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 父子'의 새로운 스토리… 성공 신화 쓸까?
지네딘 지단(44)과 엔조 지단(21). '지단 부자(父子)'가 레알 마드리드에 새로운 스토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만 못했던 아들'이 많았던 축구인 부자 계보에 '부전자전(父傳子傳)' 글귀를 새길 수 있을까.
지난 1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아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6~2017시즌 코파 델 레이(국왕컵) 32강 레알 마드리드와 레오네사와의 2차전. 레알 마드리드는 6-1로 완승을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사실, 이날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보다는 지단 감독의 아들 엔조의 데뷔전으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지단 父子'가 쓰는 동화
지단 감독은 이날 경기를 사실상 백업 멤버로 치렀다. 사흘 뒤(4일) 열리는 바르셀로나 FC와의 '엘 클라시코'를 위해 주요 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였다. 엔조가 소집명단에 포함되고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별 기대없이 시작된 경기. 그러나 엔조는 경기 내내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팀이 3-1로 앞서던 후반 18분에는 쐐기 추가골을 넣으며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아버지가 같은 팀 유니폼을 입고 은퇴한 지 3852일 만에 등장해 아들이 데뷔골까지 터뜨렸으니 팀 안팎에 이만한 경사가 또 없었다. 지단 감독은 경기 뒤 ESPN과 인터뷰를 통해 "감독의 옷을 벗고 이야기하면 아들의 득점에 굉장히 행복하다. 집에 가서 엔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엔조 역시 "레알 마드리드에서 골을 넣는 것이 꿈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기뻐도 마음껏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축구인 부자의 서글픈 운명이다. 지단은 '장남' 엔조를 칭찬하면서도 끝 없이 대중 앞에서 표정 관리를 했다. '아들을 편애한다. 경기에 내세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서다. 지단 감독은 "감독으로서 외데가르드, 알바로, 루벤의 활약도 역시 행복하다. 오늘은 모든 선수들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자신의 아들 엔조를 향한 칭찬에 선을 그었다.
엔조는 지난 2009년 스페인 15세 이하 국가대표팀으로 뛰었다. 2014년에는 프랑스 19세 이하 대표팀에 합류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엔조라는 이름 뒤에는 항상 '지단의 아들'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어쩔수 없는 차가운 시선과 역차별의 벽 역시 그의 몫이었다.
차범근- 두리 父子
유명 축구인을 아버지로 둔 축구선수 아들의 삶은 고달프게 마련이다. 무엇을 해도 아버지의 기록을 뛰어 넘기 어렵기 때문. 한국과 독일 축구계 '레전드' 차범근(62)을 아버지로 둔 차두리(36) 한국 축구대표팀 전력분석관 역시 현역시절 끝임없이 부친과 비교를 당했다.
차범근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다. 1972년부터 1986년까지 14년간 한국을 빛냈고, A매치 통산 135경기서 58골을 터뜨렸다. 한국 선수 A매치 통산 최다골 보유자이자 A매치 통산 최다 출전 2위(1위 홍명보 136경기)의 주인공도 바로 그다.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서는 '차붐'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전설적인 공격수로 기억되고 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와 UEFA컵 등에서 통산 121골을 기록했다. 1980년과 1988년에는 UEFA컵을 안았다.
차두리는 "나도 한때는 유망주였고, 겁 없이 뛰었다. 그런데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 느꼈다. 3~4년 독일에서 뛰며 강등을 맛을 보면서 아버지라는 벽을 넘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축구 인생을 3-5로 표현하기도 했다. 차두리는 "축구를 하는 동안 기준은 차범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그 사람보다 잘하고 싶었다. 결국 차범근이라는 사람의 근처에도 못가는 선수 생활을 해서 '3-5로 졌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만큼 성공 이룬 말디니 父子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성공을 이룬 축구인 부자도 있다. 지난 4월 84세를 일기로 별세한 故 체사레 말디니와 아들 파올로 말디니(48)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의 명문구단 AC 밀란의 '산 역사'라고 불린다. 아버지 말디니는 밀란의 첫 우승을 일군 주역이다. 팀의 주장이었던 그는 1963년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벤피카와의 결승에서 상대 골잡이 에우제비오를 봉쇄하며 2-1로 승리 공신이 됐다. 밀란이 사상 처음으로 안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었다. 아들 파올로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밀란의 '캡틴'이었던 2002~2003시즌 유벤투스와 치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3-2로 승리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주장 완장을 차고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드는 이색 기록이 세워진 순간이었다. 말디니 부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과 주장으로 나서 이탈리아의 8강 진출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파올로는 "내가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아버지는 '힘내거라 아들아.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제는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루고 나를 넘거라.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주장 완장을 차고 정상에 서 보거라.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후 나는 밀란의 주장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아버지 말디니가 있었기에 아들이 있었다는 것도 강조했다. 파올로는 "2003년 주장 완장을 차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을 때 아버지가 보낸 문자가 기억난다. '파울로는 내 자랑이다'라고 보내왔다. 그는 나의 영원한 히어로였다. 오늘 내가 있는 것은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