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성범죄 종결까지 무고 수사 안돼”
법조계 “혐의 포착시 수사하는 게 형소법”
충돌하는 범죄…“우선순위 있을 수 없다”
檢 “무고 명백하면 수사 가능… 예외 인정”
판결까지 무고 수사말라는 법안도 계류 中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개정했다.
개정된 매뉴얼을 보면 검찰은 앞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이 무고 혐의로 역(逆)고소되더라도 본건인 성범죄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무고 혐의를 수사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같은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불법적인 성폭력 수사매뉴얼 중단을 요청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4일 오후 1시 현재 이 청원은 11만2000여명이 동의해 최다 추천 목록 상위 7위에 올랐다.
청원을 올린 네티즌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최고법(헌법)을 위반하는 내용으로 수사매뉴얼을 개정하는 건 몰상식한 행위이자 헌법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억울하게 고소당한 사람이 무고 혐의 고소 등으로 방어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달 31일 유튜버 양예원씨를 성추행하고 노출 촬영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는 스튜디오 실장 A씨가 성폭력 수사매뉴얼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법무부의 이같은 조치가 평등권을 침해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다.
앞서 양씨로부터 고소당한 A씨는 지난달 30일 검찰에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양씨를 맞고소했다.
◇“무고 피해자도 피해…법리적 논란 부를 듯”
법조계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놓고 관점이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수사 순서를 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만 피해자가 아니라 무고 피해자도 엄청난 피해자인데, 대놓고 수사를 보류하라는 것은 법리적으로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기관은 범죄 혐의를 포착하면 수사를 하도록 형사소송법으로 정하고 있다”며 “우선순위에서 무고죄를 2차적 범죄라고 판단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 보호할 수단이 없다는 우려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는 수단이 무고죄와 명예훼손"이라며 "무고로 고소해도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그 점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다만 관행에 따랐던 절차를 법무부가 매뉴얼로 명문화했을 뿐 문제 없다는 의견도 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보통 검사는 먼저 고소된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이후 혐의 없다는 결론이 나면 무고죄 수사를 한다”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수사 절차를 매뉴얼로 만든 정도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의 선후 관계를 조정한 것일 뿐”이라며 “헌법적으로 문제될 정도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매뉴얼상 수사를 완전 배제한 게 아니라 무고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예외 사유를 인정하고 있다”며 “또 무고 고소가 접수되면 성범죄 피해자를 제외한 고소인 조사는 이뤄지므로 수사를 전혀 안 하는게 아니다”라고 했다.
◇국회에선 ‘재판 종료까지 무고죄 수사 말라’
국회에는 수사 단계를 넘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무고 사건을 수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법안이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노회찬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016년 12월 발의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무고죄 수사로 사생활이 노출되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등 2차 피해를 막자는 것이다.
법률안을 검토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남궁석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2월 법률안이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의 검토 의견을 냈다. 법사위는 “성범죄 사건에서 혐의 없다고 결론나는 비율이 평균보다 높다”며 “이런 상황에서 잠정적으로 성범죄 피의자와 무고 피의자 사이 불균형을 초래하는 건 당사자 대등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또 법안이 성범죄 피의자를 범죄자로 단정짓는 것으로 볼 수 있어 무죄 추정 원칙에도 어긋난다고도 했다.
남 위원은 “성범죄를 둘러싼 진실과 무고죄를 둘러싼 진실의 분리가 쉽지 않다”며 “분리가 돼도 증거, 증인 등이 동일하기 때문에 (수사 등) 절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들도 재판을 통해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고 수사를 못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을 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에 넘기고 나서 새 증거가 나와 기소가 잘못됐다는 게 밝혀지면 공소를 취소하고 새로운 진실을 밝히는 게 맞는다”며 “법원의 판단이 있을 때까지 수사기관이 수사를 못 하도록 하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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