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심리학적 추정 기법으로 밝혀낸 뉴욕의 미친 폭파범-조지 메트스키

  • 살인의추억
  • 조회 13702
  • 2014.11.15 21:49
  • 문서주소 - https://threppa.com/bbs/board.php?bo_table=0204&wr_id=750

 

 

 



 

 

1940년 11년 , 뉴욕에 전기를 공급하는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 사의 창문턱에서 

터지지 않은 작은 폭탄이 발견되었다. 폭탄과 함께 다음과 같은 쪽지가 적혀있었다.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 사기꾼들아, 이거나 먹어라'

 

그리고 열달 뒤에 비슷한 폭탄이 거리에서 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했던 1941년12월에는 경찰 앞으로 쪽지 한 장이 날아들었다. 발신지는 뉴욕의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였다. 쪽지내용은 이러했다.

'전쟁기간동안에는 폭탄 사건을 일으키지 않겠다.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겠다. 그들은 비겁하게 행동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F.P.'

그 뒤 5년에 걸쳐 비슷한 쪽지가 에디슨 사와 여러 신문사, 호텔, 백화점에 날아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경찰은 F.P.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섣부른 예상이었다. 1950년 3월 25일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터지지 않은 폭탄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의 범인을 '미친 폭파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범인이 만든 폭탄들은 모두 매우 정교했다.

범인은 그리고 일부러 폭탄이 터지지 않게 장치해 두었다.

그 뒤 4년 동안에 12개의 폭탄이 터졌다. 

폭탄의 위력은 점차 강력해졌다.

범인도 점차 흉포해졌는데 <헤럴드 트리뷴>에 보낸 편지에서 범인은 이렇게 선언했다.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이 정의의 심판을 받는 날까지 폭탄으 계속 터질것이다'

 

1956년 12월 2일,

브룩클린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폭탄이 터져 6명이 다쳤다.

그 가운데 3명은 중상이었다.

뉴욕 경찰국 범죄연구소의 하워드 E. 핀니 경감은 당시에는 전혀 생소하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정신질환 전문가인 제임스 A. 브뤼셀 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브뤼셀은 놀라울 만큼 상세한 분석 결과를 제공했다.

 

--------------------------------------------------------------------

 

범인은 50세 정도의 남자이며 매우 민감한 편집증 환자이다.

체격은 건장하고 면도를 말끔히 하는 편이며 겉으로는 소심해 보인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친척과 함께 살지도 모른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며 슬라브계나 폴란드계의 이민자거나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길,

'만일 당신이 이 사람을 체포한다면, 아마 그때 이 사람은 더블 재킷을 입고 있을 것이며 

모든 단추를 꼭꼭 채우고 있을 것이다.' 

 

--------------------------------------------------------------------

 

경찰이 브뤼셀의 보고서를 요약해 인쇄를 하려던 순간 범인은 <저널 아메리칸>에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범인은 자기가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 사의 한 공장에서 부상을 당하고 장애인이 되었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곧바로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 사의 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또 다른 편지가 보냈고 이 편지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담겨있었다.

"나는 1931년 9월 5일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 사의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쳤다."

기록을 조사한 끝에 조지 메트스키란 인물을 찾아냈다.

그는 1904년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코네티컷의 브리지포트와 뉴욕 웨스트 체스터주변에는 거대한 폴란드 타운이 형성되어있었다.

그리고 범인이 보낸 편지들의 발신지인 웨스트체스터는 브리지포트와 뉴욕시티 사이에 위치했다.

브리지포트 부근의 워터베리에서 수사관들은 메트스키의 집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

메트스키는 자기보타 나이가 많은 사촌누나 2명과 함께 살고 있었고 건장한 체구였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이라서 그는 실내복을 입고 있었다. 수사관들이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와이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푸른색 더블 재킷 차림으로 나타났다. 

브뤠셀이 추정한 것처럼 단추도 모두 채우고 있었다.

메트스키는 정신 건강상 재판을 받을 수 없었고 남은 일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F.P.'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Fair Play'라고 대답했다.

 

 

 

 

<이 칼럼 및 기사는 커뮤니티 쓰레빠에서 선정된 회원들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추천 4 비추천 0

프로파일, 프로파일러, 연쇄살인, 살인마, 살인범, 살인, 조지 메트스키, 폭파범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