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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라..... 퍼온글입니다.

  • 작성자: 롤링스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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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0
92년,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하던 그 해.

부산의 많은 남자 아이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야구에 미쳐 지내는 소년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축구보다 캐치볼을 더 많이 하던 동네, 나의 고향. 


토요일 4교시 수업이 끝나고 나는 집이 아닌 

20여분을 걸어 35번 버스 종점이 있던 남부민동으로 향했다.


손에 꼭 쥔 500원짜리 동전 하나. 

당시 사직구장 국민학생 입장료가 500원, 어린이 회원은 300원이었다. 

어린이 회원이었던 나에게 500원은 입장료와 버스비를 낼 수 있는 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12살 짜리가 부모님도 없이, 그렇다고 친구들과 함께도 아니고

야구 보겠다고 혼자서 버스로 1시간 거리를 간다는 게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의 나는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설렘 그 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던 것 같다. 


늘 가던 1루 내야석, 자리를 잡고 선수들 몸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 그 자체였다.

지금처럼 좌석이 세분화되지 않았던 시절, 내야지정석과 비지정석만 있던 그 시절에는

초빼이 아재들이 연간지정석처럼 이용하는 구역이 있었다. 

경기 시작도 전에 얼큰해진 아재들이 걸쭉한 욕설배틀을 하고,

종종 싸움도 벌어지는 그 곳. 나는 그 곳이 가장 좋았다. 


입장료와 버스비를 제외하면 40원 남던 나에게 야구장 먹거리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나에게 구세주 같던 분들이 바로 초빼이 아재들. 

처음에는 설마하니 어린 놈이 혼자왔을까 싶어서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3회를 넘어가면 아재들도 슬슬 내가 혼자 왔음을 눈치를 채신다. 


"마, 니 몇학년이고?"

"5학년 1반 12반인데예" 

"혼자 왔나?"

"예"

"집이 사직동이가?"

"아인데예, 송도서 왔는데예."

"우와...임마봐라..쪼깬기 겁도 없이 송도서 여가 어데라고 혼자 왔노."


호구조사 대화가 오고가고 

김응국의 안타가 터지면서 아재도 나도 벌떡일어나서 소리 지르다 다시 앉는다. 

그리고 나는 늘 하던대로 나이스 빠따~나이스 빠따~ 김민호! 목이 터져라 열심히 응원을 했다.


잠시후 컵라면을 파는 상인이 돌아다니고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간다. 

"어이~ 요봐라...요 컵라면 2개 주봐라.." 뒤에 앉은 아재의 주문이다. 

아재의 손짓에 잽싸게 달려온 상인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데 그 냄새는 잊을 수 없다. 


"하나는 요 앞에 아 주라, 어이 5학년 1반! 퍼뜩 무라."

경기 내내 그 어떤 간식도 먹지 않고 있다는 걸 아재는 알고 있었다. 

"배 골고 응원하는 거 아이다. 든든해야 응원도 하지."


같이 온 다른 아재가 한마디 거든다. 

"와, 보약도 한잔 주지." 

"미?나 이기..쪼깬한 아한테 할 소리가 그기.."

"와? 니는 저만할 때부터 무따이가.."

주변에서 폭소를 터뜨린다..


나는 일어나 꿈뻑 인사를 한다. "고맙습데이"

그 후부터는 주변 아재들이 이런 저런 간식들을 챙겨주셨다. 

비단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본인 안주 시키다가도 주변에 아이가 보이면

하나 더 사서 무심하게 툭 던져주면서 "마 무라."


술에 쩔어보이고, 험한 말, 욕설 난무했어도 아이들은 끔찍히 챙겨주셨다. 

단 돈 500원을 가지고 야구장을 가더라도 배 골고 오는 날은 없었다. 

흔히 말하는 초빼이 아재들이 모두 나의 아버지고, 삼촌들이었다. 

그 때 그 시절의 아재들이 외치던 "아주라"는 진짜배기였다. 


이슈인을 비롯한 많은 커뮤니티에서 사직구장의 "아주라" 문화가 극혐 취급당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안고 공잡은 곳으로 달려가는 몰지각한 부모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경함하고 내가 기억하는 아주라는 아재의 마음, 삼촌의 마음이었다. 

내 아이, 니 아이 할 것 없이 

야구장을 찾은 아이들을 내 조카처럼 생각했던 

조금은 거칠고, 무서웠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아재들. 

그들이 외치던 아주라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세월이 흐르고, 

온라인예매다, 지정좌석제다 뭐다 하면서 

현장 판매밖에 모르던 그 때 그 아재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잠실갈매기, 고척갈매기, 문학갈매기가 되어있지만

나도 그 때 받았던 아재들의 사랑의 반에 반이라도 아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때 그 아재들은 지금쯤 할배가 되어있을 텐데 

그 할배들에게 소주 한잔 따라드리며, 그 때 금마가 접니다. 할 수 있을까?

롯데가 잘나가는 봄이다.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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