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의료, 싸구려 인명
엄동설한이라더니 올 겨울이 그런 것 같습니다. 눈도 잦고 기온도 예년보다 매우 낮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를 날씨에 비유하면 제일 추운 곳이 중증 외상이나 중환자실 영역입니다. 아무리 엄동설한이라도 봄은 오게 되듯이 이 두 영역도 좋아질 때가 오겠지만 오늘 토론회는 그날을 앞당기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에 몇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생존한 환자나 그 가족들의 ‘아나로그’ 메일들이었습니다. 아직 덜 회복된 환자의 흔들리는 필체 속에 생명의 무게를 보게 되었고, 그 가족들이 겪었던 절망과 환희를 읽으며 의료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의료보험도 근본 가치는 두레 정신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가입자가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의료보험에 있어서 이 가치가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험의 두레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작년 말 나온 건강보험 빅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환자의 사망률이 병원에 따라 27%에서 79%까지 다양했습니다. 사망률 27%와 79%, 이것 너무 한 것 아닌가요. 치료 수준이 미국과 아프리카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52%나 되는 사망률 차이,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중환자의 사망에 있어 환자 요인보다 더 큰 요인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정부의 ‘싸구려 의료’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증 질환자는 전문가를 향유하고 있지만 정작 치명적이고 난해한 질병을 가진 중환자들은 초년 의사와 비숙련간호사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이 현실은 중요한 질병의 사망률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중환자실의 대표적인 질환이 패혈증인데 우리나라 패혈증 사망률은 40%를 상회합니다. 선진국의 두 배입니다. 2009년부터의 관련 자료를 보면 패혈증으로 매년 약 15,000여명이 사망하고 있고 이중 18세 이상 60세 이하 사망자가 연 2,700명 가량됩니다. 결핵 사망자보다 많은 수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경제활동 인구의 수 천명을 매년 패혈증으로 잃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주도에 의한 의료 시스템에서 의료 현장은 정부의 얼굴입니다. 인공호흡기 환자 사망률로부터 패혈증 사망률, 그리고 그것들의 병원 간 및 지역적 편차, 그리고 중증외상센터의 부실, 목동 중환자실 사건 등은 복지부의 자기 고백서입니다. 당국의 싸구려 의료 정책이 인명을 싸구려로 만들어 왔습니다. 언제든 제2, 제3의 목동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있었습니다. 그때 알파고와 이세돌 사이에 끼인 사람이 대만기사였는데 우리 의료가 그 기사의 입장과 흡사합니다. 그 기사가 알파고의 알고리듬에 따라 반상에 돌을 놓았듯이 의료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복지부의 정책입니다. 우리나라의 싸구려 의료가 드러날 때마다 사회는 의료계를 비난합니다. 대만기사를 혼내는 격입니다. 알파고가 제 4국을 졌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대만기사가 아니었습니다. 알파고의 알고리듬이었습니다. 이제는 복지부가 정책의 알고리즘을 두레 정신에 맞게 수정해야 할 때입니다.
2018년 1월 11일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 임채만
엄동설한이라더니 올 겨울이 그런 것 같습니다. 눈도 잦고 기온도 예년보다 매우 낮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를 날씨에 비유하면 제일 추운 곳이 중증 외상이나 중환자실 영역입니다. 아무리 엄동설한이라도 봄은 오게 되듯이 이 두 영역도 좋아질 때가 오겠지만 오늘 토론회는 그날을 앞당기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에 몇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생존한 환자나 그 가족들의 ‘아나로그’ 메일들이었습니다. 아직 덜 회복된 환자의 흔들리는 필체 속에 생명의 무게를 보게 되었고, 그 가족들이 겪었던 절망과 환희를 읽으며 의료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의료보험도 근본 가치는 두레 정신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가입자가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의료보험에 있어서 이 가치가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험의 두레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작년 말 나온 건강보험 빅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환자의 사망률이 병원에 따라 27%에서 79%까지 다양했습니다. 사망률 27%와 79%, 이것 너무 한 것 아닌가요. 치료 수준이 미국과 아프리카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52%나 되는 사망률 차이,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중환자의 사망에 있어 환자 요인보다 더 큰 요인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정부의 ‘싸구려 의료’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증 질환자는 전문가를 향유하고 있지만 정작 치명적이고 난해한 질병을 가진 중환자들은 초년 의사와 비숙련간호사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이 현실은 중요한 질병의 사망률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중환자실의 대표적인 질환이 패혈증인데 우리나라 패혈증 사망률은 40%를 상회합니다. 선진국의 두 배입니다. 2009년부터의 관련 자료를 보면 패혈증으로 매년 약 15,000여명이 사망하고 있고 이중 18세 이상 60세 이하 사망자가 연 2,700명 가량됩니다. 결핵 사망자보다 많은 수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경제활동 인구의 수 천명을 매년 패혈증으로 잃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주도에 의한 의료 시스템에서 의료 현장은 정부의 얼굴입니다. 인공호흡기 환자 사망률로부터 패혈증 사망률, 그리고 그것들의 병원 간 및 지역적 편차, 그리고 중증외상센터의 부실, 목동 중환자실 사건 등은 복지부의 자기 고백서입니다. 당국의 싸구려 의료 정책이 인명을 싸구려로 만들어 왔습니다. 언제든 제2, 제3의 목동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있었습니다. 그때 알파고와 이세돌 사이에 끼인 사람이 대만기사였는데 우리 의료가 그 기사의 입장과 흡사합니다. 그 기사가 알파고의 알고리듬에 따라 반상에 돌을 놓았듯이 의료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복지부의 정책입니다. 우리나라의 싸구려 의료가 드러날 때마다 사회는 의료계를 비난합니다. 대만기사를 혼내는 격입니다. 알파고가 제 4국을 졌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대만기사가 아니었습니다. 알파고의 알고리듬이었습니다. 이제는 복지부가 정책의 알고리즘을 두레 정신에 맞게 수정해야 할 때입니다.
2018년 1월 11일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 임채만