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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s Tribune] (스압) 이반 라키티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

  • 작성자: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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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기사
  • 2018.07.05

the best shirt in the world.jpg [Player's Tribune] (스압) 이반 라키티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

크로아티아와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책임지고 있는, 이반 라키티치의 이야기입니다. 라키티치도 샤치리와 비슷하게, 유고슬라비아 내전기에 (* 샤치리는 그로부터 몇 년 후인 코소보 내전 때 스위스로 이주했습니다) 가족들이 크로아티아를 떠나 스위스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에서 이반이 태어났죠. 하지만 그는 알바니아와 코소보를 잊지 않으면서도 스위스 국대를 택한 샤치리와는 달리, 청대 때 뛰던 스위스 대신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을 택했군요. 심지어 어릴 때 잠시지만 코소보에서의 삶을 살았었던 샤치리와는 달리, 태어난 장소도 스위스였던 라키티치였는데 말이죠. 크로아티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라키티치의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세요.


*는 역자 주입니다. 


2018.06.21.


The Best Shirt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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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가 그것들을 상자에서 꺼낸 그 순간, 형과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그것들을 절대 벗지 않으리라는 걸.

 

물론, 스위스의 우리 집에 그 상자가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는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랐다. 상자 위에는 크로아티아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거긴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었지만, 나와 형 둘 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집에서 크로아티아어를 썼고, 스위스의 우리 집이 있는 동네에는 크로아티아인들이 꽤 많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께선 1991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 집을 떠났고 한 번도 돌아간 적이 없었다. 형 데얀과 나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아는 크로아티아는 TV에 나온, 그리고 부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진에 있는 모습들이었다.

(*19916월에 발발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말합니다. 크로아티아의 독립 선포에 따른 크로아티아 전쟁도 이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화기 너머로 엿들은 전화통화까지.

 

난 아이였기 때문에 발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부모님은 나에게 전쟁에 대해 말씀해주신 적이 없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시피,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었다. 난 부모님이 크로아티아에 남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종종 우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건 마치...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악몽 같았다고 해야 하나?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는 그 상황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님의 기억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많은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곳에 남았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잃었다.

 

그리고, 내가 4살 땐가 5살 때, TV에서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난 사진과 영상들에서 전쟁의 모습을 보았고,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e5c025b5-rakiticquotecardartboard-1.jpg [Player's Tribune] (스압) 이반 라키티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

 

크로아티아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기도 전부터, 우리 국가대표팀은 이미 경기를 치렀었다. * 그게 우리에게, 사실은 이 세상 모든 국가와 국민들에게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건 간에 축구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는지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아빠가 칼로 그 상자를 열어 나와 형에게 줄 두 벌의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꺼냈을 때... 그건 아주 강렬했다. 마치, ‘그래, 우리도 크로아티아의 일원이야같은 기분이었다.

(* 크로아티아의 공식적 독립 선포는 1991625일이었고, 유고슬라비아의 정부에 의해 독립이 승인된 것은 1992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치른 첫 A매치는 19901017일 미국과의 경기로, 국가가 독립하기 전에 이미 축구 국가대표팀이 경기를 치렀습니다. 다만 이는 인정받지 못한 비공식 경기였으며, 아직 크로아티아 축구 협회가 출범하기도 전이었고, 공식 경기는 199275일에 치른 호주와의 경기입니다.)

 

우린 그 유니폼을 입고 잤다. 그 다음날 학교에도 입고 갔다. 그 다음날에도. 그 옷을 벗고 싶지 않았다. ‘와우, 우리가 크로아티아 유니폼을 갖고 있어.’ 백색과 적색의 체크무늬, 하지만 등 뒤에 이름은 없었다. 우리는 그것 말고는 입기 싫었기 때문에 그 유니폼이 10벌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특별한 것이었다.

 

내가 축구선수로 뛰기 시작했을 때, 난 크로아티아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나의 또 다른 고향, 스위스의 저지를 입고 있었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저는 스위스 사람입니다.” 그러면 항상 다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스위스라고? 그런데 이반 라키티치야?” 하지만 난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스위스에서 자랐으며,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녔고, 내 친구들도 스위스인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유스 팀에서 뛴 5년 동안 스위스의 유니폼을 입었다는 것이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내 심장의 가장 큰 부분은 크로아티아에 있다. 언제나.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 부모님과 형과 나는 드디어 크로아티아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거기 갔을 때, 전쟁은 여전히 사람들이 말하기 원치 않는 어떤 것이었다. 거의, ‘우린 잊어야만 해. 그것들을 뒤에 남겨두고 나아가야만 해.’ 와 같은 느낌이었다.

 

난생 처음 가 본 크로아티아는 나에게 스위스의 우리 집이 있는 도시, 묄린을 상기시켰다. 많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우리가 갔던 같은 도시로 이주해왔기 때문에, 우리 집 근처에도 크로아티아 식당과 크로아티아인들의 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1998, 크로아티아가 첫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모든 집의 창문과 가게 앞에는 크로아티아의 깃발들이 휘날렸다. 모두가 광란의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1998년 월드컵 때, 형과 나는 아빠와 함께 스위스의 우리 집에서 경기를 봤고 물론 우리 유니폼을 입고 우린 말을 할 수 없었다. 90분 동안, TV 속의 경기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대화는 나중에 할 수 있잖니.” 아버진 말하셨다. “지금은, 그냥 경기를 보자꾸나.”

 

어느 크로아티아 사람에게 물어보든, 모두가 독일과의 8강전을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팀으로 공식 출범한 건 겨우 1992년이었고, 불과 6년 만에 우리의 첫 월드컵에 출전해 8강전에서 독일을 상대한 것이다! 아빠는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 루카보다 더 축구에 미친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내 생각이니까 의미가 꽤 크다. 아버진 우리가 스위스로 이주한 후에 건설 쪽 직업을 구하셨다. 아버진 아주 강인한 사람이다. 그리고 젊으셨을 땐, 축구를 하시기도 했다 아버진 수비형 미드필더셨다... 등번호 4번의.

 

그러니 크로아티아가 독일에 승리한 후에는?

 

그래... 아버진 거의 날아다니셨다. 오늘의 많은 순간들마다 나는 내가 우리 둘 모두의 꿈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버진 스위스로 이주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보스니아에서 상당히 높은 레벨의 경기를 뛰셨다. 그리고 축구를 관두신 이후에는, 항상 내 경기를 보러 오시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셨다.

 

축구와 크로아티아가 아버지에게 갖는 의미는 그토록 컸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스위스와 크로아티아 사이에서 어느 나라를 위해 뛸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내가 스위스의 감독님과 통화하는 동안 아버지가 내 방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오로지 스위스만을 위해서 뛸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애초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스위스가 내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에 슬라벤 빌리치와 크로아티아 축구 협회의 회장님께서 바젤에서 뛰고 있던 내 경기를 보러 직접 오셨다. 우리는 경기 후 대화를 나눴다.

 

우선 슬라벤과 같은 방에 있다는 건... 그래, 그가 일단 아무 말이나 하면 나는 이렇게, “좋아요. 당신들과 함께 할게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는 나에게 아무 압박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국가대표팀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내게 알려주었고 내가 그 계획의 일부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와 함께 가자.” 그가 말했다. “와서 우리 조국을 위해 뛰어주렴. 우린 함께 최고가 될 수 있을 거야.”

 

머릿속으로, 난 생각했다. ‘함께할게요.’ 그는 나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주었고 그건 마치, ‘, 제발 당신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갑시다!’ 같은 느낌이었다.

 

슬라벤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나의 축구 커리어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다. 단지 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말이다. 그는 뭔가 다르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내가 오늘도, 내일도, 또 그리고 또 그리고 다시 그를 위해 뛰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가 내 안의 모든 걸 끌어내주기 때문에 나는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X, 이 남자는 날 위해 뭐든지 해줄 것 같구만.’

 

2ed1ecb8-gettyimages-81590901.jpg [Player's Tribune] (스압) 이반 라키티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

 

하지만 슬라벤과 마주보며 그의 말을 전부 들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위스는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주었다. 그랬기에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 바젤에서의 시즌이 끝났고, 샬케로 이적해서 뛰기 위해 독일로 가기 전 집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국가대표팀을 결정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나에게 너무나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었다. 난 독일로 떠나기 전에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클럽에서 확실하고 집중된 마인드로 새 출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에 앉아, 여전히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계속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내가 거기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중요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내 가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내가 처음 통화한 사람은 스위스의 감독님이었다. 나는 커리어 내내 스위스의 일원이었기에,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왜 크로아티아를 택하려 하는지 설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난 그에게 이건 스위스를 배신하는 결정이 아니라고 말했다. 단지 크로아티아를 택하는 결정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다음엔, 슬라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과 함께 할게요. 저도 이제 크로아티아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슬라벤은 말했다. “크로아티아의 모든 사람들은 네가 여기를 택했다는 걸 자랑스러워 할 거야.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축구를 즐겨라.”

 

두 통화 모두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난 그 시간 내내 아버지가 내 방 문 밖에서 걸어 다니시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내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아버지는 딱 멈춰 서시더니 날 쳐다보셨다. 나는 그 전에 아버지께 어떤 결정을 내릴지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아버진 내가 어딜 택하든, 날 지지해주실 거라고 말씀하셨었다. 우리 둘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난 장난을 한 번 쳐보기로 했다.

 

저 계속 스위스 대표팀에서 뛸 거예요.” 난 말했다.

 

,”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잘 됐구나.”

 

아니, 아니에요.” 난 웃으며 말했다. “크로아티아를 택했어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더니, 곧이어 울기 시작하셨다.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경기를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마다, 아버지, 그리고 그때 그 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곤 한다. 아버지가 나의 축구화를 신고 내가 서있는 그 자리에 서길 원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많은 크로아티아인들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도. 조국의 유니폼을 입고 조국을 위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어떻게 묘사할 말이 없다.


9eb93f4a-gettyimages-540924100.jpg [Player's Tribune] (스압) 이반 라키티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

 

크로아티아의 사람들은 아주 특별하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만의 캐릭터가 있다. 우리 팀과 함께 경기장에 나가 우리의 서포터들 앞에 서면... 그건 거의... 경기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이 든다. 그건 마치, 잘 모르겠다, 마치... 모두를 그저 꽉 껴안아 주거나 뭐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결코 떠나고 싶지 않은 느낌. 그들과 매일을 경기하고 싶다. 거기 그 자리에 매일 있고 싶다.

 

참 재밌다. 그 상자가 우리 집에 도착했던 그때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지만, 난 여전히 절대로 그 유니폼을 벗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게 바로 그 유니폼을 입었을 때 오는 압박감이다. 하지만 좋은 압박감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크로아티아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느낌. 슬라벤이나 다보르 슈케르 * 같은 선수들이 이뤄놓은 업적을 이어가고 싶은 느낌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7경기 6골을 기록하며 월드컵에 첫 출전한 크로아티아를 대회 3위에 올려 놓은, 크로아티아의 축구 영웅. 대회 실버볼을 수상했으며, 골든볼은 브라질의 호나우두 최다득점자로 골든슈도 수상했습니다. 현재는 크로아티아 축구 협회의 회장으로 재임 중입니다.)

 

난 여전히 세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는 근 5년 또는 6년 동안 우리의 최고의 경기였다. 난 드레싱 룸에서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대로만 하자.”

 

루카 모드리치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와우, 왜 전에는 이렇게 못했을까?’

 

여러분이 전에 읽었을지 모르지만, 내 가족 또한 다른 나라에서 왔다. 내 아내는 스페인 사람이고, 우린 바르셀로나에서 딸아이 둘을 기르고 있다. 내 딸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건 참 특별하다 다른 나라 출신으로서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경험 말이다. 그리고 물론 나의 작은 공주님들은 둘 다 내 열렬한 팬이다.

 

그래서 대회가 시작하기 전, 난 반드시 필요했던 아주 특별한 주문을 하나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난 딸들에게 줄 상자를 들고 집에 왔다.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유니폼 두 벌.

 

아이들은 절대로 그 옷을 벗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 기분을 잘 안다.



rakitic2.png [Player's Tribune] (스압) 이반 라키티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



 

기사 링크: http://www.theplayerstribune.com/en-us/articles/ivan-rakitic-croatia-the-best-shirt-in-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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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막바지에 라키티치가 자신의 아내를 언급하며 '여러분이 전에 읽었을지 모르지만' 이라는 말을 합니다. 라키티치는 2017년 9월에도 Player's Tribune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이는 자신과 아내의 첫 만남 당시의 러브스토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둘은 2011년에 세비야의 호텔 바에서 처음 만났는데,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던 라키티치는... 크흠 여기까지, 자세한 스토리는 빠른 시일 내에 제가 올릴 번역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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