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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낸 그 신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

  • 작성자: 칫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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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607
  •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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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MVP가 웃는 모습. 15순위로 지명되자마자 트레이드 됐던 그는 벌써 2번이나 파이널 MVP 트로피를 들어올린 거물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 


드래프트는 일종의 ‘복권’이다. 

스타가 될 거라 확신했던 선수가 지극히 평범한 선수로 커리어를 마칠 때도 있고, 큰 기대 없이 뽑은 선수가 스타가 될 때도 있다. 

2 7순위로 선발됐지만 기량발전상 수상자가 된 파스칼 ‘플라잉’ 시아캄(토론토 랩터스)이 가장 가까운 사례가 아닐까 싶다. 

미래를 알 수 없는, 그래서 선발과 양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NBA 지명권. 

지난 15년을 돌아봤을 때 이 ‘복권’을 함부로 넘겼다가 후회한 구단도 있었고, 큰 웃음을 지은 구단도 있었다.



쏠쏠한 밑천이 됐던 루올 뎅

@ 2004년 NBA 드래프트 

시카고 불스 <-> 피닉스 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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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올 뎅은 '유망주 군단' 불스와 함께 성장했다. (사진=게티이미지) 


2004년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불스는 피닉스 선즈와의 딜을 통해 든든한 밑천을 얻는다. 전체 7순위로 듀크대 출신의 루올 뎅(1985년생, 206cm)을 영입한 것이다. 대신 그들은 피닉스에 31순위 잭슨 브로먼(작고)과 2005년 1라운드 지명권, 그리고 현금을 보냈다. 

당시 2005년 지명권은 3순위까지 보호가 걸린 조건이었다. 그 시즌에 시카고는 3순위로 벤 고든(1983년생, 190cm)을 지명해 핵심 전력 대다수를 25세 이하로 꾸리며 미래를 도모했다. 스캇 스카일스 감독 지휘아래 47승 35패로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도 했다.


루올 뎅은 이후 2013-2014시즌까지 10시즌 동안 시카고가 9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힘을 보탰다. 올-루키 퍼스트팀, 올 디펜시브 세컨드팀, 올스타 2회 출전 등 나름의 선전도 보였다. 탐 티보듀 전 감독의 총애를 듬뿍 받은 덕분인지 2010-2011시즌부터는 3시즌 연속 평균 출전시간 부문 TOP 5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2011-2012시즌과 2012-2013시즌에는 이 부문 1위를 기록했다. 


활활 타오르며 에너지를 뿜던 루올 뎅은 2008-2009시즌 체결한 6년 계약이 끝나갈 무렵 구단과 새 계약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지 못했는데, 결국 2013-2014시즌 중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시카고와의 긴 인연도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비록 우승은 안겨주지 못했지만, 10년 동안 팀에 헌신한 중요한 자원을 얻었다는 점에서 2004년 지명권 획득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한편, 피닉스는 당시 트레이드로 얻은 2005년 지명권을 네이트 로빈슨 지명 후 뉴욕 닉스로 보냈다. 퀸튼 리처드슨이 함께 뉴욕으로 갔다.  (사실 이 시기만 해도 피닉스는 스티브 내쉬 중심으로 플레이오프는 무난히 갔기에 신인에 그리 비중을 두지 않았다. )



더 많은 선수를 택했던 포틀랜드

@ 2005년 NBA 드래프트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 유타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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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가 트레이드로 영입한 신인은 4시즌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선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


2005년 드래프트 로터리 추첨 결과 3순위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였다. 그러나 2005년 6월 28일 드래프트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차지한 구단은 유타 재즈였다. 


드래프트 시작 1시간 전, 포틀랜드와 유타가 합의한 트레이드로 인한 결과였다. 

포틀랜드는 3순위 지명권을 유타로 보내는 대신 6순위와 27순위, 그리고 2006년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았다. 



유타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운이 따랐던 트레이드였다.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2004년 드래프트부터 돌아봐야 한다. 당시 유타는 크리스 험프리스(14순위), 커크 스나이더(16순위), 파벨 포드콜진(21순위)을 지명했다. 1985년생에 무려 226cm였던 포드콜진은 러시아 국적의 선수로 댈러스 매버릭스가 눈독을 들였던 선수였다. 청소년 대표선수 출신으로, 유럽 장신선수 스카우트를 선호해온 도니 넬슨의 취향 덕분이었다. 댈러스는 유타에게 미래의 1라운드 지명권과의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229cm의 장신으로 2004-2005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숀 브래들리의 자리를 언젠가는, 그리고 조금이나마 메워줄 것이라 기대했던 모양. 하지만 포드콜진은 그 정도 선수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유타가 이때 댈러스로부터 받은 지명권을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6순위 지명권에 27순위, 그리고 이듬해 드래프트 지명권을 한꺼번에 넘기면서 3순위를 얻었다. 

유타의 선택은 포인트가드였다. 일리노이 대학 출신의 데론 윌리엄스(1984년생, 191cm)냐, 웨이트 포레스트 대학 출신의 ‘꾀돌이’ 크리스 폴(1985년생, 183cm)냐를 두고 고민 끝에 윌리엄스를 지명했다.


선수로서 마무리는 썩 좋지 않았지만 유타 시절의 윌리엄스는 한때 유타 팬들에게 제2의 전성시대를 꿈꾸게 해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2007년부터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그의 담력있는 플레이도 돋보였다.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는 5경기 연속 20+득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유타와 결별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옥에 티였다. 유타의 상징과도 같던 제리 슬로언 감독이 사임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만일 포틀랜드가 이 지명권을 끝까지 지켰다면 어땠을까.  당시 리빌딩에 접어들던 포틀랜드는 6순위로 마텔 웹스터(1986년생, 201cm), 27순위로 리나스 클레이자(1985년생, 203cm)를 택했고, 그 중 클레이자는 덴버 너게츠로 트레이드 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프로에 직행한 웹스터는 201cm의 키에 좋은 슛을 지닌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왼발 중족골 골절로 시즌아웃 되는 등 성장세를 꾸준히 이어가진 못했다. 한편 당시 트레이드로 얻은 2006년 드래프트 지명권(30순위)으로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조엘 프리랜드(1987년생, 210cm)를 지명했지만, 3시즌간 겨우 151경기 출전에 그쳤다. 


물론, 3순위를 지켰다해도 포인트가드를 지명했을 지는 알 수 없다. 포틀랜드는 1년 먼저 지명한 고졸 유망주 세바스찬 텔페어(1985년생, 183cm)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 이미 고교시절부터 대형 농구매거진 표지를 장식했던 그였지만 안정감을 보이진 못했다. 또 포틀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미디어와의 사이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팀의 숨은 보석 

@ 2006년 NBA 드래프트

보스턴 셀틱스 <-> 피닉스 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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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3'에게 라존 론도와 같은 저비용 고효율 선수들이 없었다면 우승의 영광도 쉽게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2005-2006시즌 33승. 2006-2007시즌 24승.


‘명문팀’ 보스턴 셀틱스는 반등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불과 몇 시즌 전, 폴 피어스-앤트완 워커 조합으로 주목할 만한 젊은 팀을 만들었는데 그 분위기가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2007년, 보스턴은 변화를 위한 버튼을 누른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제프 그린, 월리 저비액, 델론테 웨스트, 2008년 2라운드 지명권을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보내면서 레이 앨런과 글렌 데이비스를 받아들였다. 


한 달 쯤 지난 2007년 7월 31일에는 라이언 곰스, 제럴드 그린, 알 제퍼슨, 티오 레틀리프, 세바스찬 텔페어, 2009년 1라운드 지명권 2장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내주고 케빈 가넷을 영입했다. 


슈퍼스타 2명을 영입하는데 8명과 지명권 3장을 쓴 것이다. 그 와중에 하부리그에서 키우던 선수 1명도 방출했다. 


흔히들 ‘MAX’ 선수 3명을 보유하려면 나머지는 미드레벨 익셉션급 선수 1명과 신인, 미니멈 계약선수를 두는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보스턴이 비슷한 처지였다. 


2007-2008시즌 샐러리캡이 5,563만 달러였고 보스턴의 페이롤은 7400만 달러였다. 리그 연봉 1위 가넷(2300만 달러), 16위 폴 피어스(1636만 달러), 17위 레이 앨런(1600만 달러)만 해도 이미 5500만 달러를 넘기고 있었다. 이 팀에 연봉 200만 달러가 안 되는 선수들이 8명이나 됐다. 


‘행복 회로’를 마구 돌려서, 만약 LA 레이커스가 올 여름에 정말로 맥스 3명을 두게 된다면 보스턴과 비슷한 구조가 될 것이다.


그 와중에 세 선수에게 알차게 힘을 보태고, 급기야 ‘BIG3’ 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팀에 꼭 필요한 자원으로 올라선 선수가 있다. 바로 라존 론도다.


2006년 드래프트 당시 보스턴은 포인트가드를 찾고 있었다. 이미 7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지만 당장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드래프트에 앞서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포틀랜드로부터 세바스찬 텔페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7순위 지명권도 함께 건너갔다. 

 

이어 한 번의 트레이드를 더 단행한다. 

피닉스 선즈로 2007년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보내고, 브라이언 그랜트와 21순위 지명권을 얻은 것이다. 그 21순위 지명선수가 바로 라존 론도였다. 


론도는 이미 보스턴과 워크아웃을 가졌던 선수. 당시 포인트가드 중에서는 로터리급은 안더라도 카일 라우리와 함께 가장 낫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보스턴 역시 당장 큰 선수가 될 거라는 기대감은 갖지 않았지만, 브라이언 그랜트의 계약(167만 달러)을 덜어내 샐러리캡을 조금이나마 더 비우고, 유망주 자원을 채운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스턴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텔페어가 아닌 론도였다. 가넷, 피어스, 앨런 등을 보좌하면서 그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급기야 선배들로부터 인정받는 유망주가 됐고, 기량발전상 투표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 NBA 파이널에서도 2년차답지 않은 대담함을 보여 상대팀 감독이었던 필 잭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다. 올스타에도 4번 선정됐고, 올-디펜시브 퍼스트팀(2010, 2011년)에도 이름을 올렸다. 스틸 1위(2009-2010시즌), 어시스트 1위 3회 등도 이력에 추가했다. 


그 역시 불화설에 휩쓸리며 통제하기 어려운 선수라는 오명을 쓰긴 했다. 2014년 보스턴을 떠난 뒤에는 5년 연속 팀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21순위 지명권으로 얻은 자원이 보스턴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택이 됐다. 당시 샐러리캡 포화상태에서 겨우 130만 달러 정도 되는 연봉으로 700~800만 달러 베테랑들 이상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피닉스는 보스턴에게서 받은 지명권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사실 한동안 50~60승을 오갔던 피닉스였기에 즉시전력감 보강이 더 시급했던 피닉스였기에 이때도 픽을 지키거나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 이후의 몰락이 이리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터널 끝은 안 보인다.) 2007년 1라운드 24순위 루디 페르난데스는 포틀랜드로 넘어갔고, 대신 그들이 받은 것은 현금이었다.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를 얻은 포틀랜드

@ 2006년 NBA 드래프트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 시카고 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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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가 2006년에 나란히 선발한 알드리지(우)와 로이(좌)는 한때 팀의 미래를 주도할 콤비로 여겨졌다. (사진=게티이미지) 


‘악동 군단’ 시대 후 침체기를 이겨낸 포틀랜드는 2006년 드래프트에서 큰 선물을 받는다. 시카고와의 트레이드로 2순위 지명선수 라마커스 알드리지(1985년생, 211cm)를 얻게 된 것이다. 시카고는 알드리지를 보내고 타이러스 토마스(4순위, 1986년생, 208cm)와 러시아 유망주 빅터 크라하파를 받아들였다.

 

사실 2006년 드래프트는 역사에 남을 흉작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로터리에 지명된 14명 중 올스타가 된 선수는 겨우 2명(알드리지, 브랜든 로이)뿐이고, 1라운드 30명으로 확대하면 카일 라우리, 론도까지 넷이다.


2라운드에서라도 숨은 진주가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35순위 PJ 터커(1985년생, 198cm), 47순위 폴 밀샙(1985년생, 203cm), 49순위 리온 포우(1984년생, 203cm) 외에는 없었다. 포우는 애석하게도한참 빛날 시기에 무릎을 다쳐 일찍 떠났다. 


이 드래프트에선 안드레아 바르냐니(1985년생, 213cm)가 최고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슈팅 능력을 가진 이탈리아 출신 유망주로, 유럽 미디어에서는 10대 시절부터 조명을 받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2~3년 뒤에는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토마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LSU를 20년 만에 NCAA 파이널 포로 이끌었고, 출중한 운동능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아직 1학년 밖에 안 됐기에 2학년이던 알드리지보다는 더 좋은 '복권'으로 여겨졌다.

 

반면 포틀랜드는 알드리지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기본이나 수비 면에서는 알드리지가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 덕분에 그는 두 선수 주가가 오르기 전까지는 1순위 후보로도 꼽혔던 대학스타였다. 결국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이 트레이드의 성패가 갈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드리지는 겨우 2번째 시즌 만에 평균 17.8득점 7.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중심으로 올라섰다. 같은 해 드래프트 된 브랜든 로이(1984년생, 198cm)와 함께 포틀랜드 미래를 이끌 주역이 됐고, 로이가 무릎 부상으로 코트를 떠난 뒤에는 대미언 릴라드와 손발을 맞췄다. NBA 올스타에 7번 선정됐고, 올 NBA 세컨드팀과 써드팀에도 도합 5번 이름을 올렸다.


토마스의 커리어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갑자기 키가 훌쩍 자란 케이스로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는데, 갑작스런 부담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일례로 덩크슛 컨테스트에 출전했을 때는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구단의 제재를 받았다. “돈 준대서 나가는 것일 뿐”이라는 말은 신인으로서 부적절한 코멘트였다. 이를 포함, 루키 계약 기간 동안에만 5번이나 징계를 받았을 정도로 토마스는 팀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종종 재능을 확인해줄 만한 경기를 보여 관계자들을 심쿵했는데, 그게 너무 가끔인 것이 아쉬웠다. 훗날, 이에 혹해서 덥썩 문 구단이 샬럿 호네츠였는데 5년간 4천 만 달러로 계약하더니 3년 만에 사면 조항에 의거해 방출하기도 했다.



그때 보낸 유망주는 MVP가 되었다

@ 2011년 NBA 드래프트

샌안토니오 스퍼스 <-> 인디애나 페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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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ND' 카와이 레너드는 묵언 시대에 접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빅3'의 계보를 이을 샌안토니오의 새 기수가 될 것으로 보였다. (사진=게티이미지)


2011년 드래프트는 1984년, 2003년 정도는 아니더라도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한 드래프트였다. 1순위 카이리 어빙, 4순위 트리스탄 탐슨, 5순위 요나스 발렌슈나스, 9순위 켐바 워커, 11순위 클레이 탐슨, 16순위 니콜라 부세비치, 19순위 토바이어스 해리스, 30순위 지미 버틀러, 60순위 아이재아 토마스 등이 대표적이고, 니콜라 미로티치(23순위)와 이만 셤퍼트(17순위), 보얀 보그다노비치(31순위)도 자기 장점을 앞세워 적지 않은 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아쉬운 쪽으로 이슈를 몰게 됐지만 챈들러 파슨스(38순위)는 데뷔 당시만 해도 ‘염가 봉사’라는 말이 많을 정도로 활약이 쏠쏠했다. 특유의 슛모션 속임 동작도 박수를 많이 받았다. NBA보다는 국내에서 더 말이 많았지만, ‘버거셀’의 주인공 조쉬 셀비(49순위)도 이 드래프트 출신이다.


여기에 한 명의 이름을 더해야 한다. 바로 15순위로 지명된 카와이 레너드(1991년생, 201cm)다. 레너드는 2019년 6월, 가장 이름이 많이 언급된 NBA 슈퍼스타 중 한 명이다. 소속팀 토론토 랩터스를 우승으로 이끌며 두번째 파이널 MVP 트로피를 가져갔고, 또 이제는 자유계약선수로서 어느 팀으로 갈 지 시장의 모든 이들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드래프트 당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데릭 윌리엄스(2순위), 비스맥 비욤보(7순위), 짐머 프레뎃(10순위) 등보다도 후순위였던 15순위에 지명됐다.


스카우팅 리포트는 그의 하드웨어와 성실함, 수비력 등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 득점력이 떨어지고, 포지션이 어중간하다는 이유로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 게다가 워크아웃 기간에 부상을 입어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한 점도 요인이 됐다. 그래서 숀 메리언, 제럴드 월러스 정도가 ‘맥스 기대치’라 보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그는 15순위까지 내려갔다.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그를 뽑아갔다.


이때 레너드를 강력히 원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 코칭스태프였던 마이크 부덴홀저(현 밀워키 벅스 감독)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설득, 포포비치 부임 이래 첫 드래프트 데이 트레이드를 실시한다. 포포비치 감독의 ‘최애캐’ 조지 힐을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보내기로 했다. 인디애나도 가드진이 약한 편이었기에 조지 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레너드를 내줬다.


전담코치들과 함께 훈련한 카와이 레너드는 그로부터 3시즌 뒤 NBA 파이널 MVP가 됐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빅3’에게 마지막 우승을 안기며 말이다. 당시 미국 나이로 22살이엇던 레너드는 매직 존슨에 이어 2번째로 어린 파이널 MVP가 됐다. 또 2014-2015시즌에는 올해의 수비수가 됐다. 


비록 샌안토니오와의 결별 과정은 시끌벅적했지만, 이 정도면 역사에 남을 드래프트 데이 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디애나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조지 힐은 인디애나에서 5시즌을 보냈으며, 4차례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2013년과 2014년 모두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결승까지 갔으니 이 영입도 결코 이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레너드의 이후 임팩트가 워낙 컸을 뿐이다.



유타로 간 에펠탑

@ 2013년 NBA 드래프트

유타 재즈 <-> 덴버 너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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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는 급격한 인사이동으로 유망주를 깊이 평가할 부족했다. (사진=게티이미지) 


2012-2013시즌을 끝으로 덴버 너게츠는 격변의 시대에 돌입했다. 2015년 드래프트에서 건진 니콜라 요키치(1995년생, 213cm) 덕분에 성장 발판을 마련했지만, 10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었던 팀은 한동안 거친 서부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3년을 끝으로 조지 칼 감독이 떠났고, 이어 마사이 유지리 단장도 토론토 랩터스로 팀을 옮기면서 팀은 전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는 안타까운 판단 미스도 있었다. 2013년 1라운드 27순위 지명권 권리를 유타 재즈에 넘긴 것도 그 중 하나다. 


프랑스 출신의 루디 고베어(1992년생, 216cm)는 NBA 데뷔 당시 겨우 20살로 엄청난 윙스팬을 갖춘 유망주였다. 커리어 초반에는 G리그를 오가며 수련에 중점을 두었지만, 전성기에 접어든 2017-2018시즌과 2018-2019시즌에는 두 시즌 연속 ‘올해의 수비수’상과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선정되면서 유타의 든든한 중심으로 올라섰다. 블록슛 1위(2016-2017시즌)도 기록했다.


반면 덴버는 아쉽다. 당시 저베일 맥기, 티모페이 모즈고프, 얀 베슬리 등 장신 자원들이 각자 가진 장점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러나 덴버 포스트의 크리스토퍼 뎀프세이 기자는 “고베어가 그리 엄청난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지 못했다”는 칼럼을 남기기도 했다.


또, 덴버가 신임 단장인 팀 코넬리를 드래프트를 겨우 2주 남기고 임명했다는 점, 심지어 감독인 브라이언 쇼우는 드래프트 3일 전에 계약을 매듭지었다는 점을 짚으며 “깊고 정확하게 업무를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한편 덴버가 고베어를 주고 받은 그 해 드래프트 46순위 지명권으로 뽑은 가드 에릭 그린(1991년생, 191cm)은 NBA에서의 짧은 커리어를 뒤로 한 채 유럽 리그(그리스, 스페인, 터키 등)에서 뛰고 있다. 



아직은 이른, 그러나 윤곽이 보인다

@ 2017년 NBA 드래프트

보스턴 셀틱스 <-> 필라델피아 76ers


2013년 6월 12일, 빌리 킹 전 단장이 결제 버튼을 누른 브루클린 네츠와 보스턴 셀틱스의 트레이드는 많은 역사를 바꿔놨다. 케빈 가넷과 폴 피어스, 제이슨 테리 등을 위해 베테랑 5명과 드래프트 지명권을 보스턴에 퍼줬다. 당시 보스턴은 지명권으로 여러 재미를 보았는데, 2016년 지명권은 제일런 브라운(1996년생, 201cm)을 낳았고, 2017년 지명권은 트레이드를 통해 제이슨 테이텀(1998년생, 203cm)으로 연결됐다.


이 이야기를 더 해보자. 


보스턴은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필라델피아로 보내고, 3순위 지명권과 미래의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 그 3순위 지명권의 주인공이 듀크대 출신의 테이텀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지만, 테이텀은 겨우 2시즌만에 팀에서는 없어선 안 될 전력으로 올라섰다. 여러 NBA 베테랑들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필라델피아는 1순위 지명권으로 마켈 펄츠(1998년생, 193cm)를 지명하며 리빌딩 프로세스의 정점을 찍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행보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깨 부상으로 한 시즌을 꼬박 날리고 말았으며, 2018-2019시즌에도 자신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결국 시즌 중 트레이드 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펄츠는 이제 겨우 2년차이기에 올랜도 매직에서 반등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단지 출발이 늦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뒤집기 위해서는 보다 건강하고 자신있는 경기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편 보스턴은 이때 받은 지명권으로 부록으로 곁들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부터 카이리 어빙을 영입했다. 


http://sports.news.naver.com/nba/news/read.nhn?oid=430&aid=0000000748


흥미로운 기사네요 ,,, 역시 손대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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