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골 사람입니다.
본투더시골피플이죠.
예전에는 시골에도 사람이 많았어요.
농사지을 땅보다 사람이 많았으니 공장에 취직하는 게 소원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시골 인심은 야박했어요.
잔치하면 음식 나눠먹고 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반찬 정도는 나눠먹고 했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30 여년 전에... 거의 40년 전에...
저희가 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했어요.
물론 딸려있는 땅도 샀죠.
그 땅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이듬해 원래 땅주인이 와서 은행을 아들이랑 같이 털고 있더라구요.
땅만 판 거지는 나무는 안팔았다라며....
개소리죠.
결국 이장님의 중재아닌 중재아래...
저 또라이시키는 원래 그런 놈이니까 이해하라며...
그 전 주인을 다그쳐서 정신 차리게는 해주셨습니다.
시골인심?
그 때도 야박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젊은 어머니는 정신이 없으셨으니 아이들을 생각 못하고 병원에서 넋이 나가셨었죠.
동네 아줌마가 행여나 하는 마음에 집에 와보시고 우리 남매 밥을 해먹이셨습니다.
저녁에는 반찬들고 또 오셨구요.
이웃도 아니었는데 그냥 소식을 들으셨다고요.
그래서 애들은 어찌되었을까 궁금하셨다고.
이분은 참으로 좋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가면서 본격 서울사람이 되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 지내다가 자취를 했고
취업을 했고 군대를 갔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 것도 서울이었습니다.
그리고 40살까지 서울에서 주로 살았습니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얼굴 두 번만 마주치면 인사를 했습니다.
이웃들은 영 불편한 모양이더군요.
왜 아는 척하지??? 이런 표정.
중간에 일산에 조금 살았는데요.
오피스텔을 조금 넓은 걸 사서 갔어요.
요~ 내 집이다~~~~ 신났지만 여전히 이웃들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심심한 사람들을 놀러오라고 주말에 엘베에 붙이고 기다렸습니다.
올 때는 술하고 안주 하나만 사오라고...
무려 14분이 오셨습니다.
저는 이사를 갈 때 동네를 충분히 관찰하고 갑니다.
파견근무를 가서 집을 얻더라도 그 동네 식당이나 미용실에 가서 살펴보는 거죠.
질문도 하고..
보통은 3개월이면 친한 이웃이 몇몇은 있습니다.
저라고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귀농하시는 분들...
서울에서 어떻게 살았는 지가 시골에 가면 그대로 나옵니다.
저는 시골이 인심이 더 좋아야 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웃어주는 사람을 보면 언젠가는 마주 웃어줍니다.
시골이거나 서울이거나...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타인의 반응이나 타인의 흐름에 끌려가는 겁니다.
독불장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먼저 관계를 위한 노력을 한다는 의미죠.
그렇게 노력해도
땅은 팔았지만 나무는 안팔았다는 인간들이 있으며...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힘든 이웃을 바라봐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결국 나도 문제인 상태로
무언가를 단정짓고 확정한 상태로
나쁜 이웃이 있는 마을로 귀농을 하면
시골인심이 야박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시골인심이 야박한 게 아니라 나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대충.. 적당히 알아보고 이사간 겁니다.
도시에 살 때는 동네인심을 느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시골에 가면 갑자기 동네인심이 팍팍 느껴져서 호구같은 사람들이 잘해주는 걸 생각하는 거 자체가 오류입니다.
동네인심은 수십 년간 대를 이어 쌓여온 관계에서만 작동합니다.
좀 살아보다가 마트 없어서 불편하고
보일러 기름 사기 귀찮아서 다시 도시로 가는 사람들 많습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거요?
그거 쉬운 거 아닙니다.
시골인심이 야박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악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문명화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시골의 관습은 20세기에 멈춰있기도 합니다.
그 차이가 불편하다고 악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인연이고 그 인연이 선연일지 악연일지는 당장 알 수 없으니 좋은 연을 맺기 위한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마무리하고 싶네요.
주절주절 글이 길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