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에 뛰었던 선수들이다.
지난 칼럼과 마친가지로 1980년대 이전 선수들은 본적이 없어서 제외했으며
토티, 피를로, 부폰과 같이 은퇴하지 않은 선수들 역시 제외했다.
네스타, 세브첸코, 굴리트, 졸라 등 훌륭한 선수들은 훌륭한 선수들이지만
나의 짧은 소견으론 그들은 '인간계를 초월'한 선수들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다시 세리에A에도 과거와 같은 신급 선수들이 오길 바란다.
1. '일 페노메노(경이로운 존재)' 호나우도 (Ronaldo)
이탈리아 사람들은 1997년, 20세의 호나우도가 인테르에 도착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부상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는 펠레나 마라도나와 견줄만큼의 위대한 공격수였다.
우아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183cm의 시속 36km인 그를 붙잡을 선수는 거의 없었다.
그는 상대 수비를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았으며, 수비들에게는 공포의 존재였다.
크루제이루 47경기 44골, PSV 58경기 54골, 바르셀로나 49경기 47골, 인테르 68경기 49골.
발롱도르 2회, FIFA올해의 선수상 3회를 수상하며 그야말로 '득점기계'였다.
그러나 그는 고질적인 무릎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레알마드리드에서 5년간 활약하고 AC밀란으로 입단해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여전히 큰 기대감을 주는 선수였으나, 더이상 '페노메노'는 아니었다.
만약 그가 유리몸이 아니었다면, 브라질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는 펠레가 아니었을 것이다.
2. '바티골' 가브리엘 오마르 바티스투타 (Gabriel Omar Batistuta)
1990년대 매주 주말에 펼쳐지던 경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바티스투타가 경기장에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몇 만의 팬들이 "바티 바티 바티 바티 바티고오오오오오오올!!!"을 외쳤다.
바티스투타는 배구와 농구를 하다가 16세가 되어서 축구를 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4년간 지낸후,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그는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으며, 비올라(피오렌티나 애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결코 피오렌티나를 배신하지 않았으며, 세리에B로 강등당했을 떄도 떠나지 않았다.
피렌체 9시즌동안 152골을 넣었으며, 가장 완벽한 공격수로도 뽑힌다.
시속 100km의 슛팅과 득점의 20%를 차지하는 헤딩골은 골키퍼들에게 공포였다.
그러나 31세가 된 그는, 스쿠데토를 들기 위해 AS로마로 이적했고 우승했다.
피렌체를 상대로 득점했을때,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젊은 시절 우승을 하는 팀에서 뛰었다면,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팀을 위해서 헌신했다.
3. '지주' 지네디 지단 (Zinedine Zidane)
그는 보르도에서 뛸때부터 보르도 삼각편대를 형성하며 강렬한 인상을 보였다.
유벤투스는 중원운영을 위해 1996년에 영입했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고
축구 관계자들은 잘못된 영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토리노에서 적응기를 맞친 후,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리그 우승 2회, UEFA챔피언스리그 2회연속 결승 진출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1998년 프랑스가 월드컵을 우승하면서 발롱도르와 FIFA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한다.
2001년 레알마드리드가 그의 이적료로 지불한 75M은 당시 가장 비싼 이적료였다.
유벤투스에서의 지단은 두 가지로 기억된다.
필드 위에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베로니카 스타일'의 드리블링과
에드가 다비즈와 함께 했던 공영주차장에서의 비밀축구시합이다.
동네 이민자들이나 아이들과 축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축구는 모두의 것이며, 모두를 위한 것이다.
라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특징이다.
4. '체코의 격정' 파벨 네드베드 (Pavel Nedved)
네드베드는 누구보다 빨리 훈련장에 도착했고, 가장 마지막에 훈련장을 떠났다.
집에서도 항상 연습했고, 심지어 휴가때도 연습을 했다.
이러한 철저함에 열정과 투쟁으로 뛰었다.
그의 태클 성공률은 거의 100%에 육박했다.
네드베드는 유로96에서 체코를 준우승으로 이끈 뒤,
즈네덱 'The Attacker' 제만의 도움으로 라치오로 이적하게 되었다.
당시 라치오는 전혀 우승을 할 만한 전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우승 1회, 코파이탈리아 우승 2회,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 2회를 달성한다.
그러나 2002년, 라치오 경영진과 불화가 원인이 되어 유벤투스로 떠나게 된다.
그는 다비즈, 콘테, 카모라네시와 각종 대회 우승과 발롱도르를 차지했으나
단 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따낼 수 없었다.
2003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경고누적으로 결승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그대로 쓰러져 눈물을 쏟아냈다.
결국 유벤투스는 결승에서 AC밀란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네드베드는 유벤투스 팬들에게는 전설이나 다름없다.
유벤투스가 '칼치오 폴리'로 세리에B로 강등당했을 때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은퇴 후, 유벤투스 운영이사를 거쳐 현재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5. '베를린 장벽' 파비오 칸나바로 (Fabio Cannavaro)
나폴리에서 태어난 그는 동생과 함께 나폴리 유스팀에 들어갔다.
그는 나폴리 1군에서 훈련하면서 치로 페라라와 같은 위대한 선수들에게 수비 노하우를 배웠다.
1군 첫 훈련때, 그가 마크하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 였다.
파비오가 마라도나에게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태클을 하자 마라도나는 그에게 말했다.
"훌륭하다 꼬마야. 파비오, 기억해라 너는 수비수다.
너는 상대를 위협해야지 너가 위협당해서는 안돼. 훌륭해 아주 잘하고 있어"
22세에 나폴리의 재정문제로 파르마에 팔려가게 되었고
부폰, 튀랑과 함께 최강의 수비진을 구성하게 되었다.
지방 군소클럽임에도 불구하고 UEFA컵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수퍼컵 우승 1회를 기록한다.
인테르로 이적해서 힘든시기를 보냈으나
유벤투스에서 페라라, 튀랑, 부폰과 다시 만나며 리그 우승 2회를 달성했다.
또한 2006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발롱도르와 FIFA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한다.
칼치오폴리가 발생하자 그는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으며
살가도, 라모스, 카를로스와 꿈같은 수비라인을 형성하며 두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6. '사자왕' 조지 웨아 (George Weah)
1990년대 초반, AC밀란은 반 바스텐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대안은 프랑스에서 리그 우승1회, 컵 우승 2회, 199경기 79골을 넣은 29세의 조지 웨아였다.
이상적인 피지컬, 강력한 헤딩과 슈팅, 빠른 스피드와 함께 필드 전체에서 능숙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1995년 바조, 사비체비치와 환상적인 공격라인을 구성하며 스쿠데토를 차지했으며
아프리카 출신으로 최초이자 유일하게 발롱도르와 FIFA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당시 밀란 선수들은 경기가 잘 안풀리면 웨아에게 공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 사자(Leone)!!,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뭐라도 해보라고!!"
웨아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인 라이베리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지금도 라이베리아에서는 위대한 선수이자 정치적, 인도적 활동으로 널리 추앙받고 있다.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554&aid=000000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