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코엘류감독의 전철이 되지않길 진심으로 빕니다.
그시기가 박항서 감독대행, 김호곤 올림픽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대행(브라질전 한경기 지휘),코엘류로 이어지
는 시기였는데,
2002년 월드컵이후 감독도 아니고 감독대행이라는 요상한 자리에.. 하는거봐서 감독 시켜줄까?하는
양아치짓에 희생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더구나 당시에 히딩크시절 1년 6개월의 선수차출과 합숙이라는 희생을 강요당한 프로팀들과, 히딩크 신드롬에
뒷방 늙은이 취급받던 국내 지도자들이 정말 벼르고 있을때, 월드컵 한달여 만에 치룬 아시안게임에 감독도
아닌 감독대행으로서 이동국 군대가라 슛으로 유명한 이영표의 실축으로 바로 경질되자. 축협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사자후를 한번 날리고 축협에 미운털 박혀서, 쭈욱 몸담고 있던 대표팀 코치직도 물러
나고 프로팀 전전하는 야인이 되셨었죠.
국대랑 프로팀이 시스템도 스타일도 다를텐데, 히딩크의 유산을 써볼일도 없다가 베트남에 가서 꽃을 피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긴합니다.
그 후에 김호로곤은 홍명보와 황선홍의 은퇴경기로 브라질 정예멤버에 선재골을 넣고 앞서고 있을때, 잘하는
선수를 죄다 후반 20분에 무더기 교체해줌으로 브라질 자갈로 감독의 은퇴경기이자 100번째 승리를 축하해주
려는 접대축구를 보여줍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못만난 한을 풀 수있는 경기를 교체쇼로 말아먹었던 빡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후에 부임한 코엘류감독은 박항서감독대행의 고충을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라 불리던 4-3-2-1 을 선호하고, 전통적으로 피지컬 좋은 선수를 전면에 배치하던 예전과 달리
원톱에 안정환과 2선에 이천수, 박지성등을 배치해 기술축구에 대한 시도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전은 지금도 화자될 정도로 졌잘싸의 기원쯤 되겠네요.
자율과 방임이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고 다혈질의 히딩크옹과는 정반대의 신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코엘류감독에겐 대외적으로는 박항서 대행때와 비슷하게 k리그 구단들의 피파 차출규정 준수요구로 인해
차출거부로 인한 소집훈련의 태부족과, 내 적으로는 실질적 감독 노릇을 하려했던 박성화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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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모든 관심은 김호로곤의 올림픽호에만 집중됐었고, 오만 쇼크 당시에 축협 기술위원이 단 한명도 동행
하지 않기도 했었고, 특히 포르투갈어가 그리 대중적인 언어가 아니여서 의사소통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질 후 밝힌 "14개월 동안 실제 훈련장에서 훈련한 시간이 72시간에 불과하다"는 증언이 생각나네요.
저도 뭐 벤투감독의 전적은 믿음직 스럽지 못합니다만, 실패한 과거가 미래의 실패까지 규정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저 축구팬으로서 축협이 또 코엘류때처럼 허수아비 세워놓고 장난질 못하게 지켜보고, 미우나 고우나 우리
감독이 제대로 된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볼 수있게 응원하는게 좋치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