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61118010052028
14번 '대한매일신보' 보기 문제에 "시일야방성대곡 게재" 오답처리 논란
백과사전, 정부 정책브리핑 "한문.영문으로 실었다" 명시돼
[송성환, 이동현, 오승재 기자]
올해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부터 필수 과목으로 처음 치러진 한국사 영역에서 복수정답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이의신청 게시판에 따르면 김 모씨는 조선말 '대한매일신보’를 보기로 제시한 한국사 영역 14번 문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14번 문항은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고르는 것으로 (1) 국채보상 운동을 지원하였다, (2) 최초로 발행된 순 한글 신문이었다, (3) 대한민국의 임시 정부의 기관지 역할을 하였다, (4) 조선 총독부의 문화통치 방침에 따라 창간되었다, (5)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였다 등이 답지로 나왔습니다.
그는 "1번이 유일한 정답인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대한매일신보 역시 1905년 11월 27일 이를 지면에 게재했다"며 "답지 5번은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였다'라고 서술되어 있으므로 정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두산백과사전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제시하면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11월 21일 시일야방성대곡이야말로 모든 대한제국 신민의 통곡이라며 그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으며, 11월 27일에는 시일야방성대곡을 한글과 영문으로 옮겨 실어 그 내용을 널리 알렸다”는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EBS 취재 결과, 실제 두산백과사전에는 게시글과 같은 내용의 설명이 실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은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언론인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황성신문’에 쓴 논설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자료에서 '대한매일신보'에도 '시일야방성대곡'이 게재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는 "『대한매일신보』는 장지연과 『황성신문』의 태도를 극구 찬양하는 동시에 11월 27일자에 「시일야방성대곡」의 영문 번역을 개제하는 등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또,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특별귀화허가증 수여했다'는 내용의 2008년 8월 14일자 정부의 정책브리핑에도 "1904년 7월에는 영국인 베델(Bethell)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는 한편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쓴 논설 「시일야 방성대곡」을 게재하기도 하였음"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밖에 위키백과의 장지연 항목에도 "<시일야방성대곡> 은 1905년 11월 27일 대한매일신보에 한문과 영문으로 번역되어 기사로 나갔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어 복수 정답 처리를 놓고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