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속 ‘빨간우의’ 기자회견

결국 ‘빨간 우의’ 남성이 직접 나섰다. 지난해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을 때, 이 남성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다가갔다가 자신도 물대포를 맞고 백 농민 위로 쓰러졌다. 이후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 ‘백 농민은 물대포가 아니라 이 남성이 때려서 중태에 빠졌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김진태·나경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를 받아 부풀렸다. 당시 여러 각도에서 찍은 동영상에서 그가 손을 바닥에 짚었음이 확인됐으나, 검경도 이 남성을 백 농민의 부검 영장을 신청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했던 것이 지난주 확인됐다.

이에 그는 더는 논란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 19일 낮 <한겨레> 등 7개 언론사와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40대 남성으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조합원으로 현재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지난 17일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그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지난해 12월 11일 조사해 올해 3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먼저 지난해 자신이 경찰 수사를 받았을 때의 상황과 의문점을 짚었다.

-경찰 조사를 받았던 당시 상황부터 설명해달라.

“‘빨간 우의’ 이야기가 믿을 만한 매체에서 나왔다면, 내가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사실 왜곡을 하는 사이트(일베)에서 오간 내용을 바탕으로 정치인이 이야기하니, 경찰이 애초에 문제없었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불법 집회를 했던 행위자로 어르신을 낙인찍고,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하다가, 시위 참가자가 상태가 위중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니까 나에게로 방향을 돌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경의 대책반이 불러 서울 남대문서에서 4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부르면 피하거나 도망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 밖으로 경찰은 백 어르신과 관련된 그 시간대에 있던 일은 묻지도 않았다. 그 앞뒤로는 다 물었다. 그 자료대로라면 저는 지역경찰서에서 조사해야지 서울시경으로 부를 이유가 없는 단순 참가자였다. 특정한 의도가 있으니 수뇌부인 서울시경으로 오라고 했고, 퍼즐을 맞추려 했는데, 당시 동영상과 사진이 돌면서 경찰이 하려고 했던 것을 멈춘 것 아닌가 생각을 한다.

그 이후로 한동안 (일베의 의혹 등) 시끄러운 게 없어졌다. 나도 한동안 잊고 있었다. 경찰이 억지스럽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 자료를 통해서 이해돼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억울하게 고통 속에 돌아가신 분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유족들의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는 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경찰에 의한 살인이 아니고 제3의 빨간 우의라는 쪽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혹시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되겠냐고, 공공운수노조와 상의를 하고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저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조사에 언제라도 응할 생각이 있다. 이미 공개된 자료로 충분한데, 왜 이것을 모르는 척하면서 키우는 걸까. 엉뚱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부검실시라던가, 그들이 목적한 것을 위해 연기를 피우는 듯한. 모습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민중 총궐기 당일 백남기 농민을 구조하러 갔던 상황을 설명해 달라.

“제가 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날은 노동자와 농민은 대통령과 대화하겠다고 평화적 행진을 했고, 그걸 가로막은 것은 경찰이었다. 나는 대열 앞에 있었는데 먼발치에 그분이 쓰러져 계셨다. 물대포는 계속 쓰러져 계신 분을 쏘고 있었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쓰러져 있는 줄 알면서 왜 경찰이 계속 물대포를 쏘아댔는지를 따져야 되는 게 상식 아니었을까. 많은 분이 어르신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자 달려들었지만 경찰은 물대포를 쏴서 눈을 뜰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들었다. 저 아닌 누구라도 그분께 달려들어 도왔을 것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물대포를 막는 것이었다. 직사로 내려오는 물대포를 등으로 막으면 백 어르신에게 직접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어르신 앞쪽에서 접근하면 물대포를 나도 막으면서 이동이 용이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수압이 굉장해서 저 한 사람 정도는 능히 쓰러뜨리기 충분할 정도였다.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 넘어지려고 버텨봤는데, 잘되질 않았다. 넘어지면서 손을 뻗었고, (그는 한동안 말을 멈췄다) 백남기 어르신 얼굴을 가까이서 봤다.

물대포에 등을 맞고 넘어지는 걸 손바닥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버티면서, 제 두 눈으로 직면했던 것은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백남기 어르신이었다. 피를 흘리며 최루액에 뒤범벅돼서 마치 덕지덕지 화장을 한 듯한 그분의 얼굴의 잔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나머지 기억은 뚜렷하지가 않은 상황이다. 저는 당시 영상을 2번밖에 안 봤다. 트라우마가 생겼다.

물대포는 쏟아지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물대포가 덜한 곳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그분을 옮긴 뒤에 주변에서 의료인들과 119를 불렀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원래 있던 대열로 이동했다. 그날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온몸이 따끔거렸고, 지독한 최루액 냄새가 났다.”

-왜 이제야 나섰나? 신상 노출과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해서 나서지 않은 것인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문제가 아닌 가공된 그림에 꿰맞추기 위한 엉뚱한 방향으로 프레임을 짜고, 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가 여기서 나서는 것이 의미 있는지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다. 고맙게도 발달한 미디어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제 말이, 제 등장이 필요하게끔 되었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게도 아이들이 있다. 제 주변의 가까이 있던 분들까지 불똥이 튀게 하는 것은 제가 그분들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바라지 않는다.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는데 제 억울함을 강변할 수 없는 것은 저보다 억울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상 노출을 걱정한 것은 제가 나서기로 결정한 이후부터였다.

왜 제가 일베 부류의 이런 의혹에 굳이 반응해가면서, 마치 이 전쟁의 주인공인 것처럼 행세를 해야 하는가 싶었다. 저는 다 이야기를 했고 경찰이 혐의를 입증할 자료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굳이 똥된장이 뭔지 맛보고 알겠다고 하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지난주에 인터넷 포털에 빨간 우의가 성명 미상으로 검경 부검 영장 신청서에 나온 기사를 보고 엉뚱하다 싶었다. 공공운수노조와 저를 변호한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혹시 내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엉뚱하게 가십거리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노조에서는 괜찮겠냐고 물어왔고요. 많이 부담되고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작년부터 시골에서 농사일을 배우고 있었다. 어제 남의 집 양파 일을 도우러 갔다가 삽질을 너무 많이 해서 심신이 복잡했는데, 노조에서 이런 자리가 잡혔다고 해서 서울에 올라오게 됐다.”

-백남기 유족분들은 당신이 아버지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후로 유족 쪽과 연락을 하거나 만났나?

“저는 그냥 거기에 참가한 누구나 할만한 행동을 했다. 그것 때문에 ‘고마워하세요’라고 나설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역에서 백 농민이 쾌유하길 바라는 집회에 참여했지만 서울에 가지는 못했다. 시골에 바쁜 일이 있었고, 지역에 분향소가 설치돼서 가족들하고 분향했다. 오는 11월에 또 민중 총궐기가 있다고 해서, 그때 올라오면 유족을 찾아뵙는 것도 생각했었다.”

-일베 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주먹을 쥔 가격 자세다, 하고 손으로 얼굴을 때렸다, 무릎으로 복부를 짓눌렀다’고 하는데 신체 접촉이 있었나?

“(안경을 벗었다 끼면서) 블랙홀 같아요. 특정 장면 때문에 나머지 것들이 빨려 들어가서 정확한 표현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아요. 저한테는 확실한 것은 넘어지면서 쓰러져 계신 분 위를 덮치게 되는 꼴이 되니까 팔을 뻗어서 바닥을 짚으니까 얼굴이 또렷이 가깝게 보이고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눈과 팔 외에 나머지 부분에 느낌이 기억나지 않아요.”

-일베나 김진태, 나경원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이 있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일베 포함해서 기사에 달린 댓글과 여당 의원들에 대해서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저는 주인공이 아니다. 지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분이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에 의해서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다른 것들을 주인공 삼아서 끌어올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 그분이 뭘 이야기하려고 했고 그분이 왜 이렇게 됐지 진실에 반복되는 거짓과 진실이 바뀌는 것 같다. 명예훼손 대응은 차차 해도 늦지 않다. 법률 대응한다 이러면 링에 선수로 뛰게 된다. 다른 게 묻히지 않게 차차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기자회견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노조와 협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제 판단 능력을 뛰어넘는 모종의 정치적 논란에 이용되지 않는 것이 유족들과 백남기 농민께 나을 것이라고 본다. 만일 유족을 방문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낫겠다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계획이 없다. 럭비공같이 튀는 검경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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