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정도는 아닙니다.
의자왕시절의 백제가 중국에 비해 약소국인 것은 맞지만, 장정수나 가호수 등이 신라에 딱히 아래는 아니었습니다.
의자왕 시절의 백제가 대략 76만호인데, 76만호면 얼추 300만~400만 정도의 인구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백제 인구에 대해서도 여러 기록으로 추정이라 정확하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25만호 라는 기록도 있고 76만호라는 기록도 있고, 어쨌든 가장 낮은 기록을 기준으로 봐도 150만 가까운데, 당시 시대의 세계에서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중앙집권국가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당시 백제 인구면 세계에서 손에 꼽을만한 강국이었던 시대입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의자왕 3000궁녀는 온전한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역사상 인구 10만을 넘은 최초의 도시가 위진남북조시대(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중기쯤)의 장안이었습니다.(이것도 논란이 좀 있습니다. 로마가 최초다, 장안이 최초다, 이스탄불이다 등 등, 지금으로 봐선 어느 쪽이 맞는지 정확한 검증은 어렵습니다. 다만, 말 그대로 인구 10만 도시면 당시 세계의 최중심점 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중국도 아닌, 동아시아의 당시 소국인 백제(소국이라는 표현에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백제 전성기가 아닌, 백제 멸망기 기준이면 인구로 보나 국토면적으로 보나 소국 맞습니다.)에 궁녀만 3천명?
궁녀 3000명을 유지하려면 백제의 수도가 장안보다 인구가 몇 배는 커야 가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검증 더 할 것 없는 허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