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4·3 평화공원 내 위패 봉안소 ⓒ연합뉴스
▲ 1948년 4월 3일. 남한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지부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했다.
사진은 제주 4·3 평화공원 내 대표적인 조형물 ‘비설’ ⓒ데일리안
▲ 미군정은 강경진압을 결정하고, 이후 ‘빨갱이소탕’이라는 이승만정부의 판단에 따라
1954년 9월 21일에
이르기까지 3만명이 죽고 불탄집은 4만여채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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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중) 사진은 제주 4·3 평화공원 4·3 희생자 위패 봉안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제주4.3정립 연구·유족회’의 의뢰로 2015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0%는 4·3 평화공원 위패에 대해 ‘부적격 위패라고 생각하므로 정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모노리서치
▲ 제주 4·3사건 당시 남로당 무장대에게 희생당한 이도종 목사의 손자, 이동해씨는 “당시 무장폭도 사령관인 이덕구의 수첩에서도 할아버지가 순교하셨다는 내용이 나오그레이. 이덕구의 수첩에는 ‘고산 출신 반동목사가 순회 강연가는 것을 발견해서 숙청’이라고 적혀있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 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증오와 적대의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눈물을 닦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