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아직 모르나…'사죄편지' 기대하다 좌절한 외교부(종합)
日과 조율 없이 아님 말고 식 발언…여론 악화 자충수
감성조치 기대한다던 외교부, 아베 거부 발언엔 즉답 피해
아베 총리는 지난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사죄 편지를 보내는 방안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사죄 편지를 보내는 것은 "(한일 간) 합의 내용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에 일본 총리의 명의로 사죄 서한을 보내는 문제는 최근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감성적인 조치를 우회적으로 요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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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 AFP=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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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측이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추가적인 감성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의 이같은 발언은 일본의 한 민간단체가 아베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를 위안부 피해자에게 보낼 것을 요구한 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부는 위안부 합의 이후 그간 당국자 발언을 통해 '일본 정부의 감성적인 조치가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처럼 공개적으로 일본 정부의 추가적인 감성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정부가 뒤늦게 일본 정부의 감성 조치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 말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이후 9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국내 비판 여론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지난 8월31일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출연하고, 재단이 모든 피해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등 합의는 착실히 이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국내 여론은 여전히 냉랭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외교부의 기대에 "털끝만큼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응수하면서, 외교부는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만 덧낸 꼴이 됐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사죄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자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일본 정부에 추가적 감성적 조치를 기대한다는 발언이 아직 유효한 것이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못하고 "12월 28일 합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일본측과 계속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정부 당국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재단 이사회에서 (사죄편지가) 피해자들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외교부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기대를 표명한 것일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정부가 양국간 실무선에서 제대로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반발 잠재우기'용으로 '아님 말고 식'으로 섣불리 언급했다가 국민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자충수를 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최소한 일본측과 교감이나 물밑 조율이 있었어야 한다"며 "이런 식의 발언은 아베의 강력 반발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더욱 좌절케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베 총리가 사죄 편지와 관련해 "털끝만큼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격한 반응을 내놓은 것은 소녀상 철거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합의에 따라 10억엔을 출연하는 등 일본 정부의 핵심 조치가 모두 이행됐음에도 한국 정부가 소녀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