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최고의 축구 슈퍼스타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요일 오후에 Ch.4를 틀고 세리에 A를 보는것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초기 몇년간,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슈퍼스타들이 몰려드는 재능의 온상이었다.
최고의 재능과 같이, 이탈리아 팀들은 최고의 kit 또한 갖추고 있었다. (피오렌티나의 바이올렛, 파르마의 유명한 노란색과
파란색, 로마의 노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삼프도리아의 하양 빨강 검정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파란색 셔츠 등)
올해는 풋볼 이탈리아(영국의 세리에 A 중계 채널)가 탄생한지 25년이 되는 해이고,
BT Sport(영국의 스포츠 언론, 풋볼 이탈리아와 CEO가 같다)는 이탈리아의 황금기를 기릴 "Gollazzo"라는 영화를 개봉한다.
자, 우리는 이제 세리에 A가 언제 세계를 지배했는지, 그리고 이 모든것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992년 여름, 토트넘을 떠나 라치오에 입단한 폴 개스코인
인테르는 1997년, 바르샤의 최고 플레이어를 팔도록 만들었다.
1992년, 영국 축구는 프리미어 리그의 탄생과 함께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동시에, 삼사자 군단의 상징인 폴 개스코인의 라치오 이적이 완료되었고ㅡ그것으로부터, 풋볼 이탈리아는 시작했다.
풋볼 이탈리아가 세리에 A의 중계권을 딴 것은 Gazza(폴 개스코인의 별칭)가 로마의 거인들에게 이적한 것에 기인한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부상당해 들어오지 못한 폴 개스코인 없이, 삼프도리아와 라치오는 3-3의 명경기를 연출했고
중계권료는 즉시 결실을 맺었다.
89-99년 사이 유럽대회 결승전에 진출한 이탈리아의 팀들
90년대 세리에의 끝내주는 스트라이커였던 에르난 크레스포
1995년 밀란에서 아프리카 최초 발롱도르 수상자가 된 조지 웨아
피오렌티나가 강등된 뒤에도 남아있었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1989년 부터 1999년까지, 모든 유로피언 컵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이탈리아 팀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에파 컵에 더욱 강했으며 11년간 8번의 우승과 6번의 준우승 팀을 배출했다.
그리고 또한 세번의 Cup Winners' Cup에서 우승했다.
더욱이 11년간 8번의 발롱도르 수상자는 세리에 A에서 배출해낸 것이다.
90년대 유벤투스의 간판이었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재능의 깊이가 엄청났던 최고의 선수들은 최고의 팀에서 그저 뛰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1984년부터 2000년까지 5개의 이탈리아 팀이 이적료 월드 레코드를 경신했다.
사용된 돈의 액수를 고려했을 때, 프리미어리그는 2000년에 라치오가 에르난 크레스포를 영입하기 위해 지불한
3500만 파운드를 따라잡는데 11년이 더 걸렸다.
이탈리아 축구는 전에 보지 못한 수준의 레벨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인테르가 바르샤를 위협해 호돈신을 팔게 하고,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3천만 파운드 바이아웃을 박살내며 유럽 축구가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던 시기였다.
피오렌티나는 풋볼 이탈리아의 첫 시즌이 마감될 때 2부리그로 강등되었지만, 세계적인 빅클럽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붙잡을 수 있었다.
부유한 구단주들이 역대 가장 까다로운 리그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멈추지 않는 가운데,
이탈리아 축구는 '언터쳐블'이었다.
그러나, 몇년 뒤 모든 것이 끔찍하게 무너졌다.
베로나의 스쿠데토가 있었던 1984-85 시즌, 아마도 심판들은 순수히 무작위로 경기에 배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관계자들이 구체적으로 선정되었고, 이것은 결국 이탈리아 축구를 침몰시킨 칼시오폴리 스캔들로 이어졌다.
전화 도청을 통해 클럽과 심판들 사이의 관계망과, 거대 클럽들이 좋은 경기 날짜를 골라가는 것들이 드러났고
그들은 승부 조작 혐의를 받았다.
그 결과로 이전 두 시즌의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승점 9점이 차감당한 채 세리에 B로 밀려난 유벤투스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는 파국을 맞이했다.
한편 AC 밀란, 피오렌티나 그리고 라치오 등도 이 스캔들과 관련 승점을 차감당했다.
2006년 스캔들과 함께 파국을 맞이한 이탈리아 축구계
인테르가 라이벌 팀들의 최고 선수들을 뽑아가며 큰 승리자가 되었지만, 이탈리아 축구라는 요새를 지키기 위한
2010년 인테르의 트레블에도 불구하고, 불과 6년 후, 세리에 A는 챔피언스 리그의 자리를 잃었다.
스캔들 후 10년, 준우승팀 없이, 두번의 우승팀을 배출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유벤투스는 두번의 결승전에 올랐고 세리에 A를 약간 상승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파르마, 삼프도리아, 나폴리 그리고 토리노가 유럽대회의 결승전에 올랐던 지난 시절에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http://www.thesun.co.uk/sport/football/5937682/football-italia-calciopoli-scandal-serie-a-golden-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