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골로 캉테의 선수가 아닌 일상인으로의 모습에 대한
주위 사람들에 증언
프랑스 어느 누구도 캉테보다 잔디 위에서 더 많이 뛰지 않았고
그보다 많은 공을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우리 은골로 캉테의 일화
깨끗한 건물들이 연속해서 자리 잡고 푸른잎들이 만연한
캉테가 자란 도시는
Rueil-Malmaison의 조용한 지역입니다.
십대때는 축구선수들의 체격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우린 캉테의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캉테는 변하지 않았어요 월드컵을 며칠 앞두고도
우리는 그가 시장으로 가서 장을 보는걸 봤습니다.
캉테의 가족은 아직도 그 조용한 도시에서 살고 있어요
지역 주민은 캉테가 과묵한 사람이며 마치 발에
풍선이 달린것 같다고 말한다.
한 사람은 캉테와의 재밌는 추억을 회상한다.
"캉테가 유소년 시절 빛난 JS수레스의 관중석에서
아이들은 은골로 바르샤!! 은골로 바르샤!!
라고 구호를 외치곤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아이의 꿈인 바르샤....
1991년 파리에서 태어난 캉테는
말리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캉테에게 18세기 전설적인 왕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 가난한 소년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은골로는 4명의 형제,4명의 자매
그리고 어머니,가정부와 함께 자랐습니다.
10살때 스타드 모르키 드 수레스 지방에 도착한
캉테는 원기왕성했고 영혼에 부딪히며
다른 사람보다 키가 작지만
뛰는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봉사를 하는 소방관 같으며 위반을 막습니다.
캉테는 팀원들이 보호를 하는 마스코트가 되었고
코치진들에게 공에 대한 치하를 받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자상하며 항상 불평하지 않고
시간도 잘 맞추고 작은 아기 같은 몸을 가진
캉테를 어찌 안 사랑할수 있겠어요???
캉테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대학에 들어갈때도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코치들은 캉테의 유소년 시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캉테는 15~16살때 너무 작고 말랐다는 이유로
클레어퐁텐,렌,소쇼 클럽측에 입단이 거부되었습니다.
캉테는 보이지 않았고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죠"
캉테는 안좋은 소식을 들었지만
화나지 않았고
단지"준비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캉테는 절망하지 않았고 계속 훈련하며 노력했고
휴일동안에도 실력이 더 늘면서 제안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불로뉴 슈머라는 아마추어 클럽이 캉테를 영입하게 됩니다.
물론 바르샤는 아니었지만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캉테는
BTS회계부서직을 통과했다.
그는 점차 발전하고 있었고
그는 동료들을 관찰하고 감독에게는 복종하며
항상 기준에 부합하려고 노력하였다.
캉테의 팀원들은 바보 같은 소년이
배낭을 맨채로 스쿠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는걸
보곤했다. 팀원들은 이런 캉테를 자신의 차에 태운채
경기장에 데려다 주곤 하였다.
한달의 끝과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캉테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캉테는 명예롭게도 팀에서
중앙의 회복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공격과 수비를 오가면서 상대의 공을 뺏고
패스를 하는 캉테는
시지푸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끊임없이
돌을 절벽에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는 전설 속 인물)
이면서 국대 감독 데샹의 플레이 스타일과 비슷했다.
이 발에 풍선이 달린거 같은 선수는
지단 같지는 않지만 필수적인 톱니바퀴 같은 존재였다.
최근 캉테의 형 니아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캉테는 22살에 프로선수가 되었고 그 이후로
중고차량을 샀고 배낭을 포기 하지 않은채로
항상 달린다. 이런 캐릭터를 포기 하지 않는건
그의 종교 때문인걸까??
캉테는 평소에도 강렬한 노력을 하면서
라마단 기간 중에는 금식을 한다.
캉테의 예전 팀원 중 한명은
캉테가 식사 시간 자기 옆에 앉아
기분이 끔찍하게 보인채로
"제발 아무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회고한다.
당시 코치는 충격을 받은 캉테를 살리려고 했고
결국 당시 캉테 소속 클럽 캉은 승격이 가능했다.
캉테는 다음 클럽으로 이적을 하게 된다.
캉은 바르샤? 레스터?도 아닌
기록도 없는 알려지지 않은 팀이었지만
왕실로 가는 급조된 도로였다.
2006년 놀라운팀이 EPL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활기차고 빠른 캉테는 눈이 부셨다.
당시 감독 라니에리는
"캉테는 중앙에서 집중하고 언젠가 득점할것"
이라며 웃곤했다.
첼시는 캉테를 데려갔고
막대한 제안이 약속되어졌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선수가 된 캉테는
페라리를 무시하고 미니쿠페를 타고 다닌다.
자극 받은 팬들은 SNS에 캉테에 대한 재밌는 애기를 하는데
그의 차의 속도에 관련해서 칭찬을 하곤 한다.
"캉테는 전기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자기가 전기를 생산하는것 같아요"
캉테의 모습은 계속 되어서 반복되고 있다.
겸손,용감,겸손한...
캉테는 살아 있는 미덕의 가치를 보이는 광고처럼 보인다.
근데 그는 마치 축구에서 치트키를 쓰는것 같다.
의심과 고통
캉테의 형 니아마는 최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런 슬픈 감정을 홀로된 캉테는 공유하지 않았다.
아마 축구가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것 같다.
실용주의자 데샹은 유로 2016 결승전 당시
캉테 없이도 팀이 이길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팀은 침몰했고
이걸 보면 NG(캉테의 프랑스내 별명)과
이번에 캉테가 함께하게 되어
프랑스는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
추천 한번씩 부탁드려요!
http://www.parismatch.com/Actu/Sport/N-Golo-Kante-l-infatigable-1564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