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남자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어떤 성인 남성이 빨래도 음식도 설거지도 못하나.”
임신 말기 여성에게 남편 속옷을 정리하고 가족들의 밑반찬을 챙겨두라는 등 집안일을 해두라는 내용 등을 안내한 서울시 임신 정보 사이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2021년에 육아·가사를 여성이 전담한다고 여기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드러내는 건 오히려 ‘남성을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란 지적까지 나왔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는 시가 2019년 개설해 운영 중인 서비스다. 임신 주수별로 태아의 성장, 모체의 변화, 건강체크 포인트, 임산부 생활수칙, 중점태교와 기타 상식을 제공하고 있다. 해당 정보는 대한산부인과학회의 감수를 받았다고 표기돼 있다.
그런데 지난 5일 저녁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사이트의 임신 정보 곳곳에 성차별적 내용이 있다는 지적이 확산했다. 시가 제공하는 공식적인 가이드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성 인지 감수성 부족’은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됐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일부 내용을 삭제한 상태다.
◆만삭에도 ‘남편 속옷·가사노동’은 여성 몫?
먼저 임신 말기 행동 요령을 안내하는 부분에 포함된 ‘밑반찬 챙기기’, ‘옷 챙기기’ 등의 내용이 집중포화를 받았다. 가이드는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은 버리고 가족들이 잘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을 서너 가지 준비해 둡니다. 즉석 카레, 자장, 국 등의 인스턴트 음식을 몇 가지 준비해 두면 요리에 서투른 남편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했다.
“3일 혹은 7일 정도의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와이셔츠, 손수건, 겉옷 등을 준비해 서랍에 잘 정리해 둡니다”라는 ‘옷 챙기기’ 부분,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한다면 특별한 운동을 추가로 하지 않아도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등의 설명도 있었다. 화장지 치약 등 생필품을 점검하고, 문단속과 가스점검 등을 챙기는 것도 임신한 여성의 몫으로 표현됐다.
SNS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접한 이들은 “임산부 아내를 둔 남편의 꿀팁 아니냐”, “결혼한 여성을 남편의 가사도우미쯤으로 여기는 것이냐”, “만삭이면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인데 남편 속옷과 음식까지 챙겨놓으라는 것이냐”, “이런 성차별적 인식을 담은 내용을 ‘정보’라고 올려놓은 서울시의 인식 수준이 놀랍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독박육아와 가사노동이 지목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여성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지적, 남편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무시하는 것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시가 운영하는 사이트가 이 정도면 국가가 비혼·비출산을 장려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신한 여성의 성욕이 떨어진다고 언급해놓고 임신 중 성관계 방법을 너무 자세히 쓴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보가 필요한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여성을 인격 주체로 대하기보다 도구화하는 느낌이라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가이드 원 출처는 복지부 ‘아이사랑’ 포털
한편 이 내용의 원래 출처는 서울시가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에서 가져온 것으로 확인됐다. 2010년 각 시도 보육정보센터 18곳의 콘텐츠를 통합해 오픈한 아이사랑에 해당 가이드를 먼저 썼던 복지부는 2019년 상반기에 일부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6일 확인 결과 복지부 아이사랑 포털에도 여전히 “입원 전 가족을 위한 배려에 신경쓰라”며 만삭 임산부에게 밑반찬과 옷가지 챙기기를 당부한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다. 뒤떨어지는 성 인지 감수성을 가진 공공기관이 여전히 한두 곳이 아닌 셈이다.
http://n.news.naver.com/article/022/000354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