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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안경을 쓴 고영주 막말. 부림사건은 공안검사의 업적이다?

  • 도적정치타파
  • 조회 35779
  • 2015.10.0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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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 확신한다.”

“5·16은 정신적 혁명....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다.”

 

 

고영주 이사장

 

 

 

 

“(문창극 전 총리 후보)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인사청문회 전에 마녀사냥 식으로 사람을 반민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경위 자체가 오싹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다큐 「백년전쟁」은)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이인호 이사장

 

 

 

일베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지금 막말, 망언 논란을 낳고 있는 고영주 이사장이 직접 한 말이다. 이인호 역시도 저런 말을 했었고..

 

고영주 이사장은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이자 영화 '변호인'으로도 만들어진 부림 사건을 수사한 검사 이력에 대해 

"제가 공안업무를 전문으로 하면서 최초로 민중민주주의가 이적임을 밝혀냈고, 한총련이 이적단체임을 밝혀냈고, 전교조 참교육도 이적 이념이고, 통진당이 이적 단체라는 걸 밝혀내는 등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모를 때 제가 그런 일을 해왔다는 것 알아주시기 바란다"

고 항변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는 이날 오전 성명서를 발표해 

“고 이사장은 부림사건 당시 담당 검사 중 한 명으로 당사자들의 억울함이 재심을 통해 밝혀졌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고 말했다.

 

고영주가 보기에 자신과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다 빨갱이인 것 같다. 어처구니가 없다. 민주국가에서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공중파 이사장이라니.. 현 정권 민주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듣기 거북한 발언도 했다. 우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도 여순사건에 참여했다가 처벌된 사실이 있다. 그도 공산주의자냐"

고 묻자 

"그렇다. 공산주의자지만 전향했다"

며 박정희도 한때는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퇴 촉구와 비난이 이어지자 한 말.


"제가 최초로 민중민주주의가 이적임을 밝혀내고 전교조의 참교육이 이적이라는 점을 밝혀내는 그런 일을 해왔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그렇게 그는 일베의 영웅이 되고 있다.

일베에서는 고영주를 두고 친노 김무성을 버리고 고영주를 대권 주자로 보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확인국감(2015년10월6일 국회)
<정호준 새정치연합 의원 질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확인국감(2015년10월6일 국회)
<최원식 새정치연합 의원 질의>

 

 

 

 

 

 

 

 

부림사건이란?

 

'부산의 학림(學林) 사건'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1981년 3월 출범한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확보하고자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던 시기에 일어난 용공(容共) 조작사건이다. 1981년 9월 부산 지검 공안 책임자인 최병국 검사의 지휘하에 부산 지역의 양서협동조합을 통하여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짧게는 20일에서 길게는 63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하며 구타는 물론 '물 고문'과 '통닭구이 고문' 등 살인적 고문을 가하였다. 이로써 독서모임이나 몇몇이 다방에 앉아서 나눈 이야기들이 정부 전복을 꾀하는 반국가단체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로 날조되었다.


그해 9월 7일 이상록(부산대 졸업, 선반공)·고호석(교사)·송세경(회사원)·설동일(농협 직원)·송병곤(부산대 졸업, 공원)·노재열(부산대 4년)·김희욱(교사)·이상경(부산대 1년) 등 8명이 1차로 구속되었고, 10월 5일 김재규(상업)·최준영(설비사무사)·주정민(부산대 졸)·이진걸(부산대 4년)·장상훈(부산대 졸업)·전중근(공원)·박욱영(부산공전 졸업)·윤연희(교사) 등 8명이 2차로 구속되었다. 또 이듬해 4월 도피중이던 이호철(부산대 졸)·설경혜(교사)·정귀순(부산대 졸업)등 3명이 3차로 구속되었고, 대학 시위중에 구속된 김진모·최병철·유장현(이상 부산대 4년)과 탈영병 김영까지 연루되어 모두 22명이 구속되었다. 이들 중에는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와서 처음 대면하였을 정도로 무관한 사람들도 있었다.


검사측은 이들에게 국가보안법·계엄법·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징역 3~10년을 구형하였고, 재판정은 5~7년의 중형을 선고하였다. 당시 변론은 부산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김광일·문재인 등이 무료로 맡았는데, 특히 노무현은 고문당한 학생들을 접견하고 권력의 횡포에 분노하여 이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이들은 1983년 12월 전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으며, 이후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이 사건은 2000년대 이후 사법부에서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어 재심 판결을 받았다. 사건 피해자들은 1999년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었다. 그러나 2006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다시 재항고해 2008년 대법원에서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재심 판결을 받았다.

 

출처: 두산백과

 


 


● 참고사항 (당시 시대적 배경)

 

[1979년 부마항쟁]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

[1979년 10·26사태]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살해한 사건

[1979년 12·12사태]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쿠데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상계엄확대조치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여 벌인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4·13호헌조치」발표 후, 그해 6월 10일을 정점으로 20여 일 동안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중항쟁이자 민주화운동

 

유신정권이 극에 달하고, 박정희 전대통령 살해 사건 후, 전두환의 쿠데타로 집권. 그리고, 또다시 민심을 누르기 위한 일련의 활동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사건인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유혈사태를 맞게되었으며, 그 후 부산에서 다시 제2의 부마항쟁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시기이다. 결국 '민주화'를 막는 것은 '빨갱이' 카드 밖에 없었다. 이게 과연 단순히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에 80년대의 노무현 전대통령의 활동을 참고하면,

 

1984년 발족된 ‘공해문제연구소’의 이사가 되었고, 1985년에는 송기인 신부를 중심으로 ‘부산민주시민협의회’를 만들면서 재야운동에 나서는 한편 ‘노동볍률상담소’도 차렸다. 1986년경부터는 변호사 업무를 거의 중지하다시피하고 운동에 전념해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으로 ‘6월항쟁’의 주역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부산민주화운동의 야전사령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해 9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가 파업 중 거리시위를 나왔다가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자, 임금협상과 보상 등 문제와 관련해 노동자들을 도왔다. 이것이 문제가 돼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됐다가 23일 만에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다. 부산지역 개업 변호사가 100명을 조금 넘던 시절 99명의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 화제가 됐다.

 

출처: 노무현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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