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관두고 소를 키울까 생각했다".
한화 거포 이성열(34)은 3번의 트레이드에서 나타나듯 곡절이 많은 선수 생활을 보냈다.
과거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됐을 때는 야구를 그만두고 고향 순천으로 내려갈 고민까지 했다.
목장에서 소를 키우는 아버지의 일을 배워 이어받을 생각이었다.
이성열은 "이제는 옛날이야기이지만 그땐 정말 야구를 관두고 고향에 내려가 소를 키울까도 생각했다. 야구를 오래 못할 것 같았다. 마음대로 안 되니 너무 힘들었다. 야구를 정리하고 아버지의 일을 빨리 배워 이어받을까 고민했다"고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2004년 LG 입단 시절부터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2008년 두산, 2012년 넥센, 2015년 한화로 시즌 중에만 3번이나 트레이드됐다.
2014년 시즌 후에는 첫 FA 자격을 얻었지만, 계약금 없이 2년 연봉 2억5000만원에 헐값 계약했다. 그래도 야구를 놓지 않았다.
그는 "FA 계약 때는 힘들고 속상했지만 결국 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걸로 좋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됐다.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뒀다. 야구로 아쉬움을 극복했다"고 돌아봤다.
소를 키울까도 고민하던 번민의 세월이었지만 어느 순간 야구는 그에게 생존 싸움이었다.
이제는 그 시절을 웃어넘길 정도로 야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못한다. 결혼도 했고,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야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이성열의 말이다.
올해로 15년차 베테랑 이성열은 풀타임 주전으로 뛰어본 게 1시즌밖에 없다.
지난 2010년 두산 시절이 유일하게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이었다.
타고난 힘과 일발 장타력에 누구나 혹했지만 변화구에 약했고, 포수 출신으로 외야 수비도 미숙했다. 믿음은 한정적이었다.
이성열은 "야구를 하면서 항상 생존 싸움을 했다. 꾸준히 주전 기회를 얻은 것도 아니고, 자리를 잡기 위해 살아남아야 했다"며 "두산 시절 재미있게 야구했지만 넥센 이적 후 출장기회가 띄엄띄엄했다. 나이는 점점 먹어 가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한화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생존 싸움은 계속 됐지만 지난해부터 타격에 눈을 떴다.
이상군 감독대행의 믿음아래 붙박이 주전으로 고정돼 자신감을 얻었다.
한용덕 감독 체제에서도 믿음은 굳건하다.
올 시즌 41경기 중 38경기를 선발출장하며 기회를 얻었다.
타율 3할3푼8리 50안타 8홈런 28타점 25득점 OPS .956. 한화 토종 타자 중 최다 홈런을 치며 중심타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화는 이성열이 홈런을 친 8경기에서 7승1패로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한다.
홈런 후 한용덕 감독의 가슴팍을 치는 세리머니는 한화 승리 상징이다.
이성열은 "감독님이 믿고 꾸준히 출장 기회를 주셔서 마음 편하게 타석에서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며 "베테랑으로서 아프지 않고 컨디션 관리 잘해서 누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종아리 사구 부상으로 3주 늦게 1군에 들어온 이성열은 규정타석 진입에도 이제 2타석만 남겨 놓았다.
한 때 소를 키울까 고민했던 이성열이 이젠 생존 야구로 뒤늦게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이성열 없는 한화? 상상할 수 없다.
다치지말고 ,, 소값 벌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