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음악잡지 <음악지우(音樂之友)>는 1942년 10월호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는 경축행사가 1942년 9월15일의 경축식전을 중심으로 최고조에 달했다고 전하고 있다. 만주국의 신국가 제정을 비롯해 일본에서 건너온 음악사절 등이 참여한 수많은 연주회가 줄을 이었다. ‘대동아 음악 건설’의 기치를 내건 이 경축행사에는 9월21~23일 신경(현 창춘), 하얼빈, 봉천(현 선양) 등지에서 개최된 만주국의 ‘맹방’ 독일,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의 경축곡 연주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를린에서도 만주국 건국 10주년 행사는 열렸다. 1942년 9월18일 오후 8시, 곡은 <만주국>, 지휘는 ‘일본 지휘자’ 에키타이 안(안익태)이었다. 마지막 4악장에 합창이 포함된 이 대편성 축전곡의 합창 대본을 작성한 이가 바로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다. 안익태보다 열 살 정도 위였던 그는 하얼빈시 부시장을 거쳐 주독 만주국 공사관의 참사관을 지냈다. 당시 공사는 여의문(呂宜文)이었다. 여의문은 일본 메이지 대학 출신으로 만주국 국무총리의 비서관과 통화성장을 지낸 뒤 만주국 공사로 임명된 사람이다. 당시 만주국의 정부조직 체계가 그러하듯, 에하라가 여의문 공사의 아래인 참사관이었지만 사실상 실세였다고 보면 되겠다. 에하라는 패전 후 소련군의 보호하에 모스크바를 거쳐 일본으로 귀국한 뒤,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 반면 만주국 공사 여의문은 귀국 후 친일파, 곧 한간(漢奸)으로 재판에 회부돼 총살되었다.
기사일부
아직도 매국노가 만든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이나라.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매국노들을 청산한 의지조차 없는게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