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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슈퍼스타’ 자리에서 내려온 이종범

  • 야구
  • 조회 6438
  • 201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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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바람의 아들'로 불렸던 이종범(사진=KIA)

“타자는 이승엽, 투수는 선동열, 야구는 이종범.” 김응용 전 해태 감독이 지금도 하는 소리다. 사실이다. ‘이종범이 야구였고, 야구가 곧 이종범이었던 시대’가 실제로 존재했다. 오죽했으면 ‘이종범은 야구선수를 연기하는 야구신(神)’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런 그가 신에서 인간계로(界) 떨어진 건 1998년 6월 23일부터였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던 이종범은 그날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 출전했다. 상대 투수는 가와지리 데쓰로. 가와지리의 몸쪽 공을 타격하려던 이종범이 갑자기 쓰러졌다. 공에 오른쪽 팔꿈치를 맞은 것이다. 이종범은 순간적으로 ‘큰 부상’임을 예감했다.

 

“팔꿈치에 공이 맞았을 때 멀리 튕겨 나가면 차라리 나아요. 그럴 땐 대개 타박상으로 그칩니다. 한데 그날은 팔꿈치에서 ‘퍽’ 소리가 났는데도 공이 멀리 가지 않더라고요. 속으로 ‘아, 뼈가 부러졌구나’ 싶었습니다.”

 

예감이 맞았다. 의사는 ‘팔꿈치 뼈가 부러졌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안타까움이 컸던 까닭일까. 그의 지인들은 입을 모아 가와지리를 비난했다. 일부에선 ‘한국 선수 길들이기’ ‘계획된 빈볼’이란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이종범도 속이 상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깁스한 오른팔만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즈음이었다. 

 

가와지리가 찾아왔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를 대동한 방문이었다. 가와지리와 그의 아버지는 이종범에게 머릴 조아리며 몇 번이고 사과했다. 이종범이 되레 미안해 안절부절못할 정도의 진실한 사과였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슈퍼스타의 길만을 걸어온 이종범은 그때 처음으로 ‘타인을 용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몸을 낮추는 게 되레 자신의 격을 높이는 일임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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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코치로 부임할 때의 이종범(사진=한화)

영원히 그라운드를 누빌 것 같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도 세월 앞에선 무력했다. 2012년 새 시즌을 앞두고 이종범은 은퇴를 선언했다. 팬들은 슈퍼스타의 은퇴에 아쉬워했다. 더 큰 아쉬움은 그의 지론과는 다른 은퇴 장면이 연출됐다는 것이었다. 그의 오랜 지론은 ‘처음과 끝이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은퇴는 그가 꿈꿔왔던 ‘아름다운 은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그가 등 떠밀듯 타이거즈를 떠나는 장면은 그나 팀이나 팬들이나 그 누구도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종범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타이거즈가 이종범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타이거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굴 버린 게 아니라 더 큰 세상을 보려고 호랑이 굴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왜 그런 말도 있잖습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전 가죽도, 이름도 아닌 제 명예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팀에 더는 폐를 끼치지 않고, 절 응원해주신 분들의 가슴에 제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행동이라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이종범’이란 이름 석 자가 더는 훼손되지 않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은퇴 당시 그에게 실망과 낙담을 안겼던 그 모든 기억은 이제 머릿속에 없다. 그 공간엔 용서와 화해 그리고 타이거즈와 팬에 대한 고마움만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은퇴 후 그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모 구단 코치 영입설이었다. 은퇴한 그를 두고 항간엔 ‘모 구단이 이종범을 코치로 영입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이 구단 감독은 수석코치를 통해 이종범에게 코치 제안을 했다. 이종범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수용’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편한 길 대신 불편하고, 어려운 길을 가자’는 것이었다.

 

“KIA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한다면야 그보다 편한 길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편한 길만 쫓다 보면 영원히 ‘타이거즈 이종범’으로만 남을 거 같았습니다. 낯설고, 힘든 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지도자 이종범’의 첫 출발로 나쁘지 않다고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초심’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타이거즈가 아닌 다른 구단의 야구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특히나 그 구단의 좋은 선수들, 팬들과 함께 호흡해보는 것도 근사한 경험이라 생각했습니다.”

 

편한 길 대신 불편한 길을 선택한 그였지만, 그는 모 구단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그를 당장에라도 영입할 것 같던 모 구단이 이종범 영입설을 부정한 까닭이었다. 그 구단의 감독, 수석코치 역시 연락이 없었다. 이종범은 ‘알아서’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이때 그가 선택한 입장은 용서와 침묵 그리고 긍정이었다.

 

“지금도 당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선의만 기억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있었기에 제가 김응용 감독님을 모시고, ‘한화’라는 멋진 팀에서 코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팀 성적이 좋았다면 더 값진 기억일 텐데 그러질 못해서 한화 팬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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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흔의 노장이었던 이종범은 그해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기자가 찍은 그의 손바닥은 물집 투성이였다. 야구 현장을 떠난 지금도 그는 이때의 마음과 결심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지금도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김응용 감독이 한화 사령탑으로 취임할 때다. 김 감독은 이종범을 코치로 불렀다. 이종범은 흔쾌히 옛 스승의 부름에 응했다. 문제는 이종범의 대우였다. 과연 어떤 대우를 해줘야 ‘슈퍼스타’ 이종범의 이름값에 걸맞을지 김 감독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마침 김 감독이 코치로 부르려던 한 야구인이 ‘최고 대우’를 고집한 터라, 김 감독은 이종범의 대우를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기자는 김 감독 옆에 있었다. 그때 김 감독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김 감독은 연방 “뭘 그렇게 빨리했어”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뭐? 벌써 계약을 했어? 어떻게 계약했다고? 에이, 뭘 그렇게 빨리했어. 내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나 참, 뭘 그렇게 빨리하고 그래. 알았어.”

 

내용인즉슨 이종범은 김 감독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화 구단과 덥석 계약을 맺은 것이었다. 그것도 초임 코치들이 받는 조건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김 감독은 애제자의 계약에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한 걸 미안해하면서도 그 미안함을 역정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종범은 “현역 때나 슈퍼스타 이종범이지, 지도자로선 ‘초보 코치 이종범’이었다. 현역시절 그렇게 ‘펄펄’ 날 때도 훈련이 끝나면 가장 먼저 그라운드로 뛰어가 선배들의 장비를 정리하고 공을 주웠던 게 바로 나였다”며 “그때 그 마음처럼 코치가 됐을 때도 ‘조건’보단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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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일 레전드 매치 당시 한국 레전드 팀 대표로 나온 이종범(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이 일본 레전드 팀 대표 고쿠부 히로키(현 일본 대표팀 감독)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장면. 이종범은 '야구저변 확대'와 '야구 재능 기부'에 가장 열심히 참여 중인 야구인이기도 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2015년. 그는 한화 코치에서 물러나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야구 해설이었다. 그에게 방송은 낯선 무대였다. 은퇴 후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요청했던 방송국이 많았지만, 그는 이를 대부분 거절했다. 겉으론 “방송에 잘맞는 스타일이 아니다”는 게 이유였으나, 실제론 “팬들이 만들어준 ‘야구인 이종범’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지금은 '프로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당신이 꼭 출연해야 한다'는 제의가 들어오면 프로그램 성격을 골라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출연을 고사하고 싶다'는 게 이종범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서일까. 낯선 방송 무대였던 만큼 지난 시즌 이종점은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평도 엇갈렸다. 하지만, 방송국 사람들 가운데 ‘해설가 이종범’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그의 노력과 성실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 PD의 이야기는 이랬다.

 

“이름값만 따지자면 이종범만 한 야구인이 없을 겁니다.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죠. 그런 분들 가운데 일부는 자기 재능만 믿고, 방송 준비에 소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위원은 처음부터 달랐어요. 방송국에서 하는 ‘해설가 수업’ 때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죠.  현장 중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일 먼저 구장에 나와 가장 바쁘게 뛰어다니는 해설가가 누군가 하고 보면 항상 이 위원이었어요. 초보 해설가라,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을지 모를 겁니다. 하지만, 제가 PD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이 위원처럼 성실한 해설가는 처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성실함과 준비성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꼭 성공할 것이라는 게 제 일관된 확신입니다.”

 

일전에 기자는 이종범에게 그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해설 준비를 너무 철저하게 하는 게 아니냐”고. “너무 준비를 많이 하는 게 실제 방송에선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그때 이종범이 기자에게 한 말은 이랬다.

 

“KIA에서 은퇴하고 나올 때 아쉬움이 많았어요. 팬들께 더 정중하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화에서 코치생활 때도 아쉬움의 연속이었어요. 내가 경험하고, 내가 새로 배운 야구 기술을 선수들에게 잘 전달했어야 하는데 그걸 잘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지금도 남아 있어요. 해설을 잘하려는 건 그 아쉬움과 후회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설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해설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야구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제겐 그것보다 소중한 기회도 없습니다. 모르겠어요. 야구선수로는 ‘천재’ 소릴 들었지만, 방송에서도 과연 그런 소릴 들을 수 있을지.(웃음). 못 듣고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제게 주어진 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저 이종범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요(웃음).”

 

현역에서 은퇴한 이종범은 ‘슈퍼스타’의 후광을 스스로 지웠다. 대신 최대한 몸을 낮추는 겸손과 ‘루키 시절’의 노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가와지리의 공에 팔꿈치를 맞는 순간 그는 좌절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좌절이 지금의 한단계 성숙한 이종범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종범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돌아가야죠. 그곳이 제 고향이고, 제 삶의 기반이니까요. 하지만, 이름값으로 어떤 자리에 오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여 그 자리에 오르고 싶지도 않아요. 그보단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저 스스로 ‘이제 됐다’ 싶을 때 절 불러주는 자리가 있다면 그때 가서 그 자리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언제 오느냐는 순전히 제 노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항간엔 그가 다소 매끄럽지 못하게 KIA를 떠난 통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그의 친정행을 불편해한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타이거즈 의 전통을 세우고, 명문 타이거즈를 만든 건 그들이 아니라 이종범이었다. 기자는 그런 소리는 소문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종범은 앞으로도 편한 길보다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을 취재하던 이종범을 지켜보며 몇 가지 소회를 밝혀봤다. 그가 부디 '슈퍼스타'의 책임감을 잊지 않으면서도 지금처럼의 초심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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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님의 댓글

  • 쓰레빠  사이다 2016.03.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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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 종범......영원한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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