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소년 프로젝트 1세대 선수 90년대 초 일본축구 증흥기의 시작을 알렸던 중심선수로
98프랑스 월드컵 직전까지 일본축구의 대명사 같은 간판 선수였지만..
갑자기 월드컵을 앞두고 기량이 하락 98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조예선서 한국에 2:1로"도쿄대첩"당하자
일본 언론과 축구팬들은 그 책임의 희생양으로 미우라를 겨냥, 미우라가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축구팬들과 싸우는 장면까지 내보내는 등
언론과 축구팬 모두가 미우라에 냉정했다.
협회의 입김인지 오카다 감독의 결정인지 모르지만 98프랑스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탈락하고 이 일은 훗날 두고두고 얘기거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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