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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67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2016. 06. 26.
67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목놓아 부르짖던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같은 민족에 총을 맞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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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의 마지막 공식석상 사진 / 사진 = 건국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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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의 마지막 공식석상 사진 / 사진 = 건국대 박물관
그는 9세가 되어서야 양반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국문을 배웠고, 17세에 이르러 과거에 응시했으나 당시 매관매직으로 타락한 과거에 실망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김구 선생은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며 탐관오리 척결에 앞장섰으며, 우연히 마주친 변복한 일본군을 찔러죽여 일본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결국 김구 선생은 고향에 머무르던 중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감형은 되었으나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던 그는 탈옥한 뒤 양산학교에서 교사일을 하며 계몽운동에 몰두했고 또다시 경찰에 체포돼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선생은 옥중에서 자신의 호를 백범(白凡)이라고 바꿨다. 가장 미천하고 무식하기로 이름난 백정(白丁)의 백과 범부(凡夫)의 범(凡)자를 따서 지었다. 이는 천한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 본인처럼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