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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의 시발점이 된 아웅산 폭파 테러 의문점

  • darimy
  • 조회 43429
  • 2016.01.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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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 폭파 장면은 사고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노약자, 임산부, 아이들은 플레이를 누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모바일

https://youtu.be/Cv6baXBy3cA

 

전두환을 노린 이 아웅산 폭탄 테러로 한반도는 전쟁의 기운 마저 돌았고, 그동안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회주의국가인 미얀마는 북한과의 수교를 단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테러로 한국의 저명인사 17명이 사망했고, 수십명의 인원이 부상을 입었다. 총 3명의 범인은 사건이 일어난 며칠후 검거가 되었는데, 그중 한명은 사살되었고 2명의 체포되었다. 다시 그중 한명인 사형에 쳐해졌고, 나머지 한명은 2008년 옥중에서 욕사했다.

 

이 옥사한 사람은 강민철. 그는 계속해서 남한으로 소환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07년 북한과 미얀마의 수교가 다시 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도 소환이 되지 않았다. 북한는 "독재자 전두환을 제거하려던 남조선 인민공화국의 소행이지 북한이 개입한게 아니다. 강민철도 북한 사람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다." 라고 주장했다.

 

과연 아웅산 폭파 테러는 북한의 단독 소행일까? 아니면 무언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존재할까? 지금부터는 사족이 들어감으로 음모론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단지 의문점이 있어서 몇자 적어본다.

 

먼저 희생된 수행원들이 우연치고는 너무도 이상하다.

 

 

폭파 테러가 일어나기 수십초전의 사진이다.

 

희생된 사람들은 경제기획원장관, 재무부차관, 상공부장관, 동력자원부장관, 농림수산부차관, 과기부차관, 경제수석 등이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박정희 이후 대표적인 군부정권이다. 하지만 아웅산 참배시에는 가장 왼쪽에 있는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만 참석을 했다. 게다가 유일한 생존자 이기도 하다. 추후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할 정도로 당시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군부정권에서 군인들은 해외방문에 참여하지 않았다는것이... 게다가 유일한 군인이 유일한 생존자란 사실도...

 

천운이고, 군사문제로 방문한게 아니니 그럴수 있다고 치자.

 

그럼 다음으로 테러 방법이다. 분명 전두환을 살해할 목적으로 저지른 테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어떻게 살인할 자가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폭탄을 터트릴수 있을까?

 

전두환이 폭탄 테러에 희생이 안된 이유는 행사장에 30분정도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많다. 당시 전두환 일행의 안내를 맡은 버마 외무장관 '칫라잉'의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전두환 숙소에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이에 화가 난 전두환은 일부러 늑장을 부러 행사장에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뭐 그럴수 있다.

 

하지만 10시 30분 전두환 일행이 현장에 도착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테러리스트들은 10시 28분 한국정부의 수행원들이 애국가 예행연습을 하고 버마 나팔수가 진혼나팔을 부는 걸 듣자마자 설치했던 크레모어의 원격조정 버튼을 누른다.

 

얼마나 급박하면 도착시간에 딱 맞춰 폭탄을 터트렸을까? 게다가 목표물 확인도 하지 않은채... 그리고 안전하게 목표물을 제거하려면 도착하고 자리가 정돈된 후 폭탄을 터트려도 늦지 않았을텐데... 참으로 허술한 테러리스트들이 아닐수 없다.

 

 

허술한 테러리스트라고 치자. 근데 여기서 또하나 이상한점이 발견되었다.

 

1983년 전두환의 서남아시아 순방계획에는 애시당초 버마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외교부에 청와대에서 버마를 집어넣으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버마를 가려면 일정상으로도 차질이 있고, 당시 안기부까지 반대했던 방문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끝까지 강행했다.

 

외교부에서 굳이 버마를 강행한 이유에 대한 추측이 나왔는데, 그것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재임기간 7년동안 나를 정상으로 돌리고 임기가 끝나면 재임기간을 절대 늘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막상 물러나려고 하니 후한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 해결책이 버마에 있다거를 측근중에 한명이 알려줬다는게 외교부의 추측이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 사실여부를 떠나 뒤에도 나오겠지만 성공(??)적인 버마 방문이 된것은 확실하다. 이 얘기는 말미에 다시 할 예정이다.

 

다시 아웅산으로 돌아가서 보면 목표물을 확인도 안한 허술함을 보인 테러리스트는 검거과정에서도 다시한번 허술함을 보여준다.

 

아웅산 테러범은 북한 인민국 정찰국 산하 특수8군단 소속의 '강창수 부대'에서 선발된 특수 요원들이다. 조장 진모 소좌, 통신담당 강민철 상위, 폭파담당 신기철 상위로 구성된 이들은 1983년 9월 제련소 직원으로 위장해 버마 양곤에 잠입한 후 북한 외교관 자택에서 머물면서 테러 계획을 짰다. 

 

사건 이틀전인 10월 7일 새벽, 아웅산 묘지에 침투 건물 천장에 크레모어 2개와 소이타 1개를 설치한 후 테러 당일인 10월 9일까지 묘소 주변에서 노숙하며 전두환 일행을 기다렸다. 폭파 스위치를 누를 장소를 두고 대립있었지만 묘소에서 1km 남짓 떨어진 '위자야 극장'을 선택하는 등 범행 직후 현장을 도피하는데 있어서 최상의 조건의 장소까지 섭외한 상태였다.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다음날이 10월 10일 강을 헤어치면서 도주하던 조장 진모 소좌는 주민들의 신고로 체포되었고, 다음날인 10월 11일 나머지 2명은 경찰과 교전을 벌이며 저항하다가 신기철은 사망하고, 강민철은 생포되었다.

 

적국의 통치자를 제거하는 목표로 내려온 특수부대 출신의 테러범들 치고는 너무 허술하지 않나? 도주로까지 확보하고 1km나 떨어진 곳에서 원격을 폭파를 했으니 얼굴이 공개되지도 않았을터인데 불과 1~2일만에 잡힌다는게.. 지금처럼 버마에 SNS가 발달된것도 아닐텐데 주민들은 그들의 얼굴을 어떻게 알고 신고를 했으며 뛰면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맞춘다는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잘 훈련된 군인도 아닌 버마 경찰들에게 잡혔을까?

 

게다가 설치한 크레모어 2개중 1개만 터지고 나머지 크레모아와 소이탄은 터지지도 않았다고 하니 이렇게 허술한 테러범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듯하다.

 

이렇게 진범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허술한 범인들이 잡히고 전두환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행 비행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귀국하자마자 "이건 명백한 북한의 도발이고, 반드시 응징할 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뭐 최근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오기도 했으니깐...

 

그래서 비상경계령이 떨어지고,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날듯한 분위기가 고조되죠. 휴전선에 인접한 1군단, 6군단에서는 전두환의 지시도 없었는데 완전무장에 북진 준비를 완료했다고 하며,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모의 훈련까지 마친 '벌초계획'이라는 비밀 작전은 전두환의 싸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북진을 외칠듯한 전두환이 직접 전방부대를 돌면서

 

 

"나의 명령없이 단 한놈이라도 개별 행동을 했다가는 죄다 반역죄로 간주하겠다"

 

그러더니 희생자 장례식을 치른 후 10월 20일 대통령 특별 담화에서 "이것이 우리의 평화 의지와 동족애가 인내할 수 있는 최후의 인내이며, 다시 도발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라고 발표하면서 사실상 무력 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내외적으로 밝힌다.

 

이일로 대한민국에는 '반공으로 총화단결'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으로 되었다.

 

당시 신군부 집권 이후 억눌렸던 정치의식이 정권 전복 직전까지 달아오른 시기였고, 1982년 '장영자 사건'으로 초대형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미문화권 방화사건, 1983년 초에는 김영삼의 민주화 요구 단식투쟁이 20일동안 진행되는 등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1983년 9월 1일에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의 공격으로 격추되는 사건까지 일어났고, 얼마뒤 아웅산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산 괴뢰집단의 국가 전복 음모' 가 현실적으로 와닿는 분위기에서 독재의 불편함을 잠시나마 잊고, 다시한번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고, 대동단결해서 북한의 침략을 막아야된다. 란 반공의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즉 요새 자주얘기하는 북풍이 모든걸 잠재운다의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아웅산 폭파 테러인 것이다.

 

단지 개인의 추측성 글이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의구심을 안겨준 아웅산 폭파 사건. 비록 전두환 혼자의 독단적인 계획이라고 치부하기엔 이 사건으로 북한도 가져간것들이 꽤 있기에 단정할순 없지만 확실한건 어느나라가 범인이든 전두환 살해가 최종 목표는 아니란 점이다.

 

선거철 어김없이 북풍이 몰아쳤고, 아마 2~3월에 또 한번 몰아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이번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북풍 = 필승 요건이 형성될 것인지.. 아니면 내성이 생긴 국민들이 북풍과 무관한 투표를 할 것인지... 총선 4월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참고자료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278.html

http://www.i-bait.com/read.php?num=1987

http://www.redian.org/archive/8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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