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한달 앞둔 지금 스포츠 키다가 연재하는
리네커는 잉글랜드 국대 소속으로 2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었다
게리 리네커는 당신도 알다시피 축구계에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쇼 진행자로 변신했구요
트위터 팔로워 700만도 거느린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레전드입니다
물론 리네커는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침을 삼키면 된다"
라는 말로도 지금도 회자되는데요 리네커는 후술하겠지만 그라운드에서
신사 그 자체였던 선수였습니다. 근데 여러분들 리네커에 대해 이 사실은
잘 모르실걸요? 리네커는 사실 전문적으로 축구를 거의 배워보지 않았던
선수였습니다 초반에는 축구보다는 영국의 국기인 크리켓에 더 열성적인
사람 이었죠 하지만 이런 사람이 a매치 80경기 48골을 기록한 삼사자 레전드로 등극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루니 찰튼경 다음으로 세번째로 많은 골수입니다.앞서 말했듯이 리네커는 축구를 16살이라는 좀 늦은 나이에 시작했습니다.레스터 시티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시작하죠
하지만 그는 늦은 만큼 남들과 태도도 달랐습니다.
그의 학창시절 선생님은 리네커 생기부에"축구에 극도로 집중하는 아이 그렇게 살수 있는 아이는 없을것"이라 썼고 이 글에서 그의 태도가 증명되죠
리네커는 급성장 했고 레스터 시티를 승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뒤
에버튼으로 떠납니다 에버튼 시절에는 38골이나 넣으며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뒤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죠 거기서 3년을 머물고
마지막에 토트넘으로 가서 마찬가지로 3년을 보냅니다.
리네커는 어딜가든 골은 넣긴 했지만 경기를 지배했던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대 리네커라면 말이 달라지긴 하죠
그는 국대 유니폼만 입었다면 정말 스코어링 능력이 엄청났었습니다
웸블리에서 자신의 국대 커리어골 중 삼분의 일을 넣을 만큼 웸블리의
황제였고 그는 월드컵에서는 더욱 빛났는데요
비결은 결국
리네커는 신장이 작은편이었고 연약한 피지컬을 지녔었지만 이를 강점으로
살리려 노력했고 그가 경기 중 항상 보인 진중한 태도가 그를 커리어 내내
빛나게 했다는것입니다
그는 빠른 포처 유형이었고 마크맨을 따돌리는데 능숙했던 선수 였습니다
발이나 머리 어디든으로 골을 결정짓는 피니싱 능력도 훌륭했던 선수 였죠
월드컵에서 빛났던 리네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당시 조별예선에서 잉글랜드는
1무 1패로 부진했고 마지막 경기 폴란드에게 3골이상을 넣어야
16강 진출이 가능했었습니다
근데...당시 국대 초짜에 불과했던 리네커가 월드컵 첫 선발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며 사고를 치버리고 말죠
그에 그치지 않고 16강 무대에서도 파라과이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합니다
결국 8강에서 만나게 된건 아르헨티나였고 이 경기는 지금도 마라도나의
신의손 사건,엄청난 드리블 골로도 회자 되는 경기인데 이당시에 리네커는
만회골을 넣었습니다. 당시 이 경기는 포클랜드 전쟁으로 두 나라 관계가
좋지 않아 더욱 주목 받던 경기 였기도 했죠.그래도 아쉽게 탈락하긴 했지만
리네커는 마라도나를 제치고 골든 부츠를 수상하게 됩니다.
다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아일랜드를 상대로 골을 넣었을 뿐더러
8강전에는 카메룬을 상대로 동점골 연장전 역전골을 넣었고 팀을 4강으로
이끄는 주역이 됩니다.문제는 4강 상대가 서독 이었고 80분에 리네커는
극적인 동점골을 넣지만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하고 말죠
하지만 이 경기후 리네커는 지금도 기억되는 역대급 명언을 남기게 됩니다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always win."
"축구란 간단하다. 22명이 공을 쫓아 90분 동안 달리다가, 항상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다."
크 명언 제조기
후일담으로 잉글랜드는 3-4위 결정전에도 패하며
4위로 월드컵을 마치게 됩니다
우승국은 서독 대회 mvp는 바조 득점왕은 스킬라치였습니다
리네커는 월드컵에서 무려 10골이나 기록 했으며 이는
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허스트경의 6골보다
많은 기록입니다.리네커는 27년째 4강이상을 못가는 삼사자 군단을
우승에 근접시켰던 인물 이었죠
비록 1992년 은퇴하며 더 이상 월드컵 무대에서 그를 볼수 없었지만
잉글랜드 축구선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1990년에는 페어플레이상을 받으며 커리어를 화려하게 마무리합니다
이는 그가 15년동안 카드 한장 받은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왜 그가 그라운드의 신사로 불리는지 아시겠죠?
지금은
출처 꺼무위키
클럽 466경기 243골
국가대표 80경기 48골
잉글랜드 84-85시즌 득점왕 (레스터 시티)
잉글랜드 85-86시즌 득점왕 (에버턴)
85-86 잉글랜드 선수협 선정 최우수선수
85-86 잉글랜드 최우수선수
1985 FA 채리티 실드(에버턴)
1986년 월드컵 득점왕
1989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FC 바르셀로나)
잉글랜드 89-90 시즌 득점왕 (토트넘 핫스퍼)
1990 FIFA 페어 플레이 상
1991 FA컵 (토트넘 핫스퍼)
91-92 잉글랜드 최우수선수
1992년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
그라운드 똥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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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sportskeeda.com/football/50-greatest-players-fifa-world-cup-history-gary-line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