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로스, 이란 잔류…한국은 협상 카드였나
이란 체육부 발표 "케이로스 감독 요구 수용하겠다"
[골닷컴] 한만성 기자 = 한국 대표팀의 차기 수장 후보로 꼽힌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결국 이란에 남는 데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이란 국영 통신사 IRNA는 13일 밤(이하 한국시각) 모하메드 레자 다바르자니 이란 체육부장관이 직접 케이로스 감독이 자국 축구 대표팀 사령탑으로 잔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이란 축구협회와 계약이 종료된 케이로스 감독은 내년 1~2월 UAE에서 열리는 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본선이 끝날 때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다바르자니 장관은 "이란 체육부는 케이로스 감독이 요구한 재계약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축구협회의 결정을 수용한다. 케이로스 감독은 아시안컵까지 이란 대표팀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케이로스 감독이 요구한 재계약 조건은 축구대표팀 소속 선수들의 병역의무 규정 완화였다. 이란은 한국과 비슷한 형태의 징병제 국가다. 케이로스 감독은 지난달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이란 축구협회와의 재계약 과정에서 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의 병역특례를 요구했다. 이후 그는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사임 소식을 전하며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이란 축구협회는 자국 정부 산하기관인 체육부와 국방부까지 동원해 케이로스 감독을 붙잡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결국, 이란 국방부 대변인 사르다르 카말리는 지난 8일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새 규정은 국가적 영웅인 그들을 위해 포괄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히며 케이로스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이 덕분에 이란 축구협회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됐다. 우선 이란은 자국 역사상 최초로 대표팀의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케이로스 감독 체제로 아시안컵 우승을 노린다.
또한, 국방부가 케이로스 감독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이란은 대표팀 주축 자원 사르다르 아즈문(루빈 카잔), 사이드 에자톨라히(암카르 페름), 알리 골리자데(샤를루아), 알리레자 자한바크시(브라이턴), 마지드 호세이니(트라브존스포르) 등이 만 30세까지 입대를 연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외 병역의무 대상인 대표팀 선수들도 유럽 진출과 대표팀 차출에 지장이 없게 됐다.
그러면서 지난주 이란 언론을 통해 최초 보도되며 관심을 끈 케이로스 감독의 차기 한국 대표팀 사령탑 부임 가능성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케이로스 감독의 한국행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건 메흐디 타지 이란 축구협회장이었다. 그는 지난주 이란 스포츠 TV '바르제시3'를 통해 "대한축구협회장이 케이로스 감독과 협상을 시작했다고 내게 말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지 회장은 "우리가 지금 직면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케이로스 감독은 결국 계속 이란에 남을 것"이라며 한국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자신했다.
물론 케이로스 감독이 이란을 떠날 가능성이 아예 없어 보인 건 아니었다. 그는 SNS로 이란과의 결별을 발표한 후 10명이 넘는 자신의 스태프(코치진, 의료진, 통역사)와 모국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그러나 케이로스 감독은 지난 7년간 이란을 이끌며 이미 여러 차례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목적으로 이러한 전략을 펼친 끝에 자신이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연장했다.
결국, 케이로스 감독의 선택은 이란이었다. 이란이 체육부와 국방부까지 나서 자신을 지지해준 마당에 케이로스 감독으로서는 굳이 떠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7년간 이란을 이끌면서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무패로 통과했고, 본선에서는 팀에 20년 만의 승리(모로코전)를 안겼다. 또한, 현재 이란은 아시아 국가 중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37위로 가장 높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 축구협회와의 재계약 협상이 일시적으로 결렬된 와중에 한국뿐만이 아니라 이집트, 알제리, 콜롬비아 대표팀 감독직도 제안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란 잔류를 택했다. 그러면서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 등 자신에게 관심을 드러낸 팀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이란 축구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 탄탄하게 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