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그랜드캐니언 추락 피해자 지원,
사실 확인이 우선…법적 지원은 불가"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 "법을 통한 지원 조치는 불가능하다"
지난해 연말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을 관광하다 추락해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박모씨(25)의 치료비와 후송비를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지를 놓고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 유학생이었던 박씨는 귀국을 앞두고 그랜드캐니언을 관광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박씨는 추락 직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수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위중한 상태다.
박씨측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박씨를 한국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게 하고 싶지만 10억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며 "후송하는 과정에도 2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씨측은 "개인이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은 탓에 대한민국의 청년과 그 가족이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대한민국 국민인 박씨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현재 이 게시글엔 2만여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청원 참여자 모두가 ‘동의’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 ‘개인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인데 왜 국가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며 개인과 가족이 책임질 일이라는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안타까운 거랑 원칙은 다르다"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캐나다 유학에 그랜드캐니언에 관광을 갈 정도라면 중산층 이상의 재산이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병원과의 협상에 나서 12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비용을 대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그랜드 캐니언 사고와 관련한 ‘지원 반대 청원글’이 150건 이상 올라온 상태다. 이중 일부는 자기도 해외 여행 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며, 국가가 박씨를 지원한다면 자신의 병원비도 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자연재해나 테러 단체의 피랍에서 국민을 구조하기 위해 지원한 적은 있지만, 개인이 여행을 갔다가 당한 개인적인 사고에 대해 지원한 사례는 거의 없다.
지난 15일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영사조력법)이 제정되기도 했으나, 이 법은 2021년 1월 16일부터 시행된다. 영사조력법 19조는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다만, 재외국민을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관계자는 "영사조력법이 아직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법을 근거로 한 지원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사고로 인해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중태에 빠져있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현재 이 문제엔 여러가지 문제들이 관여돼 있다. 검토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변인은 이어 영사조력법에 명시된 지원과 관련해 "영사조력법은 2년 후 발효될 예정"이라며 "법을 통한 지원 조치는 불가능하다"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