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의외로 선동열입니다.
모처에서 신인왕 관련으로 손해본 사람 이야기가 나와서 그럼 MVP 수상에서 손해본 선수는 누가 있을까 찾아보기 위해 스탯티즈에 들어가 WAR/144 기준으로 정렬을 해봤더니 그분이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1985 데뷔 시즌에 WAR 6.4로 전체 3위였고 규정이닝도 넘겼으며, ERA+ 도 205로 팀의 다음 영결후보인 양현종의 커리어 하이인 202보다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신인왕은 .304 / .365 / .477 / +wRC 142.7 / WAR144 4.76 / 12홈런을 친 친구 이순철의 품으로.
조정스탯으로 보면 역대급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역대 신인왕 논란에서 1985 시즌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당해 이순철의 타석이 411 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팀 에이스는 팔을 갈아야 제맛이었던 시절이라 규정이닝 턱걸이(111이닝)를 한 선수는 비율스탯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저 그런 취급이었습니다. 사실 그저 그런 취급까지는 아니었고 뛰어난 성적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신인 내야수가 2019 이정후급 비율 스탯에 두자릿수 홈런을 찍으면 스포트라이트가 거기로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86년은 ... MVP 를 못 받았다면 기자단이 소속된 신문사에 불이 날만한 성적이었으나 다행히 수상해서 무난히 넘어갑니다.
1987년에는 규정이닝의 1.5배가 넘게 나오고, ERA+ 392를 찍었으며 팀이 우승했지만 당시는 (지금도 그렇지만) 주로 타자쪽 타이틀 홀더에 MVP를 몰아주는 분위기라 밀렸습니다. 에이스는 팔을 갈아야 제맛이었는데 이닝도 162이닝 수준이었고, 투승타타가 진리인 시절이어서 골든 글러브조차 수상하지 못했죠.
선동열로서도 좀 억울했던게 이 해에 해태가 55승 하고 우승했는데, 선동열의 출장이 31회였습니다. 이길 것 같으면 나가고 또나가고 막나가던 시절. 이 해부터 3년동안 김응룡 감독은 선동열의 이닝을 길게 가져가기 보다는 막 써먹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87년 31회 출장 162이닝, 88년 31회 출장 178이닝, 89년 36경기 출장 169이닝을 찍었죠. 그리고 한국시리즈를 89년까지 4년 연속으로 싹쓸어 갑니다. 그래도 88년엔 GG만, 89년엔 GG+MVP를 받아가죠.
91년은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인 장종훈이 히트상품이 된 해입니다. 이 해에 선동열도 ERA+ 256을 찍고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 우승까지 하고 WAR도 두자리수를 찍었으나 스토리나, 화제성이나,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아름다운 비율스탯+홈런개수까지 뭘로 봐도 그 해는 장종훈의 해였습니다.
1992년은 비오는날 던지다 건초염 생겨서 접었던 그 시즌입니다.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다가 중무리로 정착하는 계기가 되죠. 그리고 장종훈은 이 해에도 MVP를 받습니다.
1993은 역대 KBO의 모든 투수를 통털어 정규이닝 조정방어율 1위 시즌입니다. 규정이닝 0점대 방어율 덕분에 GG까지는 받았지만, 손승락이 투수 GG를 받을 때까지 불펜 투수는 20년동안 그 임창용과 오승환조차 골든 글러브 수상이 없던 리그입니다. MVP는 언감생심.
1994년에 선발로 돌아가려다가 커리어 로우를 찍고 다시 불펜으로 돌아갑니다. 커리어 로우가 ERA 2.73에 ERA+ 141로 어지간한 투수들 커리어 하이라는 건 함정.
1995년에 불펜 투수로는 앞으로 불세출일 48경기 109이닝 0.49 조정방어율 763을 찍고 정규이닝을 못 채운 불펜투수가 리그 WAR 1위를 찍는 만화같은 성적을 내고 일본으로 떠납니다. 17이닝 더 던져 규정이닝을 채웠으면 그 해에 골든 글러브는 확실히 받았겠지만 전업 불펜이 규정이닝 근처까지 간다는 게 넌센스에 이미 그 때 쯤엔 기록에 연연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실적을 쌓았었으니까요.
요약하면 11시즌을 던져 투타합산 전체 WAR 1위를 8번 하고, 데뷔 시즌에 WAR 3위를 했으며, 커리어 로우가 ERA+ 141인 선수지만 신인상은 없고 MVP는 3번이었던 선수였습니다. 최고투수상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 GG를 6번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상 실적에서 좀 아쉽긴 하죠.
87, 88년은 팀 우승에 더불어 압도적인 WAR를 찍었지만 결국 MVP는 받지 못했고 95년은 리그 WAR 1위였으나 GG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모처에서 신인왕 관련으로 손해본 사람 이야기가 나와서 그럼 MVP 수상에서 손해본 선수는 누가 있을까 찾아보기 위해 스탯티즈에 들어가 WAR/144 기준으로 정렬을 해봤더니 그분이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1985 데뷔 시즌에 WAR 6.4로 전체 3위였고 규정이닝도 넘겼으며, ERA+ 도 205로 팀의 다음 영결후보인 양현종의 커리어 하이인 202보다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신인왕은 .304 / .365 / .477 / +wRC 142.7 / WAR144 4.76 / 12홈런을 친 친구 이순철의 품으로.
조정스탯으로 보면 역대급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역대 신인왕 논란에서 1985 시즌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당해 이순철의 타석이 411 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팀 에이스는 팔을 갈아야 제맛이었던 시절이라 규정이닝 턱걸이(111이닝)를 한 선수는 비율스탯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저 그런 취급이었습니다. 사실 그저 그런 취급까지는 아니었고 뛰어난 성적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신인 내야수가 2019 이정후급 비율 스탯에 두자릿수 홈런을 찍으면 스포트라이트가 거기로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86년은 ... MVP 를 못 받았다면 기자단이 소속된 신문사에 불이 날만한 성적이었으나 다행히 수상해서 무난히 넘어갑니다.
1987년에는 규정이닝의 1.5배가 넘게 나오고, ERA+ 392를 찍었으며 팀이 우승했지만 당시는 (지금도 그렇지만) 주로 타자쪽 타이틀 홀더에 MVP를 몰아주는 분위기라 밀렸습니다. 에이스는 팔을 갈아야 제맛이었는데 이닝도 162이닝 수준이었고, 투승타타가 진리인 시절이어서 골든 글러브조차 수상하지 못했죠.
선동열로서도 좀 억울했던게 이 해에 해태가 55승 하고 우승했는데, 선동열의 출장이 31회였습니다. 이길 것 같으면 나가고 또나가고 막나가던 시절. 이 해부터 3년동안 김응룡 감독은 선동열의 이닝을 길게 가져가기 보다는 막 써먹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87년 31회 출장 162이닝, 88년 31회 출장 178이닝, 89년 36경기 출장 169이닝을 찍었죠. 그리고 한국시리즈를 89년까지 4년 연속으로 싹쓸어 갑니다. 그래도 88년엔 GG만, 89년엔 GG+MVP를 받아가죠.
91년은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인 장종훈이 히트상품이 된 해입니다. 이 해에 선동열도 ERA+ 256을 찍고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 우승까지 하고 WAR도 두자리수를 찍었으나 스토리나, 화제성이나,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아름다운 비율스탯+홈런개수까지 뭘로 봐도 그 해는 장종훈의 해였습니다.
1992년은 비오는날 던지다 건초염 생겨서 접었던 그 시즌입니다.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다가 중무리로 정착하는 계기가 되죠. 그리고 장종훈은 이 해에도 MVP를 받습니다.
1993은 역대 KBO의 모든 투수를 통털어 정규이닝 조정방어율 1위 시즌입니다. 규정이닝 0점대 방어율 덕분에 GG까지는 받았지만, 손승락이 투수 GG를 받을 때까지 불펜 투수는 20년동안 그 임창용과 오승환조차 골든 글러브 수상이 없던 리그입니다. MVP는 언감생심.
1994년에 선발로 돌아가려다가 커리어 로우를 찍고 다시 불펜으로 돌아갑니다. 커리어 로우가 ERA 2.73에 ERA+ 141로 어지간한 투수들 커리어 하이라는 건 함정.
1995년에 불펜 투수로는 앞으로 불세출일 48경기 109이닝 0.49 조정방어율 763을 찍고 정규이닝을 못 채운 불펜투수가 리그 WAR 1위를 찍는 만화같은 성적을 내고 일본으로 떠납니다. 17이닝 더 던져 규정이닝을 채웠으면 그 해에 골든 글러브는 확실히 받았겠지만 전업 불펜이 규정이닝 근처까지 간다는 게 넌센스에 이미 그 때 쯤엔 기록에 연연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실적을 쌓았었으니까요.
요약하면 11시즌을 던져 투타합산 전체 WAR 1위를 8번 하고, 데뷔 시즌에 WAR 3위를 했으며, 커리어 로우가 ERA+ 141인 선수지만 신인상은 없고 MVP는 3번이었던 선수였습니다. 최고투수상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 GG를 6번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상 실적에서 좀 아쉽긴 하죠.
87, 88년은 팀 우승에 더불어 압도적인 WAR를 찍었지만 결국 MVP는 받지 못했고 95년은 리그 WAR 1위였으나 GG을 받지 못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