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공개할 수 없었던 소름 끼치는 제보
추석을 며칠 앞둔 9월의 어느 날, 피디들 사이에서 ‘오반장’이라고 불리는 오유경 작가가 신문기사 두 개를 건넸다. “두 사건 비슷하지 않아?” 하나는 익히 알고 있던 ‘노들길 살인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좀 낯선 사건이었다. 마침 그날, 서울경찰청 형사들과 점심약속이 있었고, 또 마침 거기엔 두 사건을 수사한 적 있는 형사가 함께 자리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슬쩍 물었다. “두 사건, 동일범일까요?” 그런데 잠시 후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신정동 사건 하시게유? 그거 미수 건이 하나 있는디. 잡혀갔다가 도망친 여자가 있어유.” 연쇄살인범에게서 탈출한 생존자가 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형사는 이어서 얘기했다. “그 여자가 그걸 기억하더라구유.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은 신발장. 근디 문제는 더 이상 우리한테 협조를 안 해주는 거예유.”
그녀를 찾아간 건 방송을 불과 3∼4일 앞두고서였다. 보기 좋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현관문을 사이에 둔 장시간의 통화 끝에, 드디어 그녀가 마음을 열었다. (사실, 통화 내용은 이전의 통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현관문 밖에 서서 전화로 얘기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나보다.)
잠시 후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우리를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녀에게선 씩씩함, 그리고 속된 말로 깡다구 같은 것이 느껴졌다. 10분만 시간을 내어주겠다고 했던 그녀는 기억의 먼 가장자리에 오래도록 묻어 놓았을 그날의 기억을 벌벌 떨면서, 혹은 펑펑 울면서 하나둘 끄집어냈고, 결국 두 시간에 걸쳐 자신이 겪은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는 인터뷰가 끝난 뒤 내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꼭 범인을 잡아 달라. 그리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
후속편에서 진전된 수사 결과를 보여주지 못해 실망한 분들이 적잖이 계실 텐데, 사실 경찰에서 수사 중인 유력한 제보들은 방송에 공개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수사에 방해가 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모든 걸 속 시원히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많은 분들이 보내준 소중한 제보가 좋은 결과로 이어져 ‘엽기토끼와 신발장’ 세 번째 편을 만드는 그 날이 오기를 늘 고대하고 있다. (팀장님도 범인 잡기 전엔 ‘그알’ 나갈 생각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목숨 걸고 잡아야한다.)
범인이 꼭 잡혀서 피해자분들과 생존자 분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라며,
사건의 더 자세한 이야기를 시청자 입장에서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