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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푸바오, 사육농장 반달곰, 그리고 인간의 자리

  • 작성자: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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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93
  • 2024.02.25
친구네 밭 앞에서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었다. 먼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유해 종’으로 지정된 고라니, 멧돼지를 사냥하는 소리다. 친구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책에서 본 바를 몇 마디 거들었다. 고라니나 산돼지, 오소리가 산 밑으로 내려오는 건 사람들이 자꾸만 산 위에 길을 내고 집을 짓고 골프장을 만들어서라고. 먹을 것이 없어서 아래로 내려오면, 관청에서 농작물을 지킨다며 고용한 사냥꾼들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그래서 다른 쪽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관청 사냥꾼이 지키고 있어서 산에 사는 동물들은 점점 갈 곳이 없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고.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조금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내가 농사짓는 친구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거지.

....



“탈출한 곰은 세 살로 추정되며 온몸이 검은색이고 앞가슴에 반달 모양의 하트 무늬가 있습니다. 튀어나온 입과 넓은 이마, 큰 귀,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이 특징입니다. 이 곰을 목격하신 분은 즉시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의 글은 짧은 뉴스 멘트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은 곰이 농장을 나온 뒤 겪는 현실을 박진감 넘치는 구도와 강렬한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글과 곰의 입장에서 겪는 그림의 대조적 구성은 그림책 안에 비어있는 부분을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서 채우도록 이끌고, 이는 곧 보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더 깊이 빨려들게 한다.

 

나는 이 평면 그림책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의 빗소리와 속도, 그 비의 온도와 촉감, 달리는 곰의 헐떡거림, 순간 멈추었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먼 곳을 혼자 응시할 때 삼키는 곰의 침묵과 눈물 같은 것이 다 전해져서 놀라웠다.

 

또한 이 구성은 보는 이를 새로운 인상과 질문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곰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생겼는지 묘사하는 글에 따라오는 그림은 친구마저 잃고 지쳐 혼자 먼 산을 바라보는 곰의 뒷모습이다. 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고 글이 따라온다. 이 어긋남에서 독자는 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세계에서 진짜 공포에 떨고 있는 건 누구일까!

.....



인기 많은 판다곰 푸바오는 행복할까?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은 아마 푸바오일 것이다. 푸바오는 한 놀이동산에 살고 있는 자이언트 판다곰인데, 중국에서 한국에 ‘임대’해 준 두 판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모습까지 언론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푸바오가 나오는 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푸바오 인형이나 굿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푸바오가 나온 사진집은 지난해 온라인 서점 연말 결산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힐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푸바오는 올해 4월,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의 놀이동산을 떠나 중국으로 영영 떠난다고 하니 더 애틋해질 수밖에.

 

전시동물을 홍보하는 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중국이 동물을 외교 수단으로 삼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 역시 푸바오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내 손보다 작은 몸짓으로 태어나 움찔거리던 모습부터 꼬물꼬물 엄마 젖을 찾아 먹고, 물고 깨물고 장난치다가 벌러덩 누워 낮잠 자는 영상은 아주 여러 번 보았다. 그 작은 곰이 몇 달 만에 내 몸보다 커지는 신비함에 놀라고, 처음으로 일어나서 네 발로 걷던 날, 나무에 오르던 날 사육사와 나눈 교감도 뭉클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사랑받는 곰이라니, 푸바오는 행복할까? 우리는 푸바오의 몸짓과 표정, 생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비인간동물과 교감하고 더 사랑하는 감각을 키워가고 있는 걸까?

 

이름을 찾아서 떠났던 ‘반달가슴곰-KM53’

 

『오삼으로부터』(윤주옥x결 지음, 니은기역, 2023)는 ‘오삼’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반달가슴곰-KM53’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삼이는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으로 2015년에 지리산에 방사되었던 반달가슴곰 중 한 명이다.

 

“나는 더 먼 길을 떠나게 되었어. 내 이름을 찾아서. 내가 부를 이름들을 찾아서.”



고 드디어 지난달에는 엄마의 고백을 들었다.

 

“이상해. 집에 고양이가 없으니까 허전하고 이상해. 삼일 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허전하니?”

 

푸바오와 반달가슴곰과 유해 종으로 지정되어 자꾸만 총에 맞는 고라니와 내 반려고양이 순이 사이에서 도시에 사는 나는 어떤 연결을 이어갈 수 있을까.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실제적으로, 비인간동물들과 나 사이에 어떻게 공존이 가능한지 답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엄마가 새롭게 알게 된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네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말이다. 나만 이 지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구역에 동거하는 생명체로서 너도 나도 침범자로 여기지 않는 감각. 네가 이 산과 땅에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내가 너의 세계를 파괴한다면 나 역시 파괴될 수도 있다는 수용이 필요한 것 아닐까.


http://m.ildaro.com/9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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