 이후 미얀마에서 총기살해 박지만이 지시했다라는 미확인 된 폭로가 나옴)

5. 신동욱은 귀국해서 “박지만이 박용철을 시켜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은 박지만이 허수아비 역할이고 배후는 박근혜의 주변 사람들이다”라고 주장 (시기 불명) 

6. 박용철이 "누구"의 지시를 받아 조폭, 한센병 환자 동원해서 육영재단을 박근령 손에서 탈취함 (2007년 11월) 
(이 때 한센병 환자를 끌고온 우두머리는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장애인 몫) 받아서 당선)

7. 박용철 2008년 8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으로 재직 

8. 신동욱은 5번에 나온 박지만 명예 훼손, 박근혜 싸이에 익명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을 묵인했다"라고 글을 수십번 올린 것으로 고소 당하고 구속. 1년 6개월 실형 받음 

9. 신동욱 재판 중에 박용철은 중국 사건에 박지만의 지시가 없었다고 증언. 

10. 하지만 박용철이 이 근처 언젠가 맘을 바꿈 

11. 재판에 영향을 줄 녹취 파일이 있다고 하며, 박지만과 정윤회와 딜을 하기 시작 (박지만 20억, 정윤회 1000만불) 
(아직 그알 주장)

12. 딜 불성립. 증언 내용을 바꾸려고 함 
(딜 불성립은 그알 주장. 증언 바꾸려고 하는건 팩트)

13. 바꾼 증언을 받아내기 위해 신동욱 측 변호사가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받아들여짐. 증언 날짜 2011년 9월 27일 예정.

14.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계속 어디랑 통화하면서 화냄.(박용철 가족의 증언) 

15. 사망 전 날 저녁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한 박용수는 본인이 살해할 박용철과 함께 술을 마심.

16. 술 마실 때 박용수는 박용철의 술에다가 치사량에 가까운 졸피뎀을 섞음.

17. 약과 과음한 술에 의해 무호흡증이 올 정도로 정신을 잃은 박용철을 데리고 차를 탄 후 대리 기사를 불러서 일산으로 출발 

18. 일산으로 가던 도중 박용수가 대리 기사에게 일산이 아닌 4.19 기념탑 쪽으로 가달라고 얘기함 
(대리 기사 증언)

19. 목적지 도착 후 대리 기사는 돌아가고 박용수 혹은 제 3자가 차를 몰고 실신한 박용철이 뒷자리에 있는 상태로 북한산으로 감 
(여기서부터 미리 제 3자가 나오지는 않을 수도 있음)

20. 박용철 살해 당함 

21. 박용수는 최소 2명과 함께 밤길을 1시간 반 이상 걸어 산으로 올라가서 자살을 당함. 혹은 협박을 당해서 자살을 당할 장소로 간듯. 
아님. 살인을 당해서 옮겨졌을 수도... 
(아직 그알 주장이 섞인 추론)

22. 박용철의 시신은 근처 사는 남학생이, 박용수의 시신은 환경미화원이 발견 

23. 경찰 수사 시작 

24. 금방 사건이 결론 남.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것으로 

25. 참고인 조사시 둘 사이가 안 좋았다는 증언을 한 사람은 칼 잘 쓰는 조폭, 박용철의 지인.
박용철의 몸에 나와 있는 칼자국은 전문가의 것으로 보임.

26. 사건이 마무리되고 한참 이후인 사건으로부터 1달이 지나 여관방에서 칼을 샀다는 카드 전표가 발견됨 
하지만 사건 후 1주일-10일만에 여관방은 여관 주인에 의해 깨끗이 치워짐 

27. 아직도 경찰들은 제대로 말을 안하고 있음.

28. 박용철이 무기로 가지고 있던 녹취 파일은 중국인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 파일은 한국에 있다고 얘기됨.

29. 속속 여기저기서 이 사건에 관한 제보들이 나오기 시작.

 

 

 

그리고 한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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