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는 거듭 비공개 방침 검토중
시민단체 “과거사 청산 위해 밝혀야”
그래픽 정희영 기자
그래픽 정희영 기자
1980년대 간첩조작 사건 등 과거사 사건에 가담해 훈장을 받았다가 취소당한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관할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정보 공개 대신 다른 사유를 들어 또 ‘비공개’ 처분을 검토하고 있다. 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는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안부를 상대로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달 26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행안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며 내세운 사유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다. 지난해 7월 행안부는 국무회의에서 1980년대 과거사 사건에 관여한 이들이 받은 서훈이 부적절하다며 ‘서훈 취소안’을 심의 의결했다.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간첩조작 사건 관련자 45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자 7명,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관련자 1명과 단체 2곳 등 모두 53명과 단체 2곳에 수여된 56점의 훈장과 포장,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이 취소됐다. 행안부는 ‘거짓 공적’을 사유로 서훈을 취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폭력 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 ‘인권의학연구소’는 행안부 결정 직후, 서훈 취소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행안부는 7월말 이를 거부했다. 행안부는 구체적인 거부 이유 대신 “서훈 취소 대상자 명단과 구체적인 취소사유는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되지 않는다”고만 밝혔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과거사 청산과 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해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며 서훈 취소 대상자 명단, 취소 사유와 관련된 문서 등을 공개하라고 지난해 10월말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인권의학연구소의 손을 들어줬다. 행안부가 법 조항과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행안부가 ‘서훈 취소 관련 문서 일체가 정보공개법 9조에 따른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밝힌 것만으로는, 각 정보가 정보공개법이 정한 어느 비공개사유에 해당돼 비공개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행안부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적’ 사항을 공개할 수 없다고 답한 것에 대해서도 “구체적 근거 규정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행안부는 고문 수사관 등 과거사 사건의 가해자를 익명 처리하면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결국 비공개 처분했다. 행안부가 대충 문제를 처리하고 넘어가려 한다면, 이는 과거사 피해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새로 제기될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다른 사유를 들어 ‘비공개’ 처분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는 정보들이다. 새로 정보공개 청구가 들어오면 구체적 근거를 들어 다시 비공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행안부는 재판 과정에서 ‘국가의 이익 침해’ 등 새로운 취소 사유를 내비친 바 있다. 간첩조작 사건, 5·18광주민주화 운동 관련 정보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과거사 사건 가해자를 상대로 한 서훈 취소 및 명단 공개 운동에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 예로, 1967년 동백림 간첩조작 사건 가해자 5명에 주어진 보국훈장도 아직 취소되지 않은 상태다.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동백림 사건은 당시 관련자들에게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고, 사건의 범위, 범죄사실을 확대 과장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행안부는 ‘섣부른 서훈 취소로 소송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입장을 시민단체쪽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은 “피해자들이 시민단체 도움을 얻어 가해자 서훈 취소를 요구해야만 정부가 겨우 움직이는 모양새”라며 “정부가 과거사 사건 가해자에 관한 서훈 취소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