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플리트 상은 6.25 당시 3번 째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의 제안으로 코리아 소사이어티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임. 수상자는 한국과 미국 우호관계에 크게 기여하는 자임.
인천 상륙작전 성공 이후 승리에 도취된 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압록강까지 UN군을 밀어붙여 전쟁을 빨리 끝내려 했음. 그리고 승전을 바탕으로 민주당 대통령 해리 트루먼과 경쟁해 공화당 후보로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생각이었음. 문제는 욕심에 눈이 멀어 공군 정찰기가 만주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이동이 감지된다는 보고를 올리지만 무시함.
빠른 승리를 위해 포병 이동, 보급, 후속부대 지원없이 보병 위주의 진격을 계속 함. 결국 전선이 너무 넓어졌고 화력 지원할 포병도 없이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양갈래로 갈라진 UN군 진격로 사이를 45만명 중공군이 개마고원으로 걸어들어와 후방을 차단함.
무리한 경보병 행군으로 UN군 다수 병력이 포위되어 버림. 결국 맥아더 장군은 후방으로 군을 물리면서 전쟁 승리를 위한 핵 탄두 50발 투하를 주장함. 이는 백악관과 국방부의 반발을 사서 다시 15발로 줄여 주장함. 하지만 3차 대전 발발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이 역시 거부함. 이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맥아더가 쫄았냐고 도발했고 경질당함.
맥아더가 경질당하고 미 8군 사령관이던 리지웨이 장군이 UN군 사령관이 됨. 그리고 미 8군 사령관으로 밴 플리트 장군이 임명됨.
리지웨이 장군은 중공군의 보급선을 최대한 늘려서 약화시키기 위해 후방으로 군을 물리고 서울도 일시적으로 포기함. 유명한 1.4 후퇴임.
경기도 평택 - 강원도 원주 - 삼척 선까지 후퇴했다가 다시 전진하는데 2년 9개월간 중공이 교대로 끊임없이 투입하는 3백여만명 중공군을 상대해야 했음. 반면에 UN군은 같은 기간 34만 1천 명이었음. 핵없이 300만 대군을 34만 명으로, 거의 9:1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밴 플리트 장군이 낸 계책은 포탄을 일반 전투의 5배로 쏟아붓는 것이었음. 압도적인 포병 화력으로 인해전술을 갈아버리는 전술을 사용함.
중국 입장에서 최고의 중공 애국자들을 햄버거 패티 다지듯 갈아버린 적장의 이름을 딴 상을 수상한 BTS가 6.25 70주년을 기리며 한국과 미국 양국의 전사자들과 부상자, 민간인 피해자를 추모하는 말을 하니 중공이 풀발기함.
밴 플리트 장군은 중공군을 말 그대로 갈아버린 장군이자 한반도를 중공이 다먹을 수 있던 기회를 방해한 원수로 인식하기 때문임.
핵으로나 막을 수 있다는 3백만 중공군 인해전술을 막대한 포병화력으로 박살내버린 한국 입장에서 구국의 영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