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 경기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최소한 어제 경기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전체적으로 팀이 정돈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부분입니다.
압박, 패스, 침투, 돌파 등 모든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 확실한 목적과 규칙을 가지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한국선수들은 볼터치가 투박하고 기본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절대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낙인 찍혔었던 패싱게임이 가능했던 부분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벤투 감독이 말하길, "맡은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이번에는 큰 틀을 바꾸기 보다는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부분전술에 집중할 것이다" 라고 했고, 선수들 역시 "세세한 부분까지 말씀하신다" 라고 말했죠.
그동안의 한국축구는 어떤 약속된 플랜이 없다 보니 공격 빌드업시엔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들이받는 느낌이었고, 수비에서는 상대 압박이 들어오면 허둥지둥 대다가 앞으로 뻥 or 백패스만 했었고, 심지어 그것조차도 실수로 짤려서 역습을 얻어맞는 모습이었죠.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볼처리에 자신감이나 여유를 갖기 힘들었고, 이게 장기화 되면서 "선수들 기본기가 떨어진다." , "한국 축구는 감독이 아닌 선수 수준이 문제다" 같은 말들도 나왔었죠.
그런데 어제 경기에서는 똑같은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압박 속에서 수비진까리 패스로 탈압박 나오는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도 아시아 팀이 아닌 코스타리카 정도의 팀을 상대로요.
선수들 기본기나 패싱이 며칠 사이 갑자기 좋아졌을리는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확실한 플랜의 유무겠죠.
확실한 플랜을 통해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상대의 공간은 창출하고, 우리의 빈공간은 매울 수 있었고, 따라서 안정적인 볼처리도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번 경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 할 필요는 없습니다.
벤투감독 체제에서 이제 겨우 한 경기 치뤘을 뿐이고, 앞으로 좋지 않은 경기도 분명 있을겁니다.
당장 화요일 칠레전에서 5-0으로 대패 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마다 냄비들은 또 열심히 끓어오르겠죠.
하지만 최소한의 긍정적인 부분은 앞으로 한국축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에 대한 그림이 어느정도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오름세뿐만 아니라 내림세도 있겠지만, 그동안 한국축구에 이 정도로 각 분야마다 세분화 된 전문성을 갖춘 코치진이 맡았던 적은 거의 없었던 만큼, 한 번 믿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