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오래된 사연이다.
터키 이민자 가정 출신인 부라크는 2003년 바이얼 04 레버쿠젠을 통해 축구에 입문해 헤르타 베를린·함부르크 SV·하노버 96 등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잔뼈가 굵은 클럽의 유소년 팀을 두루 거친 유망주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며, 독일 U-16대표팀과 U-17대표팀을 거치는 등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사미 케디라·데니스 아오고·케빈-프린스 보아텡 등이 부라크의 동기생으로서 스타가 된 케이스다
하지만 이 유망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지난 2013년 시리아 북부 도시 아자즈에서 이뤄진 공습 때 IS(이슬람레반트국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다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에이전트 였던 하룬 아르슬란의은 “부라크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무척 슬프다”라면서도 “아마 부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고 했다.
U-17대표 시절 입었던 심각한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병원신세를 진 부라크는 재기를 노렸다.
그의 동료였던 올름은 "부라크가 급진주의자가 될 만한 징후를 볼 수 없었다”라면서도 “부상을 입은 후 과거의 기량을 되찾는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알레마니아 아헨 2군 팀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라고 떠올렸다. 결국 부라크는 만 20세가 되던 2008년 돌연 축구 선수 커리어를 그만 뒀다.
부라크는 동기생들이 축구 스타가 되어 승승장구할 때 시나브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
축구 선수의 길을 접은 후 부라크는 엉뚱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2010년 뒤셀도르프 지역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부라크의 전화 감청을 추진한 바 있다. 국가 테러 범죄를 일으킬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부라크가 여행을 떠났을때 같이 갔던 친구들이 독일 내에서 살라피스트(이슬람 급진주의자)로 유명했던 엠라 에르도안, 뷔야민 에르도안 형제였다.
독일 정부로서는 이 여행이 수상하다고 여겨 독일 법원의 허가를 받아 부라크를 사찰 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은 ‘위험한 형제’와 함께 여행을 떠난 부라크가 테러 단체에 가담했다는 어떠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자칫 독일 검찰은 생사람잡듯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비판을 받을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이 옳았다. 본래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부라크는 이 여행을 통해 이슬람 급진주의에 완전히 경도됐으며, 2011년에는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밀라투 이브라힘의 수괴인 모하메드 마흐무드와 접촉해 조직에 가담했다. 이후 부라크는 부인과 두 명의 딸을 데리고 터키 국경지대를 통과해 시리아로 넘어가 IS에 가담했다. 이름도 아부 압둘라 알 투르키로 바꿨다.
알 투르키가 된 부라크는 유투브에 자신의 전투 영상을 올리며 완벽한 테러리스트가 됐음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부라크는 영상을 통해 “어머니 절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시를 암송하는가 하면, 이교도들과 싸우는 것이 즐겁다는 기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라크는 2013년 10월 11일 시리아 북부도시 아자즈에 가해진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 그의 아내와 두 명의 딸의 생사는 현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지금에 와서 부질없는 것이지만, 그는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를 괴롭히던 부상을 극복하고 축구 선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아예 없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한때 그의 동료였던 올름처럼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지도자의 길을 밟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내려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렸고, 그 대가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80120124744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