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91·사진) 할머니가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37명으로 줄었다.
나눔의집은 김 할머니가 오전 8시4분쯤 노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1998년부터 위안부 피해자 거주시설인 나눔의집에서 생활해 왔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 때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다. 몇 번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진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위안부 생활 3년 동안 7번의 자살시도도 했다.
김 할머니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끔찍했던 과거사를 생생히 증언해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7년 2월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 하원 의원이 주최한 미 의회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광복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집 추모공원이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이 지난 19일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후 피해자 지원을 위해 지난해 설립됐다. 김 이사장은 재단 활동에 대한 비판여론에 부담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