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시즌 최고의 기록은 262이닝 0.99의 ERA에 sWAR 14.89를 기록한 1986 선동열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즌이 KBO 최고의 투구 퍼포먼스냐 ... 하기에는 이견이 있는데,
일본으로 떠나기전 KBO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5년에 선동열은 한번 더 어처구니 없는 기록을 남깁니다.
규정이닝 126에 17이닝 차이로 미치지 못한 109이닝을 던졌는데, 당해 해태 타이거즈가 64승으로 4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 96년 (73승) 이나 97년 (75승) 수준의 성적을 냈다면 충분히 규정이닝을 채울 페이스였죠.
109.1이닝을 던져 홈런 1개, 볼넷 14개, 자책점은 고작 6점을 주고 삼진 140개를 뽑아내 ERA 0.49를 기록합니다. 선동열이 63년 1월 10일생 이므로 우리나이로는 33세,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으므로 입학 기수 기준으로는 34세 시즌에 올린 성적입니다.
당시 타자들 수준은 리그 초창기였던 86년과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용병 투수 도입 이후 2000년대도 준수한 활약을 했던 타자들의 이름이 여럿 눈에 띕니다. 리스트를 30위까지 확장해보면 루키였던 이승엽의 이름도 나오죠.
그러면 어떻게 저 성적이 나왔는가,
이런 공이나
이런 공
이런 공을 던졌기 때문이죠.
1995년은 아직 전경기를 중계해주던 시절이 아니므로 대신 소스를 구하기 쉬운 1997년 주니치 시절의 투구영상을 가져왔습니다.
일본에서 첫 해에 처참한 성적을 거둬 절치부심 후 전력투구해서 1997 년에 저런 공을 던질 수 있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실상은 1994년 선발전환 실패로 커리어 로우를 찍은 뒤 불펜투수로 완전히 전향한 선동열이 전력투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무릎높이로 날아오는 155km 를 던지던 시즌이었던 겁니다. [1] 이정도면 109이닝 14볼넷, 1피홈런, 6자책점이 이해되는 수준이죠. 웃기는건 그 해에 5승 3패 33세이브를 기록했다는 점. 5승 33세이브는 알겠는데 3패는 어떻게 한걸까요?
그리고 대망의 일본진출 첫 해인 1996년에 견제모션을 읽히고, 스트라이크 존 적응에도 실패해서 BB/9 비율이 3 이상으로 치솟고, BABIP이 0.4를 넘는 지독한 불운까지 겹쳐 망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선동열은
1997 NPB 센트럴리그 투수 WAR 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2] 63.3이닝 무피홈런, 12볼넷, 69삼진, 9자책에 그해 기록한 154km 는 당해 센트럴 리그 비공인 최고구속이었습니다. 유튜브에 NPB 시절 선동열 영상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1997년에 찍힌 것들입니다.
기아 클로저였던 전상현이 어깨 염증으로 DL로 갔다는 뉴스를 듣고 뒤통수를 부여잡고 작성하는 글입니다. 1995 시즌의 선동열만 소환할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요.
[1] 95년 7월 22일자 중앙일보. 기사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3101358
[2] 일본 세이버 매트릭스 기록은 http://npbstats.com/ 참고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즌이 KBO 최고의 투구 퍼포먼스냐 ... 하기에는 이견이 있는데,
일본으로 떠나기전 KBO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5년에 선동열은 한번 더 어처구니 없는 기록을 남깁니다.
규정이닝 126에 17이닝 차이로 미치지 못한 109이닝을 던졌는데, 당해 해태 타이거즈가 64승으로 4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 96년 (73승) 이나 97년 (75승) 수준의 성적을 냈다면 충분히 규정이닝을 채울 페이스였죠.
109.1이닝을 던져 홈런 1개, 볼넷 14개, 자책점은 고작 6점을 주고 삼진 140개를 뽑아내 ERA 0.49를 기록합니다. 선동열이 63년 1월 10일생 이므로 우리나이로는 33세,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으므로 입학 기수 기준으로는 34세 시즌에 올린 성적입니다.
당시 타자들 수준은 리그 초창기였던 86년과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용병 투수 도입 이후 2000년대도 준수한 활약을 했던 타자들의 이름이 여럿 눈에 띕니다. 리스트를 30위까지 확장해보면 루키였던 이승엽의 이름도 나오죠.
그러면 어떻게 저 성적이 나왔는가,
이런 공이나
이런 공
이런 공을 던졌기 때문이죠.
1995년은 아직 전경기를 중계해주던 시절이 아니므로 대신 소스를 구하기 쉬운 1997년 주니치 시절의 투구영상을 가져왔습니다.
일본에서 첫 해에 처참한 성적을 거둬 절치부심 후 전력투구해서 1997 년에 저런 공을 던질 수 있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실상은 1994년 선발전환 실패로 커리어 로우를 찍은 뒤 불펜투수로 완전히 전향한 선동열이 전력투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무릎높이로 날아오는 155km 를 던지던 시즌이었던 겁니다. [1] 이정도면 109이닝 14볼넷, 1피홈런, 6자책점이 이해되는 수준이죠. 웃기는건 그 해에 5승 3패 33세이브를 기록했다는 점. 5승 33세이브는 알겠는데 3패는 어떻게 한걸까요?
그리고 대망의 일본진출 첫 해인 1996년에 견제모션을 읽히고, 스트라이크 존 적응에도 실패해서 BB/9 비율이 3 이상으로 치솟고, BABIP이 0.4를 넘는 지독한 불운까지 겹쳐 망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선동열은
1997 NPB 센트럴리그 투수 WAR 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2] 63.3이닝 무피홈런, 12볼넷, 69삼진, 9자책에 그해 기록한 154km 는 당해 센트럴 리그 비공인 최고구속이었습니다. 유튜브에 NPB 시절 선동열 영상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1997년에 찍힌 것들입니다.
기아 클로저였던 전상현이 어깨 염증으로 DL로 갔다는 뉴스를 듣고 뒤통수를 부여잡고 작성하는 글입니다. 1995 시즌의 선동열만 소환할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요.
[1] 95년 7월 22일자 중앙일보. 기사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3101358
[2] 일본 세이버 매트릭스 기록은 http://npbstats.com/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