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常識)'이라는 건 절대적이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 상식의 범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령 제가 법학 전공자이고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주의 같은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해서 그걸 다른 사람들의 상식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로 들이대는 순간부터 '상식'이라는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법학 전공자 나름대로이고, 물리학 전공자 나름대로이고, 국어학 전공자 나름대로이고 하다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이 하나둘씩 상식이 되어버릴 공산이 크고,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식이 부족하다' 는 부당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상식을 판가름하는 하나의 기준을 설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다만 그에 앞서서 상식이라는 것이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즉 상식 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 이라는 전제 를 꼭 달아두도록 합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취업준비생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죠. 각자 '일반상식', '시사상식' 같은 이름이 붙은 책 한 권씩을 구매하게 됩니다.
당신들은 이게 '상식'이기 때문에, 최소한 각자가 지원하는 회사의 입사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당 책자에 들어가있는 내용이 반드시 '만국공통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상식인지 아닌지는 각자가 지원한 회사의 인사담당부서에서 문제 출제자가 '이거는 상식이다', '이거는 상식이 아니다' 라고 판단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 이죠.
가령 미국으로 사탕을 수출하는 A기업의 문제 출제자가 "한미 FTA가 언제 발효되었으며, 그게 한국경제에 어떤 유·불리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다고 칩시다. A기업의 입장에서는 한미FTA의 제반사정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상식'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에티오피아로 냉동피자를 수출하는 B기업 출제자는 한미FTA에 대해서 물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B기업 입장에서는 한미FTA가 자신의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B기업에게는 한미 FTA에 대한 내용이 '상식'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섬'이라는 것과 '국회가 여의도에 있다'가 상식인가요?
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무에 암수 구분(암나무와 숫나무)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어느 친절하신 분이 "은행나무에 은행열매가 열리는 것은 암수의 수분(受粉, 동물에서의 '교미'와 유사)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힌트를 주셨고, 그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과 출신이고 그쪽 계통 사람입니다만,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고 우주과학 뿐만 아니라 양자론 등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상식이 부족한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식물에도 암수 구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주과학과 양자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신 분들은 뭔가요?
저는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식물에 암수 구분을 몰라도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우주과학과 양자론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분도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국은 섬'이라는 사실과 '국회가 여의도에 있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 조차도 상식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일상생활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상식인'이십니다.
다만 각자가 처해있는 위치, 상황에 따라서 '상식인이다, 상식인이 아니다'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취업과정에서 어느 기업에 응시하느냐에 따라 상식의 범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서 상식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여부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걸 채워나가는 건 결국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상식은 절대적'이라는 부당한 전제에 매몰되지 마시고 세상을 더 넓게 보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 글을 끝맺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